당신의 놀라운 가치

1부 당신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6일간의 묵상여행

by 김다윗


4일

당신의 놀라운 가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당신은 이 세상의 가장 큰 가능성이다.

‘물에서 건져 올렸다’라는 모세의 이름은 이집트의 파라오의 무남 독녀였던 공주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는 이집트의 공주의 외아들로 이집트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기까지 사십년의 세월을 이집트의 왕자로 살았다.

주를 위해 고민하는 이집트 왕자

사십 년 동안을 반짝이지 않는 의자엔 앉아 본 적도 없었고 기름이 없는 음식을 입에 넣어 보지 않았던 모세는 파라오의 공주의 아들 됨을 거절한다. 향기가 나지 않는 여인을 만나 본 적도 없고 자신의 발에 먼지를 묻힐 틈도 없었던 이집트의 왕자 모세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한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진정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이집트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자신이 서있는 시대를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시대의 비 진리 앞에서 진리를 파수하기 위해 싸우지 못하고 단지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위해 땀 흘리고 수고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조국 안에서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일과 조국 교회위의 기름 부으심을 위해 자신이 진리가 되고 자신의 기도가 기름이 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할 때 그가 이 시대의 왕자가 되며 장차 이 땅에 왕이 된다.

실수는 세월을 앗아간다

마흔이 된 이집트의 왕자 모세는 자신이 히브리인이며 그 노예 된 민족을 구하기 위해 파라오의 공주의 아들이 된 것을 깨닫고 자신의 민족을 구하는 일에 열정을 품었지만 아직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열정은 사람을 용감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열정으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학문은 사람을 조화롭게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학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분을 만남으로 만들어지며 그분을 경험함으로 알게 된다.

노역의 현장에서 이집트 사람에게 학대당하는 자기 백성을 보고 그 이집트 사람을 칠 때에 그가 살핀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주위에서 그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었다.

그는 주위에 이집트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사람을 죽였다. 눈으로 보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마음으로 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다. 요셉처럼 말이다.

실수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 없이 하는 행동이다.


왕자의 옷에서 보석들이 떨어져 나갈 때

어느 날 하루의 단 한 번의 실수로 그는 이집트의 왕자로 살아왔던 사십년간의 세월을 부정해야 만 했다. 고귀한 꿈도 열정도 한낮 부질없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이는 이제껏 종이 된 자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를 파라오의 공주의 아들로 만들어 주신 것을 알았지만 사람을 힘으로 죽인 그의 실수는 그를 아무 할 일없는 광야의 방랑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사람의 눈만을 의식하고 자신이 가진 힘으로 이집트 사람을 때려눕힐 때 그는 그 일로 인해 그가 자란 파라오의 궁궐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사십 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허비해야 한다는 것을 그땐 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만 하고 미디안 광야의 먼지를 덮어쓰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십년 동안 살아왔던 왕궁에서의 익숙했던 삶을 부인하고 광야의 방랑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에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광야에서 만난 여인

모세는 광야에서 만난 미디안 처녀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껏 그가 보아 온 왕실의 향기를 지닌 여인들 중의 하나도 아니었고 이웃 나라의 어여쁜 공주도 아니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있는 침상에서도 궁궐의 여인들을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아들을 낳았지만 그 일이 그를 기쁘게 하거나 그의 삶을 책임감 있고 활기 넘치게 하지는 못했다.

틀어진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서 회복되기까지는 그의 삶이 변화될 수는 없다.

모세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사십 년의 세월을 낯선 광야에서 방황해야만 했다.


왕자로 산 사십 년, 목자로 산 사십 년

시편 90편은 유일한 모세의 시(詩)이다. 그는 그의 시에서 인생에 연수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10).”

모세의 때에도 보편적인 인류의 연수가 칠십에서 팔십임을 우리는 짐작한다. 그렇다면 모세는 그 팔십이 다 되도록 그의 삶의 중심에 서있지 못하고 그저 미디안 광야의 나그네로, 그의 표현을 빌리면 남의 땅에서 밥을 얻어먹는 나그네로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한 개입으로 말미암아 사십년을 이집트의 왕자로 살면서 다가올 시대를 준비했지만 세상 교육의 한계가 그러하듯 그는 그 후 사십년을 인생을 소비하며 가족들의 짐이 되는 삶을 살았다.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시대를 위해 사람을 부르시고

그의 어머니 요게벳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지만 그 아들을 위한 기도와 헌신이 열매를 맺었을 까.

살인자 모세를 찾아 죽이려던 이집트의 파라오가 죽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피땀을 흘리고 신음한다. 그들의 탄식과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여호와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그 언약을 기억하신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죽었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사셔서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신실하신 약속을 지키신다.

