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에서 돌아온 타나는 그대로였지만 큰 대회를 마치고 난 골프장은 폐업한 놀이공원 같았다. 라운딩을 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출근한 몇몇 안 되는 캐디들도 양지쪽에 앉아 힘없는 착한 눈으로 정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오바브마을을 다녀온 후로 아도니아의 건강은 확연히 나빠졌다. 아픈 아도니아를 두고 마리아만 데리고 골프장을 다니는 횟수가 늘어났다. 라운딩을 하는 마리아를 따라다니지만 집에 혼자 있는 아도니아 생각에 눈시울이 자꾸 붉어졌다. 몇 번 남지 않은 라운딩이 아쉽기만 했다.
골프장에서 만난 J사장님
아침에 일어나 한국 컵라면이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아도니아가 말했던 그날 우리 셋은 마지막 과자를 아껴먹는 아이처럼 소중한 라운딩을 시작했다. 퍼스트 나인홀을 마치고 후반 첫 홀인 10번 홀 티샷을 하려는데 뒤에서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분이 우리를 따라와서 우리더러 한국사람이냐고 물었다.
J사장님은 타나에서 사업을 하는 분인데 두어 달 동안 한국을 다녀왔기에 우리는 서로 초면이었다. 라운딩을 하다 말고 당장 점심을 함께 하자며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골프장에서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예쁜 이층 빨간 집에서 관리인 두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계셨다. 집에는 한국 컵라면뿐만 아니라 한국 식재료가 가득했다. 두 딸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날 급히 끓여주신 한국 어묵탕을 허겁지겁 먹었다. J사장님은 식사가 끝나자 이어서 중식당으로 저녁을 초대하셨다.
그간 너무 고생이 많으셨어요
J 사장님 보시기엔 얼른 보아도 우리가 타국의 시골마을에서 고생이 심했음이 보였는지 귀국날까지 사용하라며 선뜻 승용차 한 대를 빌려주셨다. 그리고 그 차 안에 한국 식재료를 한 아름 실어주셨다.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꿈을 꾸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엔 승용차를 타고 골프장으로 갔다. 매일 아침 골프장 가는 길에 우리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청년이 도로가에 서 있었지만 도리어 그가 우리를 바라보기를 바랬다. 그날 아침은 그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던 전날까지의 그 오르막길은 더 이상 땀을 훔칠 필요가 없는 길이 되었다.
그날 라운딩을 마치고 두 딸과 함께 소원이었던 KFC를 갔다. 여기에 있는 KFC 치킨이 한국보다 더 맛이 좋다고 누군가가 말해줬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가족들에게 줄 선물도 샀다. 선물이래야 후추 몆 통, 작은 커피 몇 봉지였지만 딸들은 이미 한국행 비행기를 탑승한 것처럼 모처럼 얼굴이 밝고 예뻤다.
승용차가 있으니 그간 힘들었던 일들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마다가스카르도 이만하면 살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채석장 아이들
골프장 부근에는 나지막한 돌산이 있고 거기에 채석장이 있다. 돌을 캐내어 잘게 부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부근에 사는데 아이들만 500여 명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P선교사님은 그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식사를 대접하신다. 골프장에서 가까워서 딸들과 함께 두어 번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갈 때마다 마음 깊이 감동을 받았다. 그들이 그렇게 온 가족이 모여 삶을 위해 돌을 깨는 것이 장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하는 분이 있어서 고맙기도 했다.
이제 우리도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승용차가 생긴 김에 P선교사님이 사역하는 현장을 다시 찾았다. 마다가스카르를 떠나는 날까지 쓰고 남을 것 같은 돈을 다 드리고 왔다.
이별을 준비해야지
떠날 때가 되니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골프장 여기저기 피어있는 분홍색 꽃을 매달고 있는 자카란다도, 매일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었던 페어웨이도, 러프도, 그리고 간혹 나타나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던 카멜레온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골프장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려주었던 누룽지는 매일 우리가 식사를 챙겨주었던 골프장의 주인 없는 개였다. 모두가 힘겨웠던 우리 삶에 귀한 친구들이었다. 누룽지라는 이름을 붙어주었던 마리아는 우리가 가고 나면 누가 누룽지에게 밥을 줄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골프에 절어 피곤했던 우리 몸을 씻어주듯 저녁이면 쏟아지던 사랑스러웠던 빗소리를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아, 마다가스카르,
아, Golf du Rova! 언덕 위의 골프장!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