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대해
스물 넷
분명 어리지만 어린 게 면죄부가 되진 않는 나이이다. 난 항상 내가 고등학생 때의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정서적으로 성장했다고 느낄만한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미성년일 때도 줄곧 어른이 되기 싫어했고 학생 신분으로 머물길 원했는데 성년이 된 후엔 살아가면서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무한히 많거니와 그에 대한 무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전가된 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선택에 대한 책임에 부담을 느끼는 내 성격은 인간관계에 있어 여실히 드러났고 최근에 또 한 번 느낄만한 일이 있었다.
나는 나를 좀먹는 관계조차도 끊는 걸 무서워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품으려 한다. 내 주변에 나랑 정녕 잘 맞고 내가 유지하고 싶어 하는 관계가 얼마나 있냐고 물어보면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나의 기질적인 예민함도 한몫한다. 휴학하고 친구들 덜 만나면서 지금은 거의 정리되었지만 아마 그러지 않았다면 난 챙겨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도 않은 채 모든 관계에 열과 성을 쏟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은 그게 다 괜찮아졌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 ´・・)ノ(._.`)
원인이 뭘까 생각해 보면 아직 나는 내 선택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부족하다. 그래서 중요한 일은 항상 남들과 의논하고 여러 의견을 들어보려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길에 더 좋은 해답이 있었을 수 있다는 그 가정이 내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만 더 이해심이 많았으면 내가 좀 더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이 관계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최근에 바뀐 점은 내가 진짜 그 정도로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과는 단 1분도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나의 선택으로 관계의 종말을 야기하는 게 무서우니 나를 바꾸면서까지 사람들에게 나를 맞췄던 게 배려심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내 맘대로만 하면서 살 순 없으니 배려하는 태도를 갖는 건 살면서 분명히 필요한 미덕이지만 나를 잃는 것은 배려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자기 파괴일 뿐이란 걸 의식적으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살면서는 더 많은 이별을 겪을 것이다. 인간관계의 폭은 더 좁아질 것이고 나는 이 관계를 유지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그때마다 매번 힘들 순 없으니 이젠 진짜 차근차근 독립적인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ᕦ(ò_óˇ)ᕤ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남들도 돌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