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은 딸 아도니아는 다시 아프리카로 갈 수가 없었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무엇보다도 용기를 내어 힘을 차리고 병마와 싸워야 했다. 다시 아프리카로 함께 가지 못해 안타깝지만 골프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너무나 사랑하고 열심을 다했던 골프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골프를 그리워하며 몸과 마음이 회복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대신 다윗이 아도니아의 몫을 얹어 마리아와 함께 마다가스카르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다윗
다윗은 스물두 살이다. 아빠의 일로 인해 가족이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근교의 한적한 마을에 살았던 때에 다윗이 태어났다. 선교사로 살았던 우리 가족은 다윗이 태어났던 그 이듬해에 다시 동토의 땅 시베리아로 삶터를 옮겼다.
러시아의 극동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달리는 열차가 모스크바를 향해 일주일간을 달리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정차하는 바이칼 호수가 있는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다윗은 짧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주 우리 가족은 바이칼호수로 소풍을 다녔다. 신문지에 둘둘 말아 훈제를 해서 파는 꽁치처럼 생긴 '오물'을 맨손으로 호호 불며 검은 빵과 함께 뜯어먹었던 그 맛은 아직까지 기억을 할 수 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혹독한 겨울을 시베리아에서 지낸 우리는 이듬해에 다시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적도 바로 아래의 도시,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잠시 식혀주기 위해 매일 쏟아지는 스콜로 인해 아름답고 깊은 숲이 밀림을 이루고 있는 도시국가인 그곳에서 행복했던 우리 가족에게 예쁘고 착한 딸, 다윗의 바로 아랫 동생인 마리아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후에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유쾌한 나라인 필리핀으로 많지 않은 짐을 가지고 온 가족이 또다시 이사를 했다.
아빠가 운영하던 학교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근처에 있는 어느 골프 리조트 안에 있었던 연유로 다윗은 다섯 살 즈음에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장의 푸르른 풀밭에 얹혀있는 하얀 골프공을 쫓아 사슴처럼 뛰어다니며 다윗은 골프를 친구로 삼았다. 그의 작은 골프백을 메고 다녔던 캐디들은 그를 '탈린티드 보이(talented boy)'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후 유년시절에 엄마의 고향이었던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국립골프학교를 다녔었다. 다윗의 골프공부는 그렇게 꾸준히 어어갔다.
하지만 청소년이 되었던 다윗은 골프를 사랑했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고민이 컸었다. 미국이나 유럽선수들을 보면서 골프백을 메고 그들의 세상으로 뛰어들기를 다윗은 두려워했다.
그러던 다윗은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꾸준히 공부했던 컴퓨터를 붙들었다. 마침내 다윗은 프로그래머가 되었고 열아홉 살이 되자 지인의 추천으로 서울의 어느 IT회사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아빠인 나는 어릴 때부터 골프를 좋아했던 다윗 속에 흐르는 골프의 재능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더 늦기 전에 깊이 파묻어 놓았던 꿈을 다시 캐내어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나의 거듭된 설득을 다윗은 끝내 뿌리치지 않았고 다시 골프인생을 살아보기로 결정을 했다. 그래서 아도니아가 잠시 놓기로 했던 골프채를 다윗이 대신 붙들게 된 것이다.
싱가포르를 거쳐
다시 아프리카로 가는 길은 내가 유학시절을 보내며 서너 살의 다윗이 살았었던 싱가포르를 경유하기로 했다. 싱가포르까지는 저가항공을 이용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우리 가족의 많은 추억이 있었다.
그곳에 있을 때에 나는 자주 아이들을 데리고 짙게 우거진 밀림을 탐험했다. 숲이 우거진 오솔길에서 만난 이구아나와 함께 산책을 하고 개구쟁이처럼 나무 위를 날아다니던 윈숭이 가족이 던져주는 람부탄을 받아 까먹으며 우리도 깔깔거렸다. 퍼붓던 스콜을 만난 숲 속에서 온통 젖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나의 개인 영어선생님이었던 옥스퍼드 대학출신의 영국아가씨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클래스 메이트였던 싱가포르인 친구에게 소개하여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었고 그 결혼식에서 나는 축가를 불렀다. 나를 형이라고 불렀던 그 친구 Alan은 그 후에 네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나는 난생처음 그와 함께 두리안 먹었다. 이런 고약한 과일을 왜 먹냐고 고개를 저었던 나는 이제 그 두리안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Alan을 만나 싱가포르에서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그의 후한 대접을 받았다. 하루 세끼를 싱가포르의 푸드코트를 돌며 함께 맛집여행을 했다. 그리고 미처 한국을 떠나올 때 준비하지 못했던 물건들도 구입했다. 신라면이 싱가포르가 더 저렴하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