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리, 집에 돌아갈 수는 있을까

by 김다윗

어언 마다가스카르에 온 지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국제공항이 가까운 골프장 위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항공기가 이착륙을 위해 굉음을 내며 낮게 비행을 했다. 우리도 그중의 한 비행기를 타고 와 내려서 이곳에 있지만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고개 젖혀 바라보며 다시 저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를 생각하며 비행기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곤 했다.


나는 잠자리에 들며 다음날 아침에 다시 눈을 떠서 딸들을 바라볼 수 있을지를 자주 의심했다. 그 밤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기도드렸다. 체중은 자꾸 빠지고 누우면 온몸이 땅속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아빠는 요리사


호텔에서 골프장 부근의 마을로 이사 온 주된 이유는 식사때문이었다. 아도니아가 연습 중에 쓰러진 이후로 내 손으로 직접 요리해서 먹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소달구지의 나무바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새벽을 가르는 시간에 나는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점심 도시락도 싸야 하고 골프장의 주인 없는, 오른쪽 뒷다리를 저는 강아지의 도시락도 빼놓으면 안 된다.


전기밥통이 없어 작은 냄비에 밥을 한다. 밥의 3분의 1은 누룽지다. 몇 안 되는 조리기구를 이리저리 돌아가며 반찬을 만든다.


문제는 식재료였다. 시내에 나가면 한국 못지않은 마트가 있지만 시골마을에서는 거저 식료품을 파는 구멍가게들이 줄지어 있을 뿐이다. 감자, 양파, 마늘 등 웬만한 것들은 있지만 주변의 텃밭에서 캐내어 가지고 온 것 같은 자잘한 것들이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도 가게 처마에 매달려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막상 살려면 망설여졌다. 냉장고도 없이 밖에 그냥 걸어둔 고기들에는 까맣게 파리들이 붙어있었다. 계란은 비싸기도 하지만 너무 지저분하고 불결하게 보여 쉽게 구입하기가 망설여졌다.


파리가 새까맣게 달라붙은 닭을 사서 몇 번이고 씻어서 마늘을 넣고 삶아 백숙을 해서 아이들을 먹였다. 소고기를 사서 스튜를 할라치면 고기가 너무 질겨서 몇 시간을 불에 올려놓아도 스튜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돼지고기를 사다가 제육볶음으로 상에 올리기도 했다. 애호박을 썰어 밀가루 묻혀서 계란물을 입혀 구워 도시락 반찬을 하기도 하고, 배추 전을 해서 몇 날 며칠을 그것만 먹기도 했다. 비가 내리는 날엔 감자 썰어 넣고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 매일 도시락을 싸서 가지고 다니며 클럽하우스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그늘 아래에서 소풍날처럼 점심을 먹었다. 골프보다 더 어려운 것은 매일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이었다.


우기에 접어들다


11월 말이 되니 매일 비가 쏟아졌다. 신기하게도 오후 늦게 시작한 비는 새벽이면 그쳤다. 익숙지 않은 일기에 비를 흠뻑 맞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매일 쏟아지는 비로 인해 골프장의 잔디는 푸르름이 짙어가고 페어웨이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덩달아 우리도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빨간 리치가 마을 시장에 나온 것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망고도 먹어보고 파파야도, 파인애플도 먹어봤지만 리치가 입맛에 제일 맞았다. 길거리 가게나 초등학교 앞에서는 리치 서너 알씩을 때 묻은 매대 위에 올려놓고 팔았다. 우린 주위사람들의 눈치가 보였지만 용기를 내어 1kg 혹은 2kg를 사서 도망치듯 집으로 와서 둘러앉아 껍질과 씨앗이 수북이 쌓이도록 매일매일 밥먹듯이 리치를 먹었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리치가 시즌이 다해갈까 봐 걱정하는 하는 사이 우리의 두 번째 달도 아쉽게 지나가고 있었다.


굿모닝을 외치는 아이들


일요일에는 마을 위쪽 언덕에 있는 교회를 다녔다. 나의 어렸을 적의 교회가 그곳에 있었다. 마을사람들 모두가 교회를 다니는 것 같았다. 태어나 외국인을 처음 보는듯한 아이들이 아침이건 오후건 우리를 볼 때마다 '굿모닝'을 외쳐댔다. 알고 보니 이곳에는 시간과 관계없이 우리처럼 인사는 '살라마(Salama!)' 한 가지였다. 그 교회의 목사님의 부탁을 받아 간혹 설교도 하고 아이들에게 영어노래도 가르쳤다. 내 어린 시절처럼 동네아이들은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했다. 시골마을의 교회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골프장에서 만나는 우리 교민들이 현지마을에 사는 것이 위험하지는 않냐고, 불편하지는 않으냐고 묻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점점 마을 사람들과 친해졌다.

이곳에서 살 날이 점점 짧아지고 크리스마스는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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