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씩 연말이 오면 마다가스카르에서는 골프협회에서 주관하는 '마다가스카르 챔피언십'이라는 골프시합이 열린다. 골프장 멤버들은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큰 기대를 갖고 이 시합을 준비한다. 사흘간 개최되는 연중 최대의 시합에 우리도 참가하기 위해 신청을 하고 연습에 열중했다. 그간 땀 흘려 훈련한 날들이 스스로에게도,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게도 자랑이 되고 싶었다. 아도니아는 주니어그룹에 출전을 하고 마리아는 일반부에서 실력을 겨루게 되었다. 골프장 여기저기에는 후원사의 광고 현수막이 걸렸다. 오랜만에 우리의 삶에도 푸르른 활기가 넘쳤다.
시합 하루 전에 전해진 하얀 봉투
우리는 마다가스카르 챔피언십에 참가할 수 없다는 골프협회로부터의 공문이 이른 아침에 골프장에 도착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시합하루 전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 소식을 들은 여러 사람들은 그 내막을 알고 있는 듯이 말했다. 전년도 여성일반부의 챔피언이 마리아에게 위협을 느껴 마리아의 출전을 막으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멤버들도, 한국 멤버들도 그리고 캐디들도 한결같이 그렇게 말했다. 그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지만 딸들의 실망은 컸다.
이곳을 떠나기 전 그간 갈고닦았던 실력을 겨루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은 여기저기서 흔들리는 현수막처럼 가만히 붙들어 놓기가 힘들었다.
우리의 소식을 들은 오래된 교민 한 분이 협회에 항의를 했지만 허탈한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다음날부터 시합이 펼쳐질 사흘동안을 골프장의 함성이 그대로 전해질 이 작은 마을에서 머물 자신이 없었다. 딸들을 위로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슬픔으로 시작된 여행
마다가스카르 챔피언십이 시작되는 날 새벽 우린 짐을 싸서 떠났다. 어린 왕자의 바오바브나무와 바다가 있다는 무룬다바를 가기로 했다. 표현은 않지만 심히 지치고 더없이 실망한 착한 딸들을 위로하고 달래야 했다.
이른 아침 20인승 버스는 승객 12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15시간을 달려야 한다는 길은 수도 타나를 벗어나자 몹시도 험했다. 네 시간을 달린 후에야 버스는 작은 도시의 터미널에 정차하여 화장실엘 다녀오라 했다. 그 후로 버스는 하염없이 달렸다. 중간에 식사를 하라고 어느 식당뜰에 우릴 내려놓았다가 다시 태우고 계속 달렸다. 도중에 기사가 한 번 바뀐 버스는 15시간을 꽉 채운 한밤중에 습기 가득하고 단번에 온몸에 땀을 흐르게 하는 바오바브나무의 마을에 우릴 내려놓았다.
호텔은 잠들어 있고 리셉션의 젊은 남자는 졸고 있었다. 긴 여정에 군데군데 부서진 도로 위에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고통을 당한 우리는 침대에 쓰러져 아침까지 꼼짝하지 않고 깊은 잠에 붙들려 있었다.
바다는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밤새 덜덜거리며 찬바람을 내어주던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는 아침에야 우리를 깨웠다. 눈을 비비며 밖을 나가보니 조용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곁에 있었다. 하얀 모레와 파도에 부서지는 소리는 참으로 평화로웠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어린 딸들을 앞세워 너무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골프에 붙잡힌 너무나도 지친 시간을 보냈다. 잠시라도 골프생각을 접어두고 휴식에만 전념하려 애써 이것저것 즐거움을 찾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골프장 언덕의 흔들리는 현수막만 자꾸 떠올랐다.
바오바브나무가 여기 있었구나
오랜 세월을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곧게 뻗어 올라간 바오바브나무는 무척이나 키가 컸다. 바오바브나무 곁에 나란히 선 두 딸의 모습이 작은 인형 같아 보였다. 석양에 몸을 들어낸 바오바브나무들의 자태는 조물주의 솜씨가 얼마나 자애로운지를 형용할 길이 없었다. 우리 사람들도 평생을 살다 간 자리가 훗날 이토록 아름다울려면 어떻게까지 살아야 할까.
바오바브나무를 향해 나란히 앉은 두 딸을 보며 아빠는 또 목이 멘다. 골프장을 뒤로하고 이 먼 곳으로 달려왔지만 머릿속엔 여전히 골프장 생각으로 가득하다.
아도니아의 조증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어린 딸의 충격이 적지 않았는지, 너무 먼 길을 무리하게 달려왔는지 아도니아의 조증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말이 많아지고 불평이 많아졌다. 울증이 끝나갈 무렵에 한국을 떠나왔는데 다시 병이 악화되는 것 같아 두렵고 슬펐다. 아도니아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증상을 알아채고 조심하는듯했다. 슬픔을 피하려고 먼 여행을 떠나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더 이상 바다는 평온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 타나로 돌아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올 때보다도 몸은 더 피곤했다. 또 그 먼 길을 달려 돌아가야 할 길이 아득했다.
달리는 차창가로 언뜩언뜩 보이는 바오바브나무가 외로워 보였다. 운전기사는 뜻도 모를 노래를 하염없이 틀어놓고 끌 생각을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