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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yper Mar 18. 2024

나는 윤석열 대통령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유럽에서의 개인 경험담-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 본 경험이 있는가? 자기소개서라는 글자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자소서’가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할 것이다. 만약 자소서를 써 본 경험이 없는 부모라면 자기소개서 페이지를 두고 멍하니 앉아 있는 자녀를 보면서 너무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자기가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


 그러나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타인에게 자신을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설득력 있게 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 바로 ‘자기 객관화’다. 자기 객관화는 한 발짝 물러서서 자신을 보는 것과 함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이 비교는 자신을 낮추거나 높이는 것이 아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정치에서도 이런 비교,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나는 독일 친구에게 우리 대통령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만약 상대방이 한국에 거주하며 매일 한국의 다수 언론에 노출되어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만약 그 상대가 독일이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 친구라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글은 몇 가지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 위 질문에 대해 답해보려고 한다. 



#. 1 코미디언이 대통령을?


 2019년 4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새롭게 당선된 젤렌스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먼저 당시 우크라이나 대선에는 무려 39명의 후보자가 등장했다. 그 가운데 젤렌스키는 1위를 기록하며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결선투표에서 그는 73%의 득표율을 보이며 페트로 포로셴코 전임 대통령을 압도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만 41세였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젤렌스키의 등장은 유럽에서 하나의 이슈였지만, 이보다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그가 코미디언이라는 사실이다. 


<사진-1>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019년 4월 키예프 의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권력의 상징인 메이스(mace·철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출처: AP)


 젤렌스키는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기 전 정치 경험이 전무했다. 다만 대통령 역할을 경험했던 코미디언이다. 2015년 우르라이나에서 ‘국민의 일꾼’이라는 TV 드라마가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고등학교 교사가 부패한 정치권력에 대항하다 대통령에 선출된다는 내용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이 드라마는 부패하고 답답한 우크라이나의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국민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자 드라마에서 대통령이 된 젤렌스키가 현실에서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정당을 창당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2018년, 젤렌스키가 당시 드라마를 제작했던 제작자들과 함께 창당한 정당이 바로 ‘국민의 일꾼’이다. 


 이때 나는 런던에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그때 학교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 중 한 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유학 온 빅터였다. 나와 빅터는 같은 비유럽권 학생이라는 동질감(?)과 함께 자주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했다. 공부하다가 힘들면 학교 카페에서 1.5파운드짜리 커피를 사서 학교 옆 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하루는 내가 빅터에게 어떻게 코미디언인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 되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쉬며 젤렌스키보다는 당시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의 현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부패한 권력들의 민낯,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분열된 우크라이나의 정치 현실, 그리고 기반이 약한 우크라이나의 경제 상황 등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겉으로 그래도 어떻게 코미디언이 갑자기 대통령이 되냐며 그를 놀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2018년 한국에서 시민들이 나서서 잘못된 권력을 끌어내린 촛불혁명을 생각하며 우쭐대었던 기억이 있다. 이 우쭐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창피함으로 변했다. 



#. 2 히틀러의 딸이 대통령을?


<사진 2> 지난 2월 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하루는 도서관이 아닌 학생회관 커피가게에서 논문을 보고 있었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떤 학생이 내 자리에 와서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보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내게 한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말했더니 그 학생은 나에게 대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영국에 정치학을 공부하러 왔던 독일인 여학생이었다. 그 친구가 내게 이야기를 건넨 이유는 다름 아닌 ‘BTS’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바로 BTS의 ‘아미’(ARMY)였다. 


 창피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BTS를 모르고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BTS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한국인인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독일인 친구를 통해 BTS를 알게 되었다. 한참 동안 BTS 이야기를 나누고 둘 모두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반도 국제정치 이야기로 대화의 주제가 옮겨 갔다. 그리고 그 친구는 2017-18년에 한국에서 있었던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받고 순간적으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독일 친구에게 과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당시 촛불시위를 야기한 주체는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설명을 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대화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그 이유는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 독일 친구의 관점에서 보면 2012년도에 한국에서 선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는 것은 2012년도에 독일에서 히틀러의 딸이 독일의 수상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자기 객관화’가 그 독일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최근 독일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 극우 정당이 등장하는 것을 반론으로 제기할 수 있다. 특히, 독일에서도 최근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라는 극우정당이 약 2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독일 사회는 물론 전 유럽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이 극우정당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수상이 배출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의 딸이 수상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독일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절감했다. BTS, 오징어게임 등과 같은 매우 우수한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전 세계를 강타하며 이제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매력적인 국가와 사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후진적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나는 독일 친구에게 윤석열 대통령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 3 젤렌스키보다 더한 윤석열 대통령


 만약 BTS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독일 친구가 내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간단하게 설명하면, 약 25년 동안 검찰 공무원이었고,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하다가 바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입후보해서 대통령이 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독일 친구의 관점에서 보면, 약 25년 동안 독일 법무부 또는 검찰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사민당 정부에서 각료로 참여했고, 다음 해 선거에서 바로 기민당에 입당해 기민당 소속으로 수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사진 3> 지난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충북 옥천군 고(故) 육영수 여사 생가를 방문해 묵념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 2년 동안의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여러 스캔들을 논하기 전에 윤석열 대통령의 등장과 당선은 한국 정당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어려운 정치학 교과서가 아닌 일반적인 상식에서 대의 민주주의는 정당이 중심이 되고, 정당은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다. 즉, 정당은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전혀 정당경험이 없는 사람이, 그것도 진보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이듬해 바로 보수정부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수 있다는 말인가. 


 네이버에 등록된 윤석열 대통령의 프로필에 따르면, 그는 2019년 7월 문재인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어떤 정당에도 가입할 수 없는 검찰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2021년 3월 문재인정부에서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2021년 7월 불과 4개월 만에 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가 된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 정당정치가 잘 작동하는 정당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행태다. 이것은 바로 ‘인기영합주의’다. 


 나는 2019년 우크라이나에서 코미디언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친구를 놀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젤렌스키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은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사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젤렌스키는 3년 동안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할을 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도 한 경험이 있고, 스스로 정당을 창당해 대통령 선거에 임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진보정부의 각료였는데 마치자마자 자신의 정체성에 기반해 정당을 창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불과 4개월 만에 보수정당에 입당해 대통령 예비후보가 된 것이다. 몇 년 전 젤렌스키가 당선된 우크라이나를 이야기하며 빅터를 놀렸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두 가지 경험을 기반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등장 자체를 객관적으로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 결론은 창피함, 그리고 그 창피함의 근원은 정체성이 결여된, 인기영합주의만 남은 한국 정당정치라고 결론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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