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되기 과외수업

1. 나의 가족, 나의 감사

by 김다윗

나의 가족, 나의 감사

_내 가족으로 인해 나는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

나는 한때 아주 불행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것은 전적인 내 잘못이었다. 나는 아무 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고 또 그러다보니 어느 날 갑자기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정말이지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그 엄청난 일들을 받아들였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만큼도 힘들여 대비하지 않고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는 만큼도 깨어서 고민하지 않은 채 결혼이란 문을 들어서고 말았다.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지만 아무나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아내의 품보다 따뜻하고 아이들을 안는 그 포옹보다 가슴 가득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충만한 행복은 가정 안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가슴 가득한 행복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행복은 결혼한 사람들이라고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결혼의 신비를 이해하고 가정의 고귀한 가치를 알아 그 아름다운 일을 위해 철저히 준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값비싼 행복이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떤 일보다 결혼으로 인해 탄생되는 가정을 위해 더 철저히 준비하고 땀 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가 되고 가장 자랑스러운 남편이 된다.


악몽, 가정생활도 악몽이 될 수가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들 중의 하나는 바로‘가정’이라는 말이다. 내가 이토록 가정을 사랑하고 아끼게 된 것은 내 지난 날 동안에 악몽 같은 가정생활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이란 너무나도 아름답고 귀한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한 가장이다. 그래서 나는 가정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진다. 그리하여 나는 지난날의 나를 들추어내는 일에 용기를 냈고 지금의 가정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에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세 아이의 아빠로서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현역 선교사로서 어린 세 아이를 가진 아빠로서 이혼이란 엄청난 강을 건너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충격을 내 기억 속에서 쉽사리 지울 수 없었다.

당시의 나의 일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 1994년 2월 14일

성(聖) 밸런타인데이로 뭇 사랑들의 가슴이 설레이던 날,

난 내 나이와 비슷할 듯한 김 ㅇ숙이란 여판사 앞에 앉아 내 4년 6개월의 결혼 생활을 마금하는 ‘합의 이혼 확인서’라는 걸 받았다.

세 아들을 둔 아빠인 채로 남편이란 직분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현역 선교사로서…….

이 돌이킬 수 없는,

벗어버림으로써 더 더욱 무거워져 버린 멍에를 안고

내 사랑하는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갈까.

날개를 꺾인 채 이 널따란 대지를 끝까지 날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에도 세 살 박이 장남 필립은 마주 앉은 식사 시간에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빠 엄마 다비드 다니엘 필립이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후회는 후회일 뿐

혼자가 된 남자가 세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뒤였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엘 입학하는 날, 나는 그 아이가 잡을 엄마 손이 없음으로 인해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나는 내 인생에 가득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을 낼 힘이 소진된 것 같은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빠, 난 엄마가 필요해요

어느 날 학교를 다녀 온 큰 아이가 말했다.

“이젠 아빠랑 엄마랑 동생들이랑 같이 살고 싶어요.”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이젠 그 엄마랑 살 수 없다고, 엄만 이제 다른 아빠랑 산다고.

눈이 동그래진 그 아이는 그러면 다른 엄마를 데려오라고 했다. 자기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선생님이 내일 엄마를 학교에 데려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밤 그 아이를 안고 목에서 꺼억 꺼억 소리가 나도록 울었다. 내 인생에서 결코 떠나주지 않을 것 같은 슬픔을 저주하며 나는 난생 처음 그렇게 울었다.

다시 여자를 만날 자신도, 다시 여자를 만날 용기도 없었던 나는 불쌍한 내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엄마 될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기를 나는 그날 밤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다.


천사로 내게로 온 아내 다리아

그녀는 오래전 내가 섬기던 모스크바의 한 교회에서 보았던 소녀였다. 그녀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내가 일하는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그 후 난 내 인생의 큰 시련이었던 이혼으로 인해 그 거룩한 선교지를 떠났고 그리고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난 그녀의 이름도 나이도 기억할 수 없었고 얼굴조차 그릴 수 없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될 사람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던 중 어느 날 나는 꿈속에서 그녀를 보았다. 내가 선교사로 일했던 그 교회의 집사였던 그녀의 할머니 할아버지만 아니었더라도 꿈속에서 본 그녀를 나는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기도로 알게 된 그녀를 그 당시 나의 비서로 일했던 분을 통해 수소문해서 다시 찾았다. 그리고 그녀를 만난지 얼마 안 되어 우린 결혼하게 되었다.

