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이 바다로 추락했다
먹구름 사이로 번개가 내리쳤다. 잠깐이었지만 무언가의 좌표를 찍은 것 같았다. 폴리스 라인이 쳐 있는 납골당 앞에는 카메라 불빛이 반짝였다. 가현은 셔터 소리가 천둥 소리처럼 들려왔다. 경찰들의 고함 소리와 현장을 정리하는 국과수의 모습은 가현을 무너지게 하기 충분했으니까. 가현은 읇조렸다. 내가 잃을게 더 있었던가.
깨진 유골함 밑에 사진 한 장이 남아있었다. 유리 파편이 꼭 굳은살처럼 박혀 있었다. 사진 속 서현은 웃고 있었지만 울고 있기도 했다. 가현은 작은 바람에도 쓰러질 것 같았다. 잘 다려진 정장과 윤택한 구두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늘 그래왔던 인생이었다. 그런 인생 속 서현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에. 가현은 코끝이 쨍한 날들이 절대 올 수 없다 생각했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하 그 끝에는 서현이 있을까. 그리고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천둥이 치고 눈동자 안에 서우가 들어올 때 서현의 모습이 보였다. 가현은 제 갈길을 찾은 듯 선명해졌다.
서현의 전시회에 간 건 구원이었다. 평생 새장에서 살았던 가현이 세상 밖으로 나온 건 서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남들의 겉 치장으로 보이는 세계가 가현의 집이었다. 그 집에서 탈출 시켜준 서현의 그림은 바다. 파아란 물이 넘치고 투명한. 깨끗함의 정도는 심해 속 물고기를 한 손에 잡을 것 같았다. 쨍한 파란색 배경에 바다 위를 걷는 여자. 여자의 어깨에는 알비노 베타가 볼을 부비고 있었다. 가현은 베타가 자신처럼 느껴졌다. 다 같은 색 속에 유일한 결점. 가현은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베타는 가현과는 다른 환경이었다. 차가운 배경에도 따뜻해 보였다. 가현은 새장 속에 구멍도 막아버려서 파도가 몰아쳐도 젖지 않았다. 새장 겉 표면에 포말이 묻어나올 때면 한참을 보다 잠들었다. 그래서 서현의 그림이 더 마음에 들었을지 모른다. 물고기가 되고 싶었다. 헤엄치다 결국 서현이 사라지고 바다는 얼어 버렸지만. 이제 가현은 스스로 얼음을 먹어치운다. 비로소 해야 할 일을 찾은 것이다. 어디에 있니 너는, 그리고 나는.
드디어 찾았네. 서우는 사진을 향해 총을 겨눴다. 서현 옆에 엑스 자로 한 사람 얼굴이 그어져 있었는데, 서우는 경멸하며 그 얼굴을 긁어냈다. 까마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진은 찢어졌다. 총이 아닌 서우의 억울함이 비명을 내지른 것이다. 서우는 살짝 웃었다. 많이 슬퍼보였지만. 주저앉은 가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우의 손을 잡은 가현에게서 약간의 콜라 냄새가 났다. 가자, 자유로워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