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안녕, 다시 만날때까지

by 김다윗

3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낸 마다가스카르를 쉬이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너무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막상 떠난다 생각하니 모든 게 아쉽고 가슴이 저렸다.

길가에 있는 캐디전용 식당에서 돈을 아끼려 한 끼에 우리 돈으로 800원으로 점심을 때우던 일, 매일 아침 걸어서 골프장 가는 길이 힘들고 땀나서 한 정거장거리의 만원 버스를 타다가 통로가 막혀 미처 내리지 못해 더 많이 걸어야 했던 기억들, 그 버스에서 벼룩이 옮아 가려움에 견디기 힘든 여러 날을 보냈던 일, 한밤중 폭풍에 담벼락 흙벽돌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강도가 들었다며 오들오들 공포에 떨던 딸들이 아빠를 깨우는 바람에 골프채 들고 도둑을 무찌르려 싸우러 나갔던 일, 골프장을 연고로 삼고 살아가지만 날로 갈비뼈가 앙상하기만 했던 주인 없는 강아지의 도시락을 날마다 싸갔던 일들, 힘겨웠지만 슬프지만은 않았던 골프장 주변의 기억들, 그냥 한 페이지의 추억으로 넘겨버리기엔 그 여백이 너무 촘촘하고 부족했다.


혹여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쓰다만 물건들이나 그릇들은 버리거나 이웃에 사는 이들에게 나눠줄까 했는데 J사장님 댁에 맡겨 보관하기로 했다.


3개월 전 어렵게 징검다리 건너듯 처음 낯선 길로 왔던 여정을 역순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또 다른 설렘이 있었다.


모리셔스는 아름답지 않았다


귀국길엔 모리셔스에서 1박을 해야 하는 여정이었다. 숙박비를 아끼려 너무 저렴한 호텔을 예약하는 바람에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택시요금을 숙박비와 비슷하게 지불해야 했다. 저녁에 도착한 호텔에서는 식사를 할 수가 없어 낯선 거리로 나선 우리는 두어 시간 동안 거리를 헤매었지만 불 켜진 식당 간판만을 봤을 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객실엔 수건만 달랑 세 장이 있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냉장고도 없었다. 지치고 배가 고픈 딸들을 그냥 재울 수가 없어서 리셉션으로 내려가 졸고 있는 할아버지를 깨워 마른 빵과 주먹보다 작은 사과를 얻어다가 물과 함께 먹였다.


다음날 아침 아름답다고 소문난 모리셔스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전날밤 헤매고 다녔던 거리로 다시 나갔다. 우연히 찾아간 전통시장은 어제밤과는 달리 활기가 넘쳤다. 이른 시간이라 식사할 곳이 없었지만 시장골목을 돌아다니며 보이는 대로 군것질을 했다. 즉석에서 짠 과일주스도 마시고 로띠프라타도 먹었다. 정작 시간이 지나 점심 식당이 열렸지만 더 이상 먹을 배가 남아 있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나서 다른 가게에 있는 같은 물건을 보면 우리가 이미 구입한 물건들은 너무 비싼 가격에 산 것임을 알았다. 우리들의 짧은 모리셔스 여행은 그걸로 끝이었다.


한국은 겨울이구나


1월의 인천공항에는 까만 얼굴을 하고 여름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다시 돌아온 한국은 추웠다. 지난 삼 개월 동안 우린 추위를 잊고 있었다. 다시 추위를 마주하며 두꺼운 옷을 입고 계속해야 할 골프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지난 3개월은 딸들에게는 골프에의 출생이었다. 그간 동네 연습장에서의 오락 수준을 조금 벗어난 골프와의 사귐이 시작되고 거실을 오가며 KLPGA 중계를 호기심 있게 쳐다보다 골프의 룰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의 손을 잡고 한 번 찾아간 프로선수들의 시합에 갤러리로 갔다가 박인비선수의 사인볼을 선물로 받고 전인지선수의 우승 인터뷰를 턱밑에서 지켜보았던 딸들에게 골프는 희망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의 문턱에서 무모한 아빠의 이끌림에 아프리카까지 다녀온 딸들의 골프여행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운명이 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혹독한 세 달을 보내고 돌아왔지만 다시 돌아온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은 골프로 가는 길의 끄트머리가 어딘지 발끝을 한참 세워 목을 빼 쳐다보아도 어렴풋하게도 두 눈에 잡히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잃어버렸던 체중이 서서히 회복되었지만 그럴수록 우리 형편에 한국에서의 골프환경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거저 마다가스카르에서의 골프채를 부여잡고 힘에 부치게 몸부림쳤던 기억이 추억이 되고야 말게 뻔했다.


겨울이 왔으니 봄이 올게 분명하다


다시 더 지독한 꿈을 꾸지 않으면 이제껏 꾸었던 옅은 꿈을 아침 안개처럼 사라질게 뻔했다. 딸들의 미래를 그렇게 그냥 보고만 놓칠 수가 없었다. 지난 3개월 동안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땀과 눈물을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수는 없는 것이었다. 골프라는 세상에 다시 태어난 딸들이 걸음마를 배우고 길 위를 달리기 위해서는 아빠는 다시 미친 짓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을 미친 듯이 살지 않으면 남은 다른 날들은 미칠 기회마저 잃어버릴게 뻔했다. 생각은 점점 굳어져가고 있었다. 다시 그 평화스러운 전쟁터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전 07화7. 이제 남은 시간은 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