그 결혼에 관한 스토리는 나의 책 ‘당신의 자녀도 거장이 될 수 있다(북랩)’에서 적었기에 나는 여기서는 생략하려 한다.


사랑의 위대한 힘

-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

난 그녀를 만나고 인생에 있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지를 깨닫게 되었다. 스무 살이 채 안 된 그녀였지만 그녀가 우리 가정으로 오게 된 이후, 나와 내 아이들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마른 논에 단비가 내려 시들어 가던 벼들이 활기로 넘쳐 살아나듯 우리 가정은 놀라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여전히 가난하고 환경은 열악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행복을 쌓아가는 일을 방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끝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녀는 기다리는 일에 달인이었다. 물론 그 기다림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녀는 나를 믿었다기 보다 그녀의 하나님을 믿었고 그녀의 가슴속의 사랑의 힘을 믿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은 힘없는 사람들의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여기고 또 그것은 막연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여기지만 기다림이야말로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고 자신을 훈련하는 위대한 힘이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사랑과 그녀의 기다림이란 묘약으로 회복되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나의 아이들 또한 기쁨의 아이들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결혼이 행복하고 가정이 달콤하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누군들 결혼이 행복한 일임을 모르며 가정이 달콤한 보금자리임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누리지 못하며 그 사실을 현실로 끌어들이지 못한다.

나는 그녀를 통해 삶의 기쁨을 알아갔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녀에겐 가난도 삶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일정한 수입이 없는 가장이었다. 선교지에서 돌아 온 실패한 전직 선교사는 밥 벌어 먹을 만한 마땅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린 늘 가난했다.

가난은 삶에 불편을 주는 요인이 되지만 그녀는 그 가난이 그를 불행으로 끌고 가도록 내 버려두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린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으로 먹을 것이 없던 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로 인해 나를 원망하지 않았고 우리 가정을 돌보실 하나님을 늘 신뢰하고 기다렸다. 그러는 그녀가 나는 늘 고맙고 미안해서 부족하지만 늘 최선을 다했다. 가난할수록 우린 더욱 서로를 신뢰했고 다가올 소망을 늘 함께 붙들었다. 지독한 가난이 우릴 불행하게 만들질 못했다.


여덟 명의 엄마가 되다

십년동안을 함께 살며 아내는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착한 아내로, 그리고 좋은 엄마로서 우리 가정을 기름지게 했고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한 여인의 위대한 힘을 그녀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그녀로 인해 나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여성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위대한 에너지임을 나는 그때부터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내 삶에 가장 빛나는 보석이라고 늘 믿는다. 그녀가 있어 난 늘 행복하고 그녀로 인해 나에겐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 나는 그녀의 팬이며 그녀 또한 나의 팬이기도 하다.


장남 필립

- 그는 늘 아빠의 친구로 아빠 곁에 있었다.

필립은 돌이 지나자마자 아빠를 따라 모스크바를 갔다. 그의 유아시절은 모스크바에서 보냈고 아빠가 어려운 일을 당해 혼자 있게 되었을 때도 그는 늘 아빠 곁에 있었다. 그의 아빠인 나는 그를 보며 어려운 시간들을 인내했고 혹독한 시련들을 견디어냈다.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찾았던 추운 바닷가에서도 그는 아빠와 함께 있었고 갈 곳 없고 하릴없던 가난했던 찬바람 불던 그 시절에도 그는 아빠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내 곁에 없었더라면 나는 그 고난의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지금도 아득해진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자식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커다란 복이자 기쁨이고 또한 삶의 의미이다.


아프리카에서, 시베리아에서

필립은 선교사였던 아빠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시베리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프리카의 대 자연을 바라보며 그 대지 위를 맨발로 뛰어다니며 검은 얼굴의 친구들을 사랑했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세상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배웠다.

