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들을 위한 일상 덜어내기
나는 이제 흰색에 설레지 않는다
사람과 비슷한 색이 좋아졌다
누르스름 있으나 마나 눈에 편한
부비고 뭉개도 티를 내지 않는
그런 색들을 찾고 있는 지금의 나는
흰색을 참 좋아했었다
흰색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로운 노동은 그다음 문제였고
흰색은 늘 옳았다
사람과 비슷한 색을 찾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못 찾고
흰색을 포기한 김에
시커먼 색을 골라 버렸다
그렇지만
마음에 든다
흰색이 주는 노동이 없을 것이고
흰색이 주는 상심이 없을 테니까
뚫어지고 헤어질 때까지
빛도 바라지 않을 테니까
나는 이제 흰색에 설레지 않는다
흰색이 좋았다
무난한 인테리어 색은 흰색을 꼽았으며
깨끗함 그 자체라 생각했었다
이제 흰 빨래에 대한
집착과 상심을 내려놓고
언제든 걷어 먼지와 땀을
가볍게 씻어내는 세탁만으로
개운함을 가져 보겠다
표백과 삶기를 줄여 보겠다
다음 타깃은 오래된 수건이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며 살기 위해
물건에게 내 진심을 묻고
물건들이 내게서 가져가는
시간들을 줄여 보려 한다
내려놓기로 한다
좀 무시하기로 한다
물건 비움 이후
나는 생활 미니멀화를 꿈꾼다
간소한 삶에 필요한 일상 노동은
계획적 규칙적으로 열심히 하되
불필요한 습관적 노동이나
심적으로 의지 했던 노동들은
골라내어 가지치기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진짜가 되기로 한다
하나씩 실천해 본다
불필요한 일상을 솎아 내어
그것들을 내려놓고 살아보겠다
새집으로 가져와서도 비우지 못했던
오래된 침대
역시나 침대 패드는 흰색이었다
하얀빛을 자랑하는 저 깨끗함 뒤엔
때때로 상심과 노동이 함께 해야 했다
고무통에 넣고 밟는
내 수고로운 노동에도 불구하고
흰색은 빛바래져 갔다
그랬다
무작정 흰색을 좋아한 대가로
힘겨운 노동을 하고 있었다
세탁기의 실력이 못마땅해
고무통에 따듯한 물을 받아
하얗게 해 준다는 세제를 넣고
발로 밟아서 물기를 빼주고
세탁기에 옮기는 노동을 했지만
흰색은 영원하지 않았다
흰색이 빛을 잃어가는 것을
잘도 알아채는 나의 매의 눈이 싫었다
세탁기를 쓰면서도 세탁을 참견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아니 그보단 내가 힘이 좋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지하철 계단 벽을 잡고
숨을 몰아 쉬는 어르신 옆을
아직은 가볍게 앞지르는 나이지만
나 또한 그 모습이 멀지 않았음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모든 것이 영원할 것처럼
늙는 줄도 모르고 나이 먹기가 싫어서
알면서 느끼면서 나이 먹기 위해
그래서 그때가 되어도
후회 없는 삶이었길 바라기 때문에
노력해 보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베갯잇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이렇게 쓰게 됐는데
쉽게 걷어 빨기 편해서
베갯잇은 얹어서 쓴다
씌우고 벗기고 세탁하고
과정 두 가지를 줄이니 간편하다
접어 둘 것이 없으니
단벌인 것은 더 좋다
베갯잇이 두 겹이 되니
베갯속도 더 깨끗하게 유지된다
멍 때리는 시간을 모으기 위해
손빨래를 부르는 색은 지양하기로 한다
세탁기 실력을 탓하기 전에
내 취향을 바꿔 보겠다
흰색을 좋아한다면
주기적으로 바꿔 주면 된다?
그렇다
그렇지만
그러기엔 난 이미
반복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소비에 고통을 알아버렸고
필요한 만큼의 소비가 주는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흰색을 멀리 하겠다고 외치는 중에
흰색 운동화는 무엇인지
한동안 때가 타 있던 딸아이의 운동화가
맘에 걸렸다 숙제였다
그래서 였을까
오른쪽 검정고무신을 닮은 신발에
그토록 설레었던 나
설거지를 하면서 보리차를 끓이듯
샤워를 하면서 운동화를 빨았다
꾀를 부려 끈도 묵힌 채로 빨고
탈수 후 신문지를
둥글게 뭉쳐 넣고 1시간 후 빼내면
물기가 빨리 마른다
흰색은 이렇게 곳곳에 숨어 있고
우리에 일상은 돌아서면 일이구나
딸아이의 알록달록 양말들은
내 차지가 된 지 오래다
올가을 겨울 몇 켤레의 양말이 비워졌다
다음엔 양말을 전부 회색으로 사야겠다
회색 미치광이가 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필요하다
간소한 삶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내 마음을 주기 싫은 것들을 찾아내고
그런 사소한 것들을 가려내서
삶을 정비해 나갈 시간들이 필요하다
천천히 가보자
인류의 시작과 함께 지속된
먹고 자고 입고 생각하며 사는 일상은
어쩌면 제일 중요한 역사였다
하루만 손 놓아도 헝클어져 버리는
그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을
더 단정하고 소중하게
그것들이 결코 잡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물건들을 줄이고
소모적인 행동들을 줄여 보겠다
감당할 만큼의 살림을 해보겠다
물건에 지치면 일상이 잡일이 된다
정작 꼭 해내야 하는
내 소중한 일상들이
잡일이 되지 않게 하고 싶다
하루가 단정해지면
내 삶도 단정해지고
하루를 잘 살아낸다면
일생도 잘 살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무엇이 잡일일까
우리의 삶에 잡일은 없다
내가 먹을 것들을 마련하고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하고
그것이 비록
내일 아침 먹을 사과를 잘라 놓는 일일지라도
나는 인간으로서 뒤처짐 없이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신고 벗어 놓으면
또 흩어질 거실화를 가지런히 놓는다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정성을 들이며 살고 싶다
지금 내게
내일 아침 먹을 음식이 있고
단정한 옷과 신을 양말과
깨끗한 수건이 있다면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소비로 즐겨 보라는 세상 속에서
빠짐없이 다 가져 보라는 세상 속에서
나를 찾고 삶에 방향을 잃지 않는
그런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싶다
그리하여
먹고 자고 입고 일하며 생각하는
우리들에 일상이
우리 모두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길 바라본다
written in 2019.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