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사랑하는 내게 가장 달콤한 건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날 좋아한다니 이보다 더 꿈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웃음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가끔은 무리수를 던지고 후회하기도 한다. 엎질러진 물은 되담을 수 없는데 나는 또 그 물을 손으로 쓸어 담는다. 마치 되돌릴 수 있다는 듯이, 남들에게 하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기에. 시시각각 친구의 눈을, 떨리는 입꼬리를, 그 안색을 살핀다. 행동하나 표정 하나 살피며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나의 머릿속에 정작 나는 없다. 모두를 걱정하는 그 따뜻한 마음에 나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들의 웃음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아등바등하는 노력으로 점철된 내 인생에 나의 행복을 위한 노력은 한 톨도 없었다. 무얼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내 감정은 어떤지 판단 내리는 것조차 남한테 맡기는 인생이 되었다. 검열받기 전의 내 감정은 전부 다 무시해 버리는 어른이 됐다. 해는 거듭되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른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만 살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 날이 많아졌다. 그 말을 듣더니 돈이 정말 많아서 걱정할 게 없었으면 무얼 했을 거냐 하고 묻더이다. 나는 또 말했다. 남을 돕겠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걱정을 안 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상상하면서도 그 자리에 나를 위한 자리는 또 없다. 남을 위하는 게 나를 위하는 거라 말한다.
블로그에 일기를 꾸준히 쓴 지 일 년이 넘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용이 아니라 나를 기록하기 위한 용도라고 말하면서 매일같이 블로그에 들어와 한 자 한 자 남긴다. 그러면서도 읽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너무 우울해 보이면, 그들이 기대하는 밝은 나의 모습이 아니면 나에게 실망할까 봐. 남들의 실망을 사는 건 죽기보다 싫은 나니까. 사실은 너무 힘들다고 적다가도 또 괜찮다는 말을 덧붙인다. 다 괜찮아져서 지금은 극복했다고 말하면 그들에게 짐이 덜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미 종료된 사건인 것처럼 말하며 지금에서야 웃으며 할 수 있는 얘기인 척한다. 도와달라는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또 삼킨다. 나는 밝고, 잘 웃고, 행복하고, 걱정 없이 사는 그런 애니까. 소리 내서 우는 법도 잊었다. 엄마 아빠는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싸워나가는데 거기에 나라는 걱정거리를 안겨줄 수 없으니 매일 이불속에서 숨죽여 운다. 내 눈물에 내 눈이 먼다. 말로 다하지 못해 눈물에 응축된 나의 설움이 내 이부자리에 자국을 남긴다. 입안에 짭짤함이 번진다. 삶의 의미를 잃은 나는 매일 활자에 기댄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써 내려간 문장에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이번에 읽는 책에선 진정으로 내 삶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길 기대하는 마음에 또 한 장 넘긴다. 위로만 하는 양산형 에세이는 종이 낭비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하던 나는 이제는 조금 이해한다.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고자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누군가는 내가 잘하고 있다고 한다. 아닌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지만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한다. 그냥 그 말을 믿기로 한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멋진 딸이 되기 위해 하던 괜찮은 척은 이제 그만 내려놓기로 한다. 나를 먼저 살피기로 한다. 내 감정을 허락받지 않기로 한다. 극복하지 못하면 못한 대로 인정하고 일단 살아보기로 한다. 나를 그만 검열하기로 한다. 나의 결핍을 반추하기를 관두기로 한다. 행복을 좇지 않기로 한다. 이상적인 삶은 좇을수록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삶을 불사하는 방식으로밖에 다가갈 수 없기에. 모진 말을 스스로에게 휘두르지 않기로 한다. 내 안에 긁힌 생채기가 덧나지 않도록 이제는 그만 채근하기로 한다.
모든 길은 만천으로 통하니까, 잠깐 길을 잃었지만 언젠간 정도를 찾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