아프리카 전도 여행 중에 검은 빛깔의 모래가 펼쳐져 있는 감비아의 대서양 바다를 산책했고 비행기가 결항된 찜통더위의 가나의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폭설이 일상적으로 내리는 시베리아의 한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고 끝이 어딘지도 모를 바다 같은 바이칼 호숫가에서 훈제로 구워 파는‘오물’이라는 물고기를 사서 손으로 뜯어 먹었다. 아빠를 따라 시베리아 선교 여행을 떠날 땐 두 눈만을 노출할 수밖에 없는 혹한의 추위 속에 세 시간 비행기를 타고 열일곱 시간을 차로 달리고 쉰 두 시간의 기차 여행을 견디고서야 그 여정을 마치기도 했다.


말아톤으로 인내를 배우며

아빠의 유학을 따라 갔던 싱가포르에서는 그는 유독 달리기를 좋아했다. 밀림이 우거진 싱가포르의 산길을 달리며 평생 흘릴 땀을 쏟았고 숲 속을 기어 다니는 이구아나를 사랑스레 바라보고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람부탄 열매를 던져주는 원숭이 가족의 우정을 받아먹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그 싱가포르에서 열네 살 되던 해엔 10킬로미터 단축 마라톤을 완주해 메달을 받기도 했다.


이스라엘을 사랑한 아이

그는 유독 중동의 이스라엘을 사랑했다. 날마다 그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던 그는 그 땅에서 일어나는 폭력 사태로 인해 그곳의 사람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울면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장차 그 땅을 위해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땅에 있을 것 같은 미래의 자신의 아내가 될 누군지도 모르는 한 유태인 소녀를 위해 날마다 진정으로 기도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이 먹지 않는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았고 날마다 성서의 말씀을 외우기 시작했다.


성경을 통째로 외우는 아이

필립은 성경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 그는 성경을 읽고 외우고 읊조리고 그 말씀대로 사는 일에 전념하기위해 다니던 학교도 그만 두었다. 그는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로마서와 마가복음을 통째로 다 외웠고 열여덟 살이 되는 해까지 신약 성경 전체를 다 외우기 위해 지금도 부지런히 땀을 흘린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경대로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그의 행동 양식은 항상 성경을 따른다.


프로골퍼를 꿈꾸는 아이

필립은 열두 살이 되던 해엔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보다 일찍 그 시험 준비를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현재 한국의 법으로는 만 열두 살 전엔 그 시험을 치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후 필립은 초, 중, 고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를 단 일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그 후엔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가족이 함께 잠시 살기 위해 이주해온 필리핀에서 우연히 골프를 시작했다가 자신이 그것을 좋아하게 된 것과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골프를 시작한 지 사 개월 만에 싱글을 쳤고 구 개월 만에 지역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래서 그는 대학엘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 골퍼에게 대학은 필요치 않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단지 대학 졸업장 하나만을 위해 그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는 주요 언어들을 습득하고 독서를 더 많이 하고 날마다 성경을 읽고 외움으로 깊이 있고 폭 넓은 지식인과 지혜자가 되기 위해 힘을 기울인다.

그는 오늘도 새벽녘에 기도함으로 집을 나서 해가 떠오르는 것과 함께 티오프를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푸른 초원 위를 거닐며 미래의 프로 골프계의 거장을 꿈꾼다.


너무나 잠깐 나와 함께 하다 너무나도 빨리 떠난 둘째 아들 다윗

다윗은 만 5년 7개월을 이 땅에서 살다 저 천국으로 간 나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중의 첫째였다. 너무나도 잘 생겼고 사랑스러운 사내아이였다.

아빠가 설교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그는 사고로 이 땅을 떠났다.

그날 모든 가족이 잠든 새벽 한 선교단체에서 강의하기위해 내가 집을 나서던 때에 혼자 일어나 “아빠!”하고 부르던 그였다. 그날 오후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땐 그의 온몸은 식어 있었고 더 이상 아빠를 향해 웃어줄 수 없는 시신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도 사랑스럽던 그가 그렇게 아빠를 이 땅에 두고 떠난 것이다.

그가 떠난 전날은 어린이 날이었는데 가난했던 나는 그에게 달리 선물을 사주지 못하고 수소 가스가 든 풍선을 하나 사주고 그가 먹고 싶다고 했던 수박을 반통 사와서 저녁에 나눠 먹었었다. 내가 두고두고 그에게 미안했던 것은 그 당시 나는 그리 훌륭한 아빠가 아니었기에 그에게 마음껏 사랑을 부어주지 못한 것이다.


