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예수의 40일간의 행적을 찾아서
사람들은 그를 반신반의했다. 그가 메시아인지 아니면 한때 지나가는 선동가인지를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가 벧세다 들녘에서 나누어 주었던 기적의 빵을 씹으면서도 그 벌판의 군중들은 그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쉽게 믿질 못했다.
그의 손에서 나온 생선을 발라 먹으면서도 사람들은 그가 정말 메시아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강론을 들으면서 그 입에 들린 권위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를 전능자의 아들로 믿기에는 세상은 아직 어렸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렸지만 세상의 중생들은 그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약삭빨랐다.
사람들은 흔들렸다. 아니 돌아섰다. 그가 생명의 떡이 아니고 세상의 진리가 아니며 메시아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님을 확신하고 그를 향해 등을 돌렸다. 아니 그를 향해 돌을 던졌다.
자신의 제자에게서 배반당하고 힘센 군인들에게 묶이며 서슬 푸른 빌라도 앞에서 무릎이 꿇릴 때 그를 따랐던 군중들은 그를 향해 침을 뱉었다. 아무 소리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붙들려 십자가에 매달릴 때에는 사람들을 그를 보며 조소의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으로 역사속의 해프닝은 끝을 맺었고 사람들은 그를 잊으려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박 3일후,
멈춰진 역사는 다시 그 수레바퀴를 돌렸다.
아무도 귀 기울려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아니 그의 말이 이루어졌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사흘 만에 무덤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자신을 붙잡고 있던 죽음을 발로 차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후 사십 일 동안을 자신이 사랑했던 그 땅에서 넘치는 생명을 살았다. 그리고 그를 만난 사람들에게 그 놀라운 새 생명을 부어주었고 마침내 그들은 모두 다 놀랍게 변화되었다.
그를 만난 사람은 변화되었다. 아니 그를 다시 만난 사람은 원래 지녔던 자신의 모습, 전날 자신들은 몰랐지만 하나님이 창조해놓았던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역사는 그들로 인해 새 시대를 맞게 되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에게서 나는 그들이 만난 그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는 성서 속을 비집고 다니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갈 요량으로 나는 성경을 읽고 읽었다.
예수를 만났던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내 손을 잡고 그 예수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예수를 만났던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그 예수를 통해 보게 되었다.
그 십자가위에서 죄수가 되어 죽었던 그 예수의 죄가 나의 죄임을 깨달았고 그 예수가 그 치욕스런 나무위에서 끝까지 매달려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21세기를 사는 나를 그렇게 사랑함이어서 그랬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내가 만났던 성서속의 사람들은 모두 다 나의 스승이 되었고 모두가 다 나의 멘토가 되어주었다. 나는 세상사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세상을 이기는 방법도 깨닫게 되었다. 그럼으로 인해 내가 행복해진 것은 물론이고 나의 가족,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참 된 길을 안내할 수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는 복음서에만 있지 않았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시기전에도 계셨고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부터 계신 분이었다. 그분은 죽고 난 뒤에도 사셨고 죽기 전에도 부활하신 분이셨다. 세상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그분은 결코 죽음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분은 처음부활이셨고 영원까지 생명이시다.
그래서 나는 성서의 모든 사람들을 그분과 함께 만나러 갔다. 그들에게서 주님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에게서 부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행복해지고 자신만만해진 나는 이제 당신의 손을 잡고 그 멘토들을 만나러 가고자 한다. 부활하신 예수가 40일을 사셨던 그 땅을 지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스승들을 만나러 이제 떠난다.
가슴이 뛴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라디아서 6장 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