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D.Night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코 Sep 07. 2024

해방을 찾는 길 위에서

어둠을 밀어낸 새벽 아침. 가현도 지옥을 밀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옷은 물론 침대 시트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떤 표정도 없었지만 괴로운 건 알 수 있었다. 가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찝찝한 느낌과 이불을 걷어냈다. 커튼을 치자 먼지가 반딧불처럼 햇빛에 반짝였다.

 부엌은 단촐했다. 음식이라고는 과자와 컵라면 뿐이었고 식탁 위에 빈 물통과 먹은 빵 봉지가 널부러져 있었다. 가현은 하나 둘 집어 쓰레기통에 넣고 밥그릇을 꺼내 아몬드가 들어간 씨리얼을 부었다. 밥그릇을 벗어난 씨리얼은 입에 처리하기 바빴다. 냉장고를 열자 안에는 우유와 물 뿐이었다. 너도 겉만 멀쩡한게 나랑 같구나. 가현은 우유를 꺼내 씨리얼 위에 부었다.

 씨리얼을 먹기 시작하자 집안의 정적이 깨졌다. 그때서야 시계 초점 소리, 창문 밖에 버스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가현은 먹으면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의자가 흔들릴 법 했지만 쇄골 뼈가 자세히 두드러지는 가현의 몸을 감당하긴 충분해 보였다. 아,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 가현은 답답하지만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좀 보죠.

 햇빛이 찬 공기를 관통하는 날이었다. 가현은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밖을 바라봤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종종 보였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고 있었다. 부러웠다.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던 지난 날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서현이 너를 다시 내가 볼 수 있을까. 가현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회사에 도착하자마 마자 가현은 대표실로 향했다. 거침없는 발걸음이 잃을 것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노크를 하지도 않고 문을 열어 제꼈다. 숨이 가빠왔다. 그런 가현을 예상이라도 한 듯 태현은 책상 앞에 서서 기대 있었다.

 게임 전부 다 지우죠. 태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납골당 테러까지 당하고 시끄러운 마당에 안고 갈 건 아니죠? 적어도 당신이 사람이라면 고인에 대한 예는 지킵시다. 부탁하는 거 아니고 통보. 이 게임에 대한 저작권의 대부분은 나한테 있어요. 그러니까, 나 열받게 하지 마시라고. 가현은 태현에게 다가가더니 책상 위에 사진 한 장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태현과 가현의 거리에는 돌이킬수 없는 무언가가 잔뜩 고여 있었기에. 때론 슬퍼 보이기도 했다. 태현의 눈동자에는 절망과 분노가 뒤섞였다.

 

이전 03화 봄의 낮과 밤 속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