그분은 말씀하신 분일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때, 때, 때가 있다. 때가 되매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서두르시는 분이 아니다. 서두름은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준비치 못함에서 오는 행동이다. 때가 되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사십년 전의 그 사람 - 자신은 철저히 준비했었지만 하나님에게는 부족했었던 - 을 찾아오신다. 이제는 너무 늙어버려 소망이 없어 보이는 팔순 노인을 주님은 부르러 오신다.

하나님께는 바쁜 일이 없다. 그분은 시간에 매이는 분이 아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신 분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시간에 붙들려 매여 있는 인간만이 그 시간들의 종이 되어 고난의 때는 길고 긴 세월을 살며 행복은 잠시라고 느끼며 살아갈 뿐이다.


친히 시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때에 그의 마음에 합한 자를 부르시어 그를 사용하신다.

모세의 사십 년 광야의 목자의 삶은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버렸다. 그는 사십 년 만큼 더 많이 늙었고 약해지기만 했을 뿐이다. 더 특별하고 가치 있는 경험이나 경력을 쌓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하나님 보시기엔 그가 너무 늙어 이제는 고집 부릴 힘도 없어 그분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누가 쓸 만한 자이고 또 누가 버릴 수밖에 없는 자인가를 말이다.


떨기나무에 붙은 꺼지지 않는 불

날마다 똑같은 지팡이를 들고 비슷한 수효의 양을 몰아 언제 보아도 그곳이 그곳인 광야를 배회하는 모세는 그 나이에도 장인의 양을 먹이고 있었다.

바람 부는 광야에서 흔들리며 가지끼리 부딪히다 스스로 불이 붙어 잠시 타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광야의 떨기나무들을 자주 보아오던 모세는 어느 날 붙은 불이 떨기나무에서 사라지지 않는 기이한 광경을 보고서 그곳으로 다가간다.

그는 그곳에서 난생 처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다. 그분은 이집트의 태양신이 아닌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셨다. 그분은 그의 오랜 절망을 비집고 들어와 빛을 비추시는 분으로 이제 늙은이가 된 그를 찾아 오셨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던 사십대의 모세를 버리시고 이제 황혼의 끝자락에 서있는 노인 모세를 쓰시고자 먼지 나는 벌판을 달려오신 그분은 진정 그를 지으신 창조주이셨다.

그로써 모세는 하나님 시간의 첫 날을 맞았다.

지난 젊은 날의 왕궁에서 보낸 사십년간의 시간도, 먹고 살기 위해 먼지 나는 마른 벌판에서 고용된 목자로서 살았던 또 한 번의 사십년의 세월도 그의 삶이 아니었다.

단지 길가에 서있는 나무처럼 거저 시간만 비껴 흘러간 것뿐이었다.

하나님 없이 흐른 인생의 시간들은 아무런 의미나 가치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바로 그 떨기나무의 불속에서 그를 만나주셨다.

그로써 그의 날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의 첫 날에 그분의 음성을 그는 들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 당당했던 이집트의 하이얀 얼굴의 왕자는 다시는 그 색깔을 회복할 수 없는 검은 구리 빛의 쪼그라든 얼굴을 가진 노인이 되어 광야를 걷고 있었다. 사십년을 광야의 양치기로 살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미디안 광야의 객이었다.

두 아내를 위해 십 사년을 노동으로 봉사한 후 자신의 부를 위해 열심히 살았던 그의 오랜 조상 야곱과는 달리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객으로서 아내와 음식과 살집을 제공받았던 모세는 사십년이 지나 노인이 된 그때까지 자신의 것이라고는 오른 손에 들리어진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쩜 그 육체마저 그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그 후 하나님의 부름으로 이집트를 향할 때에도 그는 자신의 거취를 위해 장인 이드로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팔십대 노인이었다.

하나님은 그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모세에게서 또 그 무엇인가를 앗아버리기를 원하셨다. 빼앗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들을 제하시고 새것으로 채우려는 것이 그분의 사려 깊은 생각이시다.

뜨거운 사막 위를 걷는 양치기의 발가락에 걸려있는 신발을 벗게 하시어 모세로부터 제하시고자 하신 것은 오물 뭍은 가죽 샌들이 아니라 아직도 그에게 남아있는 세상의 미련이었다. 신발을 신을 권리가 없는 사람은 노예이다. 하나님은 그를 만나러 오는 모세가 이제라도 살아있는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그분만을 위한 종이 되길 원하셨다. 모세는 자신을 만나러 오신 전능자 여호와를 만나기 위해선 그가 신고 있던 낡은 신발을 벗지 않고선 그분을 만날 수 없었다.

거룩한 곳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 존전에서는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 전능자 여호와 앞에서는 노예가 되어야 한다.

