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1부 당신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6일간의 묵상여행

by 김다윗

2일

당신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을 지으신 이로부터 이미 확정되었다.

우린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 단지 성경은 그녀가 살았던 곳이 사마리아 지역의 한 마을인 ‘수가’라고만 가르쳐준다. 아마도 그 수가라는 곳은 구약의 야곱이 잠시 머물던 ‘세겜’땅일 것이다. 그곳에 야곱의 우물이 있고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도 그곳 가까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갈릴리로 가기를 원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기를 위해서는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해야 하지만 보통의 유대인들은 결코 사마리아에 발을 들여 놓지 않는다. 같은 역사를 안고 태어났지만 혼혈족이 되어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을 유대인은 싫어하고 또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그렇다고 예수마저 그 사마리아 땅을 피해갈 리 없었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었고 제자들은 음식을 구하러 마을로 들어갔다. 오랜 도보 여행으로 지친 예수는 잠시 우물가에 앉아 쉼을 누리고 있었다.


사마리아 여인

언제부터 그 여인이 사마리아에서 살았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그곳에 있는 그 여인을 만날 뿐이다.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나 그 여인은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하고 또 이혼을 다섯 번이나 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또 다른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이 다섯 번의 결혼을 한 것만으로 그녀를 지탄 받을 만한 나쁜 여자라고 넘겨짚어도 큰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이 지구상의 그 어떤 누구일지라도 그 자신이 한 일만 가지고 자신의 가치를 저울질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땅의 사람에겐 자신의 마지막 날의 삶이 끝나지 않았다면 누구든 기회를 제공 받고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그간의 살았던 삶으로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창조되었나가 그 사람의 가치기준이 되어야 한다.

누군들 이혼하기위해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 행복을 꿈꾸며 결혼에 이르지만 서로의 연약함으로 불행을 맞는 것이다. 이혼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등식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계산법이다.

그녀에게도 꽃다운 소녀시절은 있었다. 인생의 부푼 꿈으로 가슴 터질 듯한 시간이 있었음도 물론이다. 첫 사랑을 만나 누구보다도 행복할 자신이 있어 그녀도 결혼의 문턱으로 들어섰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그 뜻대로 되지 않은 현실에 밀려 수많은 밤을 잠 못 들었을 것이다. 죽을 만큼 힘든 고통에서 벗어나려 살기위해 그녀도 이혼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이혼한 가슴이라고 행복을 꿈꾸지 못하란 법은 없다. 그녀는 더 행복할 각오로 또 한 번의 결혼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혼 역시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거듭된 결혼을 보며 그녀에게서 삶을 사랑하고 행복을 추구하려는 그녀의 집념에 찬사를 보낸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살 권리가 있다. 다섯 번의 사랑과 다섯 번의 헤어짐을 통해 그녀는 외로움이 죽음보다도 더 잔인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그녀가 만난 마지막 남자와는 결혼도 하지 않고 함께 몸을 부비고 살았다. 결혼이라는 절차보다 그들에게는 함께 하는 삶이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두 번과 세 번이 별 다를 바 없고 세 번과 네 번, 그리고 다섯 번이 그리 큰 차이도 아닐진대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녀와 같은 마을에 산다는 것조차 꺼려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슬픔은 그 여인 자신이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녀를 가두지 않았지만 여인은 자신만의 공간에 커튼을 치고 살아갔을 것이다. 그로인해 여인은 삶의 방식마저 같은 마을 사람들과 다른 시간대로 옮겨갔다.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그녀는 아무 사람도 오가지 않는 모두가 한낮의 쉼을 보내는 그 더운 때를 이용했다.

그날도 여인은 물을 길으러 땡볕 내리쬐는 길을 나섰다. 뚫린 공간에선 그곳이 어디든 자꾸 두리번거리는 것이 그녀의 오랜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남몰래 뛰어간 그 우물가에 한 유대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에게 물을 좀 주시오

여인은 놀랐다. 그것도 유대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파격적인 그 요청에 놀란 여인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 저 같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내가 누군지를 알았더라면

예수는 그 여인이 우물가에 앉아있는 자신이 누군지를 알았더라면 도리어 그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물길을 그 어떤 그릇도 가지지 않은 그를 보며 그 여인은 다시 물었다.