그가 떠나고 나는 마침내 아빠가 되었다

그를 잃고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그를 떠나보내고서야 나는 아버지의 사명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떠나서 나를 이 땅의 아버지로 세워주었고 언제 어디서든 나는 그를 기억하며 흐트러진 내 옷매무새를 여밀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내 가슴속 깊이 눈물을 담아 주었고 슬픔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를 진정 깨닫게 해 주었다. 내가 그를 생각하는 날은 언제든지 나는 내가 서있는 땅에서 성자가 된다. 그를 다시 만날 천국이 나는 이미 정들어 있다. 그는 나의 영원한 스승이 되었고 그로 인해 나는 나의 이름을 다윗으로 바꾸었다. 지금도 나는 그가 너무 그립고 그가 너무 보고 싶다. 그를 다시 만날 날을 나는 너무 고대하고 있다.

나의 너무나도 사랑스런 아들, 다윗! 그는 지금도 이 부족한 아빠의 가슴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다윗! 잠깨어 앉은 이 새벽에도 아빠는 네가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립다.


천사 같은 가슴을 가진 다니엘

쌍둥이 중의 둘째로 태어난 다니엘은 또한 천사의 목소리를 가졌다. 그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하나님을 찬양할 때면 많은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밀려오는 감동을 받는다.

그는 어릴 때에 형제의 죽음을 경험했고 그래서 그는 슬픔을 알고 눈물을 이해하는 아이로 자랐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다 학교를 그만 두고 영적인 훈련을 쌓았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외우며 그 말씀을 지키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도 필립과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 전체를 영어로 외우고 있고 그의 나이 16세가 되는 올해 말엔 그것을 다 외우게 될 것이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아프리카를 사랑하여 그는 아프리카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일찍이 품었다. 그의 노트엔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의 상황과 기도 제목이 적혀있고 그는 그것을 보며 날마다 기도한다.

그는 마음이 따뜻한 신사다. 누구에게나 정중히 대하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푼다.


그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는 성악가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서만이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그분께 약속했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인 노래들을 부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갈고 닦아 오로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노래들을 부른다. 아빠인 내가 보기에 그는 진정 하나님 앞에 선 예배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이 결정한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킨다. 나는 그를 보며 부끄럽지 않는 아빠가 되려고 애를 쓴다.


왕비가 될 아나스타시아

우리 집의 첫 딸로 태어난 아나스타시아는 다윗이 세상을 떠난 지 약 구 개월 만에 이 땅에 태어났다. 그래서 난 ‘부활’이란 뜻을 품고 있는 ‘아나스타시아’라는 이름을 그녀를 위해 지었다.

예쁘고 밝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그녀를 두고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녀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시기를 원하시는지’를 그녀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 여쭈었던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 마음속에 ’왕비‘라는 말이 솟구쳤다. 나는 나의 장난기가 발동한 것을 송구스럽게 여기고 다시 그분께 여쭈었다. 하지만 계속 왕비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그 후 계속해서 조심스럽게 기도했지만 그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렇게 기도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 들은 것이라면 그분이 내가 드리는 기도 중에 고쳐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그것을 위해 기도하지만 그럴수록 그녀가 왕비가 될 것이라는 깊은 확신만 들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매일 그녀가 장차 왕비가 될 것을 위해 기도한다.

그녀는 지금 아홉 살인데 피아노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여러 나라의 언어를 배우며 집에서 왕비 수업을 쌓아간다. 학교는 가지 않는다. 학교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나라의 왕비가 되어 그 나라의 주권을 송두리째 주님께 올려드리는 그런 사람이 되길 매일 기도한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다윗

그의 형 다윗이 천국으로 간 날로부터 삼년이 된 바로 그날 그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름을 또다시 ‘다윗’이라고 지었다. 그는 현재 일곱 살이지만 지혜롭고 선하며 아름다운 소년이다. 동생들이 그를 귀찮게 해도 결코 화를 내거나 혼내지 않는다. 그는 늘 선한 미소를 품고 있고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다. 긴 머리칼을 좋아하고 형과 함께 다니며 하는 골프에 큰 재능이 있고 피아노 치기를 좋아한다. 특히 야채를 좋아하고 우동을 즐겨 먹는다.

