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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이취미 Jan 20. 2022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완성을 꿈꾸지 않는다


지난 연말

우리 집 부엌은 비빔밥 주간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으면서

특별식을 준비했는데


밑반찬을 만들어 두지 않고

조금씩 장을 봐서

한두 가지로 완성되는 식단을

생활화하였기에

이런 메뉴는 특별식이다



데치고 볶고 무치고

비빔밥 재료 완성!

순서를 정하고 시작하니 금방이다

무침도 볶던 팬에 그대로

콩나물은 아삭하게

데쳐 내기만 한다



그렇게

싱숭생숭한 연말에

고추장과 당근채를 더해서

두부 넣은 뭇국을 곁들여서

맛있게 몇 끼를 먹었다


질리지 않는 한식은

비빔밥과 김밥

개인 취향이겠지만 나는 그렇다


먹고사는 것이

좀 더 단순해지고 싶은 미니멀리스트지만

이런 집밥이 좋아서

외식을 하면 타박이 많은 사람이라서

더 간소해지기가 어렵다



1월 1일엔 떡만둣국

겨울엔 자주 먹지만

이 날은 더 특별한 기분이 든다


몹시 추웠던 어느 날은

무와 어묵의 조합으로 한 냄비

다음날까지 반찬 걱정 뚝



순두부가 먹고 싶었던 저녁

두부가 있다면

순두부를 따로 사지 않아도 괜찮다

숟가락으로 대충 으깨서

(물이 많은 순두부보다 더 좋더라)


이런 편리함이 좋다

갖은 재료가 없어서 아쉽던 마음은

언제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부엌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간소한 삶을 지향하고

달라진 부엌 풍경이다

찌개 먹을 땐 반찬을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

한두 가지 재료로 만족한다



스텐 팬은 아직 연마 중이지만

고구마 전도 문제없다


볶음밥이나 국수를 볶을 땐 좀 붙지만

주재료를 볶다가 밥이나 국수는 나중에 넣고

빠르게 볶아내고 불을 끄면 할 만했다

만족할만한 실력이 될 때까지

둥근 웍으로 견뎌 보려 한다

부담 없이 긁으면서

뒤적거릴 수 있어서 좋다



단짠단짠 한 고추장 돼지불고기를

깻잎에 싸서 어느 날 반찬으로

남은 양념과 고기는

잘게 자른 김치와 밥 참기름 김 한 장으로

매콤한 볶음밥으로 또 한 끼

간장 불고기로도 맛나겠지?


테프론 팬은 간기에 약하다고 하니

진한 양념과 간기 있는 음식은

스텐 냄비나 스텐 팬에 하면

테프론 팬을 더 깨끗하게 오래 쓸 수 있다



냄비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춘장 3분의 1 봉지를 볶는다

(식구수에 따라 2분의 1 봉지 )


꼭 약불로 은근히 볶기

모든 요리의 실패는

불 조절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1인


끓기 시작하면 3분 정도 볶아 주고

중간 크기 양파 한 개를 넣고

투명해질 때까지만 볶아 준다

고기 정도는 패스

마지막에 올리고당과 설탕으로

춘장에 짠맛이 누그러질 만큼만

먹어보고 가감


간짜장과 비슷한

양파 춘장 소스 완성!

바쁜 아침에

주말 아점

피곤과 귀찮음이 몰려오는 저녁

스크램블 에그와

그것도 귀찮다면 프라이!

뜨거운 밥에 비벼 먹으면 맛있다

아이들에게도 자신 있는 맛 !