“이 우물은 깊고 당신은 물을 길을 그 어떤 그릇도 가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게 물을 주실 수가 있나요? 방금 당신이 저에게 물을 달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당신은 누구신대요?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조상 야곱보다도 당신은 더 크신 분인가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야곱이 준 이 우물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오.”

말이 당근을 물 듯 예수가 뱉은 말을 덥석 받아 믿을 그녀도 아니었지만 여인은 만약 그러한 물이 있다면 그 물을 받아 마시고 싶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그 물을 마셔 다시는 그 우물을 찾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그녀는 생각했다.

“제게 그 물을 좀 주십시오.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그 물을 제게 좀 주십시오.”


당신의 남편을 데려오시오

적어도 그녀에게 남편에 관한 언급은 그녀를 위축되게 했다.

“제겐 남편이 없습니다.”

목구멍에서 겨우 올라 온 들릴 듯 말 듯한 그 말을 예수는 듣고 말을 이었다.


“그래 당신 말이 옳습니다, 전날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도 당신과 함께 있는 남자가 있지만 그도 당신의 남편이 아니긴 마찬가지지요.”

여인은 놀랐다.

자신의 지난날을 알고 있는 이 남자는 선지자임에 틀림없다고 믿었다.


당신은 선지자로군요

그저 행로에 지쳐 물 한 모금 얻고자 하는 한 유대남자라고 생각했던 그 여인은 자신의 지난날을 알고 있는 그를 선지자로 믿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 동이의 물보다도 자신의 인생을 둘러 감싸고 있는 최고의 목마름을 해결하고 싶었다.

“우리네 조상들은 이 그리심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는데 당신들 유대인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우린 어디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으로 진리로 예배해야 하오

예수님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진리를 여인 앞에 쏟아놓고 있었다. 예배의 형식이 아니라 참된 예배는 예배자의 마음가짐에 있다고 그녀의 심중을 찔렀다.

하지만 어찌 그 여인이 그 진리를 단번에 받아들일 수 있겠는 가.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인은 절대자의 진리 앞에서 또 다른 진리를 찾아 나선다.

사람들은 진리를 따를 힘이 없을 때에 자신을 만족케 해줄 사이비 진리를 찾는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진리를 따르는 대신 자신에게 맞는 진리를 찾아 그 어설픈 진리의 종이 된다.

그 여인의 얇은 가슴을 모를 예수가 아니었다.


내가 그니라

여인은 예수의 그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감히 믿지 못할 말을 그가 내뱉었지만 그녀는 그 말을 의심할 수 없었다. 이미 그녀의 영혼은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인은 눈을 떴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그의 눈빛에서, 불쌍한 영혼을 일깨우려는 그의 목소리에서 그녀는 자신 앞에 서있는 한 유대 남자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영혼 깊이 알게 되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녀의 삶의 목적이 달라졌다. 육체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우물가에 나왔지만 그녀는 예수를 만나 영의 기갈을 채웠다.

겨우 살아가기 위해 나온 발걸음이었지만 메시아를 만난 그녀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함을 받았다.

부끄런 삶을 숨겨가며 살았던 그녀는 이제 당당히 세상을 향해 달릴 수 있었다. 그녀를 향해 던질 돌을 가슴속에 가득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이제 그녀는 자신이 만난 메시아에 대해 말해줄 보석들을 가슴 가득 안고 이웃의 잠겨진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되었다.

메시아를 만나 그녀는 인생의 빛바랜 거짓 모습을 버리고 선명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그렇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들은 거짓된 자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누구든지 메시아를 만나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다.


여인의 마을이 구원을 받다

여인을 향한 곁눈질의 이웃들은 메시아를 만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녀의 손에 이끌려 메시아에게로 달려 나왔다.

그날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던 여인은 그 마을을 구원하는 은인이 되었다.


누구나 다 소중한 존재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생은 없다. 무가치한 존재는 이 땅에 창조되지 않았다. 단지 세상의 사람들은 한때의 잘못으로 자신의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자신의 색깔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면 소중한 존재로 회복된다.