맨발로 선 떨기나무 앞에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 두려워 모세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린다. 하나님을 만난 선지자 이사야도 그분을 뵙고 했던 고백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이사야6:5).”였다.

자신의 힘으로 서있는 사람을 넘어뜨리시고 자신을 스스로 망케 한 사람을 세우시는 것이 그 하나님이시다.

이제 내가 너를 보내어

하나님을 뵈어 서있는 그의 무릎이 떨리는 모세를 향하여 하신 그분의 말씀은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였다.

모든 것을 갖추었던 마흔의 모세를 마다하시고 이제 그 이집트의 지식과 학문을 기억조차 하기 힘든 노인을 부르시어 하나님은 자신의 일꾼을 삼으신다.

과연 그 하나님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는가?

그렇다. 그분의 판단은 언제나 옳다. 우리가 그분을 잘 모를 뿐 그분은 우리를 아신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하나님은 택할 자를 택하시고 보낼 자를 부르신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제 모세는 보낼만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갑작스레 뵈어 죽겠다고 소리치며 두려워하던 이사야에게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이사야6:8).”라고 물으신 주님이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자신을 꺾고 흰 손을 들면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다 소진될 때를 기다리시고 그 후에 당신의 힘을 부어주시어 우리를 사용하신다.


내가 누구관대

모세에게 있어 가장 떠 올리기 싫은 단어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백성’이었을 것이다. 그 단어엔 그의 지난날의 실패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떨기나무로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사람들의 실수를 다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은 실수의 현장에서 멀리 도망가 그것을 기억조차 하려하지 않지만 그들을 지으신 여호와는 그 실패에서 일어나 그것을 정복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승리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그의 삶에서 겪었던 유일한 패배가 아니라 죄를 범한 인류에게 승리를 선사하는 놀라운 사건이자 역사였다. 그분은 우리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죽이셨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내가 누구관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애굽기3:11)”

모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라서 그렇게 물은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바로 그 사십년 전의 그가 그 일을 하기를 원했었지만 지금의 자신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 또 한 번의 사십년을 광야에서 살아버린 쓸쓸한 황혼의 팔십 노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그것은 실패한 자신의 눈으로 바라 본 자신이 만든 그림자에 불과했다. 모세는 아직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오랜 인생을 살았고 광야의 경험 많은 목자가 되어 있었지만 아직도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직도 그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여호와를 만나 그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를 만나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알 수가 없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말의 가장 실감 있는 해석은“너를 이 세상에서 하나님 같이 되게 하겠다.”이다.

팔십 평생을 살았지만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를 도대체 몰랐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너는 내가 함께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어 그 늙은 노인의 심장을 흔들어 놓으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다. 칼과 단창을 자신의 힘으로 삼고 전장으로 나온 골리앗은 조약돌 몇 개를 가졌던 하나님과 함께 한 소년 다윗에게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지난날 애굽의 모든 학술과 무예를 겸비하고도 불법적으로 한 사람을 쳐 죽인 것으로 자신의 모든 삶을 파괴의 길로 내어주었던 모세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왕국으로부터 조국의 백성들을 이끌어 내기위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하나님의 사람

팔순에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모세는 광야에서 버린 사십 년간의 세월을 고스란히 돌려받아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열어 건너며 바위를 쳐서 물이 터지게 하고 광야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게 하며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고 놀라운 축복이 감추어진 율법을 하나님으로부터 전해 받아 그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전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다.

외로운 사십년을 말 못하는 양들과 함께 살았던 모세는 아무도 찾지 않던 그 팔순의 노인이 된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 그분이 함께 하시는 사람으로 남은 사십 년을 불처럼 살아간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당신도 이 시대의 모세가 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모세는 팔순이 지나서야 그가 진정 누구인지를 알았다. 태어난 후로 마흔 해를 세상의 중심에 서서 배우고 익혔지만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도망쳐 나온 미디안 광야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사십년을 광야를 오가며 골똘히 인생을 살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예측조차 하지 못했던 그 어느 날 광야의 떨기나무 속에서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야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뜨거운 광야의 모래 위에서 맨발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야 그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그가 왜 이 땅에 태어났으며, 그가 그 나이에 다시 돌아가야 할 땅이 애굽이라는 사실을 그는 주님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의 나이가 비록 팔십이 넘었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이 억압받는 그의 백성이자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해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어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고 당신의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 때까지 당신과 함께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신을 하나님은 ‘당신의 세상에서 하나님같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당신의 이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다.

당신의 신분은 그리스도의 대사(ambassador)이다.

당신이 하는 일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이고 당신이 가는 곳마다 그분의 깃발이 나부낄 것이다.

당신이 있는 곳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아무도 당신을 이기지 못한다.

축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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