얼마 전 그는 친구들 앞에서 골프 스윙을 선보이다 자신이 친 공이 벽을 맞고 돌아와 그의 이마를 때려 큰 상처를 입었다. 급히 달려간 병원 응급실에서 스무 바늘을 꿰매어야 했다. 마취주사가 그의 상처를 열 번도 넘게 찔렀지만 그는 응급실 천장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것을 보고 나는 뜨거운 눈물을 삼켜야했다. 일주일후 꿰맨 상처의 실밥을 푼 날 곧장 골프장으로 가서 아빠와 함께 18홀을 돌았다.

나는 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또한 기대하고 있다. 이름이 서로 같은 우리는 너무 친한 사이다.


마리아 코이노니아

싱가포르에서 그녀가 태어났을 때 나는 그녀의 이름을 짓기 위해 오래토록 고민했다. ‘마리아’라는 이름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아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또한 ‘코이노니아’라는 이름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유학중이었던 나는 아내가 그녀를 출산하자 그 출산비용을 대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연락을 해 오셔서 안부를 묻던 한 성공회 신부님의 사모님께서 그 출산 비용 모두를 보내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 이름에 ‘코이노니아’라는 이름을 덧 붙였다.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는 여러 말로 번역될 수 있지만 그중의 주요한 뜻은 ‘나눔’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코이노니아’가 되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예뻐 눈이 부신다. 그녀는 보석 같은 얼굴을 지녔다. 언니나 오빠 그리고 동생들과 나누기를 좋아하며 잘 웃는 그녀는 영락없는 어린 소녀 천사다.


새해 아침에 태어난 코이노니아

그녀는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동해안 바닷가의 한 오두막에서 우리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을 때의 어느 해 1월 1일 아침에 태어났다. 아무리 난방을 해도 실내 온도가 17도를 넘지 않던 추운 바닷가 오두막에서 그녀는 뜨거운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듬뿍한 사랑의 수혜자였다.

새해 아침 아내의 진통 소식을 듣고 평소부터 우리가족과 사랑을 나누던 의사는 단숨에 달려왔다. 자신은 아이를 한 번도 출산한 경험이 없던 처녀의사인 그녀는 아내가 아이를 낳자마자 주일이었던 그날 교회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것으로 아내의 출산 비용 모두를 댔다. 나는 그 사랑을 잊지 못한다.

에클레시아는 그렇게 소중한 사랑을 딛고 이 세상의 삶을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그 주님의 교회를 이 땅에 굳건히 세우기를 원해 그녀의 이름을 ‘교회’라는 헬라어인 ‘에클레시아’라고 지었다.


엄마를 꼭 닮은 딸, 아도니아

그녀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나는 호주의 아름다운 도시 골드코스트로 강의를 위해 떠났다. 아내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지만 약속된 집회를 취소할 수 없었다. 나는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해안이 있는 그 도시에서 아내와 어린 딸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줄곤 하나님께 그녀의 이름을 달라고 기도했다. ‘아도니아’라는 이름의 뜻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나의 주님이시다’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의 신앙을 고백한다. 눈이 무척이나 크고 반짝이는 그녀는 오십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은 백세에 이삭을 낳았지만- 이 아빠로 하여금 그녀가 곁에 있는 한 언제나 청춘임을 상기시킨다.

아도니아가 태어난 날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말았으면 어떻겠냐고,

침대에 누운 아내는 대답했다.

아직 하나가 더 남은 것 같다고,


이렇게 해서 하나 남은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가 라라다.


아빠를 꼭 닮은 딸, 라라, 라라 예슈아

마닐라의 외곽도시 안티폴로라는 곳에서 막내가 태어났다.‘라라 예슈아’라는 이름의 뜻은, 예수님의 웃음이다.

나는 평생의 소원이 예수님께서 늘 웃으시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막내딸의 해맑은 웃음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나는 소망한다. 그녀의 이름이 불리는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전능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길 말이다.


감사하는 만큼 가족의 행복은 커진다.

가족 그것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다.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것과 출세하는 것 등은 가족으로 인한 축복과는 비교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그것은 축복의 차원에서 다른 것이다. 가족이 있다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의 거의 전부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족의 행복을 모르는 사람은 그 어디에서든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가족이 있어 행복한 사람이다. 이 세상의 그 누가 가족이 없으랴마는 나는 나의 가족으로 인해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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