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공간은 영원한 밤이다.
프롤로그
노란 조명이 벽을 짚고 천정 위로 퍼진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람들 대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재즈 음악이 공기층에 스며들었다. 블랙 셔츠를 입은 봄은 몸짓은 차분하고 강렬하다. 그 눈빛은 부드럽고 날카로운데, 시선은 가현에게 향해 있었다. 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두드러진 알러지처럼 샴페인 글라스에 스파클링 샴페인이 차올랐다. 샴페인 거품이 복숭아 퓨레를 촘촘히 끌어안았다. 봄은 딱딱한 백도를 꺼내 자르기 시작했다. 칼날에 묻어나오는 단 향에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가현은 입을 꾹 다문 채 공허한 눈빛으로 초점을 흐리고 있었다. 가현의 기분이 상한 건 오늘 발표하는 이 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죽은 동료와 함께한 시간들이 영원히 박제될 테니까.
봄의 눈에는 가현은 위태롭다. 가현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싶은데, 그건 어렵다. 봄은 가현을 볼 때마다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과거의 자신이 그대로 걸어다니는 것처럼. 봄은 백도 향이 배인 손끝으로 라임을 집어 들었다. 얼음 컵 안에 라임 즙을 즈려내고 럼을 뒤섞는다. 얼음 위에 콜라를 붓는 순간 봄의 세계는 자유롭다. 봄은 자신의 자유를 가현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다.
봄은 바 안으로 나와 가현에게 다가갔다. 기척을 느낀 가현은 봄을 돌아보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쿠바 리브레입니다. 자유를 뜻하죠. 봄의 생기있는 말에 가현은 망설이다 잔을 받아들었다. 가현은 조심스럽게 술을 들이켰다. 가현은 생각이 지워진 것 같다. 얕은 미소를 짓는다. 둘 사이의 정적이 끊긴 건 가현에게 온 전화였다. 전화의 주인은 서우였다. 가현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칵테일 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명소리를 낸 유리 파편이 가현의 신발 위로 흩뿌려졌다. 콜라가 가현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것 같기도 한데, 가현의 눈동자는 속눈썹의 그림자를 얻은 채로 봄을 스쳐지나갔다.
서우는 말했다.
“ 언니 납골당이 테러 당했어. 그 놈이…온 거야. 이제 때가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