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육체의 투정을 받아들이며

by 김다윗

한밤중에 싱가포르를 출발하여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잠시 경유한 후에 다시 갈아탄 에티오피아 항공기는 우리가 지난 세 달 동안을 땀 흘렸던 골프장 위를 낮게 날다가 우릴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이바투 국제공항에 내려놓았다.


얼마나 있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난번에 와 본 곳이라 설렘보다는 출발선에 선 마라토너처럼 자그마한 긴장이 우릴 맴돌았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은 다윗은 차창밖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골프장이 그리 멀지 않은 시내에 집을 구했다. 한국에서보다는 다섯 배는 비싼 가격의 2009년식 산타페차량도 구입했다. 먼 바닷길을 뱃길로 온 대가와 비싼 세금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에서의 안전한 삶을 위해서는 차가 꼭 필요하다. 청소나 빨래를 도와줄 메이드도 고용했다. 하지만 식사는 지난번처럼 내가 준비하기로 했다. 먼 타국에서 힘겹게 훈련하는 아이들에겐 먹는 것이 힘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다음날 바로 골프장을 찾았다. 4월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골프장은 우기가 지나간 터라 코스상태가 좋았다. 풀밭에 비스듬히 누워 플레이어를 기다리는 캐디들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매일 골프장을 찾는 골퍼의 수보다 너무 많은 인원의 캐디들이 있어 매일 일을 할 수 있는 캐디들은 소수이다. 그러다 보니 일이 없는 날에는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대부분이 기혼자들이고 일흔이 넘은 캐디도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우리 캐디를 했던 Z는 우리가 떠난 뒤 자기에게 골프백을 맡겨주는 플레이어가 없어 우물 파는 현장을 전전하며 일하다 과로로 쓰러져 아내와 자녀를 남겨둔 채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늦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그의 집을 찾아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로하고 위로금을 드렸다.


이 골프장에도 소속된 프로가 있는데 그들로부터 코칭을 받을 수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캐디였다가 프로가 된 이들이다. 12월이 되면 골프협회에서 주관하는 마다가스카르 챔피언십이 사흘간 열리는데 이때에 프로를 준비하는 캐디들은 프로가 될 기회를 가지려 시합에 출전을 하기도 한다.


캐디나 프로들도 우리에겐 고마운 사람들이다. 프로에게 받는 레슨도 도움이 되고 레슨비 또한 저렴하다. 매일 쓰는 캐디에게 지불하는 캐디피는 우리 돈으로 5,000원 정도이다. 거기에 점심값을 좀 챙기더라도 고마운 가격이다. 캐디를 꼭 고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경비를 아끼려고 남아도는 캐디를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몸살이라는 이름의 불청객


아프리카의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몸은 이따금씩 투정을 부린다. 초기에 자주 찾아오던 배탈은 자취를 감췄지만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살이 오기도 하고 그를 동반한 두통도 반길수 없는 손님이다.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잘 먹을 수도 없고 회복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아프다가 어떨 때엔 다 같이 아프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연습스케줄에 공백이 생긴다. 골프라는 것이 잘 되다가도 며칠을 쉬면 풀다가 덮어놓은 수학문제처럼 또다시 신경을 쓸 일이 많다. 하지만 아픈 것도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휴식시간을 가질 턱이 없어 보이니까 몸이 우리를 억지로 쉬게 하는지도 모른다. 외면할 수 없는 손님이다.


사소한 병이란 없다, 여기 아프리카에선


얼마 전 한국에서 마다가스카르로 연주 여행을 오셨던 L선생님은 갑자기 이유 모를 코피가 터졌다. 지혈이 되지 않아 이곳의 병원엘 급히 갔는데도 지혈이 되지 않았다. 한국이라면 동네의 이비인후과 의원에 가서 레이저로 잠시 시술하여 지혈을 시킬 수가 있다는데 여기 병원에는 레이저 시술기가 없다. 사소한 코피가 지혈이 되지 않아 수혈을 해야만 할 처지에 놓였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가까이 계시는 의료선교사로 수고하시는 웬디선교사님 부부께서 정성껏 돌보고 간호를 했지만 지혈이 되지 않아 L선생님은 잠시잠시 의식을 잃기도 하셨다. 급히 귀국하여 응급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다음날 귀국하기로 결정을 했지만 먼 귀국길에 동행할 사람이 없어 안타깝기만 했다.

골프장에 있는 마리아와 다윗을 급히 불러 의논을 하고 내가 L선생님을 모시고 한국을 다녀오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에티오피아를 경유하는 먼 하늘 길을 비행하여 무사히 귀국을 했고 곧장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이튿날 아이들이 기다리는 마다가스카르로 되돌아왔다. 이렇듯 아프리카에선 건강해야 한다. 아프면 안 된다.


북한 사람이 되다


이곳에 살다 보면 물가가 아주 싼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안전하다는 이유로 외국인이 거주하는 주택임대료가 비싸고 비자를 받기 위한 경비도 큰 부담이다. 이번에는 장기거주비자를 받아야 한다. 정해진 수수료인지 거기에 보탠 청탁료인지 모를 적지 않은 액수를 영수증 없이 요구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비자를 받는 날 여권과 함께 거주증을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이민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주증에 적힌 나의 국적이 북한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한국여권을 가진 나의 거주증엔 프랑스어로 'Coree du Nord'가

인쇄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자신청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수수료도 전액 다시 내야 하지만 특별히 50% 할인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어둡고 음산한 감옥 같은 건물에서 긴 기다림에 지칠 무렵 이민국 직원이 다시 들고 온 'Coree du Sud'가 인쇄된 거주증을 받아 들고 돌아오면서 마다가스카르에서 처음으로 슬픈 마음이 들고 힘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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