하나님을 만나기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이미지를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오늘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하나님 앞에 서면 그분을 알아 뵐 수 있다.

수풀속에서도 자석이 바늘을 찾아내듯 인간은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내면에 지녔다. 이것이 복음이다.

전류가 서로 통하듯 조물주와 피조물은 서로를 알아보고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예수의 가르침대로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 불순물이 제거된 쇠붙이가 자석에 달라붙듯 자신을 깨끗케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더 이상 거짓을 달고 다니지 않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아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그 특권을 누릴 수 있다. 햇볕 내리쬐는 우물가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다.

지칠 대로 지친 삶의 끝자락에 서면 그곳에서 먼저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우린 발견할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우린 그분을 만난다.


그분을 똑똑히 보라

사람들은 하나님마저 자신의 눈으로 보려한다. 그 위대한 분을 자신의 경험의 눈으로 판단하려 한다. 우물가의 여인은 그를 단지 한 유대인 남자로 보았다. 그러다 그에게서 능력을 발견하고는 또 한사람의 선지자로 믿었다. 하지만 행운의 그 여인은 끝내 그분을 메시아로 알게 되었다.

그녀가 만난 유대인 남자는 그에게 두려움을 주었고 그녀가 만난 선지자는 호기심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메시아인 그리스도는 그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 잃어버린 새 삶을 찾게 했고 삶의 놀라운 에너지를 주었다.


당신이 만난 하나님은 누구인가

일요일 오전에 만나 단지 노래 몇 곡 부르는 것이 그를 위한 당신의 예배라면 당신은 단지 종교인에 불과하다. 그것은 단지 당신의 종교 란에 ‘기독교’라고 쓰는 것 외의 다른 의미는 없다. 당신의 영적인 호기심을 위해 그분의 책을 뒤적이는 것 역시 그를 단지 뛰어난 선지자 정도로 밖에 대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분을 만난다는 것

당신은 날마다 그분을 만나야 한다. 날마다 그분과 대화해야하고 그분의 호흡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 그 발아래 엎드려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의 얼굴을 뵈어야 한다. 그분의 얼굴빛으로 당신의 얼굴이 빛나야 하고 그분의 임재로 당신은 녹아져야 한다.

당신의 입술에서 나온 언어들이 그분의 입술을 움직이게 하고 당신의 영혼에서 쏟아져 나온 고백이 그분을 춤추게 해야 한다. 당신은 그분의 광대이고 그분은 당신의 주인이시다. 그분이 없는 당신의 하루는 실패한 삶일 것이고 그분과 함께 하는 하루는 경이의 날이 될 것이다.

날마다 시시때때로 그분 앞에 매달려라. 순간순간 숨 쉴 때마다 그분의 입김을 받아 호흡하라.

가장 위대했던 왕 다윗은 고백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시편 16:8).”

당신의 우물가에서

아무도 그 여인을 요부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예수를 만나기전의 그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삶이 아니었다. 아무도 예수를 만나기전의 삭게오를 질책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예수를 따르기 전의 세리 레위를 욕하지 않는다.

당신이 누구라도 상관없다. 어제까지의 당신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그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우물가에서 당신은 그 예수를 뵈올 수 있다.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당신은 그를 바라볼 수 있다. 우물가에서 만난 그는 뒤돌아보는 당신의 등을 두드려주실 것이다. 지친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고 안아 주실 것이다.

지금 고백하라

그분만이 당신의 전부이며 그분을 따르는 것이 당신의 모든 것임을 고백하라. 그리고 그 고백이 당신의 삶이 되게 하라.


당신이 고백한 만큼 그분은 당신의 존재가 될 것이고 당신이 그 발 앞에 조아린 만큼 그분은 당신의 능력이 될 것이다. 그분으로 인해 당신은 변화될 것이고 그분으로 인해 당신은 그분만큼 될 것이다.

전날 손가락질의 중심에 서있었던 그 여인은 전도자가 되었고 거리에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던 그 여인으로 말미암아 그 마을 사람들은 메시아를 만났다.


통 큰 그분의 승인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한복음 14장 1절).”

당신을 두고 한 말씀이다.

축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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