집밥을 사랑한다면

간단한 한 끼가 될 듯하다



언제나처럼 생강차다

쉽게 구하는 재료에

어렵지 않은 준비로

영양제와 건강보조식품을 대신한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일부러 찾지 않는다


직장에서나 급할 때는

생강청에 생강가루를 조금 더 넣어서

부족한 생강 맛을 보충해서 먹는다

영양제는 따로 필요 없다 하셨던

유명한 박사님 말씀에 힘이 나기도


열흘을 앓아야 끝나던 감기를

생강차를 매일 먹으면서는

거의 앓지 않게 되었다

몸을 따듯하게 해서 여자에게 좋은 차라고 한다


이런 간소한 습관이 좋다

꾸준함이 부족하던 나에게는

미니멀 라이프가 주는 꾸준함이 감사하다



냄비밥이 남으면 퍼 놓고

유리볼을 뚜껑 삼아 덮어 놓는다

랩이나 그 어떤 뚜껑보다 보기 좋다

오래전 어머니들의 부엌에서 처럼


미니멀 라이프는

아날로그 감성도 충만하다

살면서 없어도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간소한 삶으로 배워간다


밥을 냉동하지 않으니

냉동용기도 필요 없고

불필요한 행동도 줄어든다


편리함을 위해 했던 소비와 행동들이

또 다른 노동들을 생산하고

편리함은 그에 따른 이면의 불편함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남겨진 냄비와 식기들로도

집순이면서 집밥 예찬가로서

부족함이 없다


아깝고 미련이 남아서

용도를 찾아 헤매던 물건들의

비움의 나날들이 지나고

간소함에 조금 가까워진


갖추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고

더 덜어 낼 수 있는 여유도

그래서 더 간결한

그런 부엌이 되어가고 있다



새해가 시작되니

지난 시간들도 떠오른다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고민과 망설임에 연속이었던 시간들


지금은 비워진

어느 날의 식탁과 부엌 풍경이다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했었다

2 식구가 18개의 컵을 가지고 있었고

잊히는 물건들이 신경 쓰여서

눈앞에 꺼내 놓기도 했었다


비워진 공간과 허전함은

꾸미고 채워야 했고

그러면서도 먼지는 허용하지 않으려

압박감에 숙제를 주었다


용도별로 갖춰진 도구들은

때때로 주인을 지치게 했으며


채울수록 또 다른 불편함도 함께

채워진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그것들을 신경 쓰고 살기에

24시간은 늘 짧고 분주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나에게 주는 노동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노전 정리에 나날들이 흐르고


남은 액자와 작은 화분들

예뻤지만 무거웠고 실용성 없던 저그와

모양뿐인 하얀 냄비받침은

그렇게 식탁을 장식만 하다가

기부로 보내졌던

웃픈 과거가 내게도 있다


나는 물건 바보였다



요즘 부엌에서

손길을 한 몸에 받으며

바쁘게 사용되는 물건이 있다


빵을 썰때 사용했던

스크래치 가득한

작은 원목 도마


마음을 빼앗기고 쉽게 들였던 물건들은

빠르게 비워졌지만

어쩐지 상처투성이 도마는

아직도 남아있다


눈으로만 담아 허영이 스미고

고민 없이 격식에만 만족했던

그래서 내 물건이라 생각하고 착각했던

물건들을 비워가면서



이제는 알 것 같다


손 닿는 대로 편하게

뜨거운 냄비를 올리면서

나는 또 깨닫는다


비움이란 결국 솔직함인 것을

돌아보니 솔직함이 내게 남았다


미래만 보면서 달리던 삶에서는

채우고 꾸며도 나는 아직도

뒤쳐져 있었다

더 달려야 했고

그런데도 멀기만 해서 그 경주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는 앞선 것도 뒤쳐진 것도 없는

소중한 현재가 있다


완성을 꿈꾸지 않는다



솔직함으로 남긴

사계절 26개의 옷으로

매일 새롭게 출근한다


지하철을 이용하고

밖에서 오래 걷지 않기 때문에

부츠도 신지 않고 겨울을 난다


비웠더니 오히려 입을 옷이 넉넉해지는

기이한 경험을 하면서

마네킹과 쇼윈도를 넘어 보려

하지 않으니 패션이란 쉬운 거였다


이제는 옷과 신발 등의 물건 관리로부터

시간을 빼앗기지 않게 되었고

하루에 쉼표가 생겼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이

이제는 다르기에

무엇을 더하고

빼야 하는지를 알아간다


아직도 자책과 반성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미니멀 라이프와 삶엔 완성이란 없기에

때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겠지만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멈추지 않고 이 길을

가보고 싶다


화양연화라는 제목의 홍콩영화가 있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유명 아이돌 그룹의 앨범 제목으로

9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들에겐

왕가위 감독의 영화로 기억될 듯하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최고로 좋은 시절

여인의 가장 아름다운 젊은 시절 등의

뜻이 있다고 한다


미니멀 라이프와 함께


그렇게 영원히

화양연화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written in 201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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