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우치는 한 아직 당신에겐 기회가 있다

1부 당신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6일간의 묵상여행

by 김다윗

3일

뉘우치는 한 아직 당신에겐 기회가 있다

-결코 거절 받지 않는 회개

나는 다윗을 참 좋아한다. 아버지의 양을 지키기 위해 벌판을 뛰어 다녔던 소년 다윗으로부터 위대한 나라의 왕으로 살기까지의 그의 삶에서 나는 이루 말 못할 영감을 받는다.

목자이면서 음악가였고 왕이었으면서 시인이었던 그에게서 나는 삶의 향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배운다.

오늘 나는 그의 수많은 위대함을 다 제쳐두고 나의 가슴을 적시는 그의 삶의 한 켠을 조명하려 한다. 그의 아픔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므로 그의 마음을 쓰라리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죄를 지었지만 너무나도 진실한 모습으로 그의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그날의 다윗은 평상시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라는 온통 전쟁으로 어수선한데 그는 예루살렘의 왕궁에 남아 오후 잠을 자고 있었다. 침상에서 일어난 그는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그것을 가지고 다윗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런데 목욕하는 그녀가 심히 아름답다고 다윗은 느꼈다. 어둠의 그림자가 왕의 마음을 스치고 지났다.


여자가 심히 아름답게 보일 때

세상엔 아름다운 여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여인도 있겠지만 한 남자에게 있어 한 여자를 아름답게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관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느날 특별히 한 여자가 심히 아름답게 보일 때 남자는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기도를 해야 한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한 남자가 멋있다고 느껴질 때 여자들은 무릎을 꿇고 다시 한 번 기도를 드려야 한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는 것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약한 우리 인간은 항상 ‘안목의 정욕’과 싸워 승리를 거두기가 수월치 않다.

그럴 때에 우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다윗은 그 눈이 보았던 것을 마음으로 넘겨주고 그 마음은 온 몸을 달구어 마침내 그 여인을 궁으로 불러들인다.

그 여인이 나라의 충성스러운 신하의 아내였음과 또 그 남편이 지금 전장에서 적들과 싸우고 있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을 품으로 끌어들인다.

전쟁 중에 날아든 소식

그날 그 여인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다윗은 그녀를 잊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윗이 방심한 사이에도 죄는 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계속되는 이웃나라와의 전쟁으로 다윗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그에게 날아 온 하나의 소식은 두어 달 전 어느 해질녘에 한번 껴안았던 남의 아내였던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것이었다.

죄는 죄를 낳고

슬프게도 이제 다윗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그의 청명한 영감을 사용하여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 여인의 배속에 있는 생명이 그의 남편 우리아의 것임을 조작하려하여 다윗은 전장에서 땀과 피를 흘리고 있는 그녀의 남편을 부른다. 그리고 그에게 왕이 내리신 포상 휴가를 가장하여 그로 하여금 아내와 밤을 보내도록 궤계를 꾸민다.

하지만 충직했던 군인 우리아는 동료들이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그 밤을 아내와 함께 보내지 않기로 맹세하고 왕궁 문에서 그 밤을 샌다.

다급해진 왕은 다음날엔 그를 불러서 함께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하게 하여 그를 아내에게 보내지만 충성스런 우리아는 술김에도 그의 맹세를 깨뜨리지 아니한다.

그를 죽이라는 편지를 그에 손에 들려 보내다

우리아의 신실함으로 인해 자신의 의도가 먹혀들지 않자 다윗은 전방의 장수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 그를 최전방에 내보내어 전사케 한다.

남편을 잃고 슬픔에 빠진 그의 아내가 장례를 마치자 다윗은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와 자신의 아내로 삼고 그 여인은 궁에서 아이를 낳았다.

나단이 오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다윗이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종 나단을 시켜 그를 책망하신다.


선지자가 들려준 이야기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은 부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단지 어린 암양 한 마리를 사서 키우고 있었다. 그 가난한 사람에게 그 새끼 암양은 그 자식과 같아서 자신이 먹는 것으로 함께 먹으며 자신이 마시는 잔으로 함께 마시는 그에게는 딸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잣집에 손님이 왔는데 그 부자는 손님을 위하여 자신의 양과 소를 잡지 아니하고 그 가난한 이웃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 요리하여 자신의 손님을 대접했다.

그 사람을 마땅히 죽여야 할지니라

선지자 나단의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심히 노하여 살아계신 여호와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그 부자는 반드시 죽어야 할 것이라고 소리 높였다. 그리고 그 빼앗은 새끼 양으로 인해 네 배로 갚아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나단은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선대의 왕 사울에게서 구하신 일과 그를 위하여 복 주신 일들을 일일이 열거했다. 그럼에도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무죄한 사람을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으므로 하나님의 재앙이 그에게 임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왕은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듣고 엎드렸다. 나단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시인하고 부끄러움을 무릅썼다.

