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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Night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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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 Aug 31. 2024

봄의 낮과 밤 속으로

우리는 너무 많은 짐을 안고 산다.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운전하는 서우 옆에 가현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창문에 기대있었다. 창문 밖에 가차없이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세월처럼 지나갔다. 오늘 바에서 게임 행사 열었어. 근데 중간에 망치고 나왔다. 서우는 알고 있었다는 듯 눈을 찡그렸다. 마무리 하러 가야 해. 앞에서 내려줘. 서우는 가현의 말이 한숨으로 대답했다. 길고 허망한 소리로.

 월광이 구름에 가려져 탁하게 밝았다. 은근히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했다. 오른손에 날벌레가 달라 붙었다. 손을 한 번 털고 확인하는데, 셔츠 소매에 콜라 자국이 굳어있었다. 가현은 콜라의 지난날을 코에 갖다댔다. 끈적하고 밍밍한 냄새였다. 낮에 마시지 못한 칵테일이 아쉬웠나보다. 남한테도 내가 자유롭지 못해 보이나. 가현은 좀 씁쓸했다. 자켓 안주머니에 넣어둔 사탕을 하나 꺼내 입에 넣었다. 아그작 소리를 내며 씹어내니 한 결 편해 보인다. 지하에 간판 없는 가게. 굳게 닫혀 있는 커튼. 저런 곳을 찾는 사람이 있나? 가현은 궁금했다. 자신에게 자유를 내어준 봄이. 그리고 낮에만 운영하는 칵테일 바가. 머리를 굴려봐도 수익이 날 수 있는 구간이 없다. 그런데 왜 가게 안 물건들은 가격대가 나가는 가구들일까. 한참을 망설이다 가게 문고리를 당겼다. 이런, 닫혔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문이 살짝 열렸다.

 봄이었다. 청바지에 후드티를 대충 걸친 모습이었다. 들어오세요. 밖에 좀 춥죠? 가현은 머뭇거리다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은 고요하지만 따뜻했다. 앤틱 소재의 의자와 노란 조명은 속 얘기를 꺼내기 좋아 보였으니. 봄은 바 안으로 들어가서 손을 씻고 다시 쿠바 리브레를 만들기 시작했다. 봄의 능숙한 손놀림에 가현은 홀린 사람처럼 쳐다봤다. 럼과 퓨레 위 얼음. 얼음 위에 콜라가 포개지자 시원하고 매끄러웠다. 이게 자유를 뜻한다고 했죠? 쿠바 리브레. 봄에게 자유를 묻는 가현은 꽤나 진지했다. 봄은 알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걸. 가현은 순식간에 칵테일을 먹어치웠다. 한결 가벼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나중에 또 오세요. 이른 아침부터 낮까지 하니까 칵테일 드시고 싶으시면 언제든. 오후부터는 카페만 운영하거든요. 가현은 궁금했다. 보통 바 운영은 이른 저녁부터 새벽인데. 가현은 물었다. 왜 낮에 바 운영을 하세요? 그 대답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봄은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가현 앞에 내려놓았다.    이 공간에서는 낮은 밤이에요. 밤은 낮이고. 고독하다가도 문을 열고 나가면 해가 있잖아요. 그런 위로가 필요했어요. 남들도 이런게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요. 아 저희 단골분들 많아서 장사 꽤 되거든요. 가현은 피식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온몸이 나른해졌다. 가현은 자켓 안주머니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찻잔 옆에 내려놨다.

 명함에는 게임회사 Z 시나리오 작가 김가현 이라고 적혀 있었다. 제 소개가 늦었죠. 낮에는 죄송했습니다. 봄은 명함을 집어들고 지갑 안에 넣었다. 괜찮아지면 오늘 일 털어놔도 좋아요. 언제든. 가현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눈동자에 강물이 먹먹했으나 흐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빈 찻잔을 조용히 매만지다 이내 일어섰다. 또 올게요. 봄과 가현의 사이에 무언의 위로가 일어난 밤, 아니 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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