그로인해 나단은 하나님이 다윗을 용서하셨으므로 그가 죽지 않을 것이지만 그가 우리아의 아내로 더불어 낳은 아이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단이 돌아간 뒤

하나님이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낳은 그 아이를 치시매 그 아이가 심히 앓게 되었다.

나단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던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윗은 금식하며 간구하고 밤새토록 땅에 엎드렸다.

왕의 집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그를 걱정하여 왕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윗은 듣지 아니하고 이레 동안이나 음식을 입에 대지 아니하였다.


아이가 죽다

아이가 죽자 왕의 신하들은 그 사실을 아뢰기를 두려워했다. 아이가 살아있을 때에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먹지도 눕지도 않았던 왕이 아이가 죽고 난 뒤에 당할 엄청난 상심을 신하들은 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일어났다. 몸을 씻고 얼굴에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를 드렸다. 그리고는 왕궁으로 돌아와서는 음식을 차리게 하고서 먹었다.


내가 다시 그를 돌아오게 할 수 있겠느냐

예상치 못한 왕의 행동에 의아해진 신하들은 그에게 물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그를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힘을 차린 다윗은 함께 슬픔에 빠졌던 아내를 먼저 위로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밤을 보낸 다윗은 또 다른 아들을 선물로 받는다. 그의 이름이 그를 이어 왕이 되는 솔로몬이었다.


전장에선 승전보가 날아오고

다윗의 충성스런 신하 요압이 암몬 자손을 쳐서 그 왕의 성을 점령하고 전령을 보낸다. 그가 다 이겨놓은 전쟁에 왕은 남은 군사들을 데리고 와서 그 성에 깃발을 꽂으라는 기별이었다.

자신이 그 전쟁을 끝내면 탈취한 성이 그의 이름으로 불리울 것을 염려했던 충성스런 신하 요압의 말대로 다윗은 모든 군사를 모아 암몬 자손의 성이었던 랍바로 가서 그 성을 쳐서 점령하고 그 나라의 왕의 머리에서 보석 박힌 왕관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다윗은 일생일대의 자신의 과오를 딛고 다시 재기에 성공하여 우리 앞에 섰다.


뉘우치는 한 희망이 있다

그는 한때의 실수로 간음을 행하고 살인을 저질렀지만 하나님을 대신해 찾아 온 선지자 앞에 자신의 죄를 숨김없이 드러내 놓고 용서를 빌었다. 그는 더 이상의 죄를 짓지 않았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부른다.

하지만 다윗은 죄를 깨달았을 때 처절히 죄를 토해내고 더 이상 자신의 죄를 은폐하지 않았다.

택한 자들의 특징은 회개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다. 회개하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죄를 짓고 난후에 다가오는 절망감은 사탄에게서 오는 것이다. 죄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죄책감이다. 죄책감은 양심의 소리가 아니라 사탄에게서 오는 그의 입김이다. 양심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지만 모멸감을 주지 않는다.

성령의 임재는 통회하고 자복하게 하지만 자신을 원망하게 하지는 않는다.


회개는 죄를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은 상태로 돌린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5:17). 새로운 피조물이라 함은 죄를 용서받아 죄가 없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어본 적이 없는 새롭게 창조된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다.


당신이 어떠한 죄를 지었던 간에

당신이 회개의 자리로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당신에게 왔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당신을 이미 용서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알리려 하신 것이다. 성령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다.

당신이 그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간에 곧 바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이유는 당신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회개했기 때문에 용서받은 것이 아니다

당신은 용서받았기 때문에 회개한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해 당신이 이미 용서받았기 때문에 당신은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당신이 알아야 할 진리이고 그 진리가 당신을 자유케 한다.

이 사실이 당신의 무한한 힘이고 능력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것을 알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용서받기를 원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은 당신을 용서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그것은 당신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 귀하신 보혈을 그분이 흘리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피가 너무나도 소중하시기 때문이다.

당신이 용서받았고 이미 깨끗해졌음을 당신이 알기를 원하신다.


이제 거룩히 살아진다

진정으로 당신이 죄를 용서받고 깨끗해졌음을 안다면 당신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해졌음을 안다면 죄를 지을 수가 없다. 깨끗이 정돈된 곳에 쓰레기를 버릴 수 없듯이 당신이 죄로부터 깨끗해지고 거룩해진 것을 안다면 당신은 죄를 지을 수 없다.

혹시라도 다시 죄를 짓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음을 다시 묵상해보라.

점점 당신은 죄를 짓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자녀들은 거룩하고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낫음이라(요일서3:9).”


당신의 무한한 가능성은 이를 앎에서 시작된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바울의 고백은 바로 이 사실을 믿고 의인된 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권세이다.

당신의 적은 이제 더 이상 사탄이 아니고 주님이 하신 일을 잘 알지 못하는 무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그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았다. 당신은 죄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더 이상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승리가 보장된 전쟁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당신은 승리할 것이고 이길 것이다.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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