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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F사람 Jun 14. 2024

다음생에는 차씨로 부탁드려요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

여자친구가 배우 차은우가 웃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아니 두 여자 모두 나만 보고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질투가 나네. 차은우가 평소 잘생겼다는 건 알지만 내 여자들까지 뺏어가니 용납이 안 됐다. 도대체 얼마나 잘 생겼길래. 유튜브 들어가서 ‘차’를 치자마자 ‘차은우 실물 반응’이 나왔다. 들어가서 보고 나니 바로 인정했다. 솔직히 남자인 내가 봐도 신기하게 기분 좋아지더라. 내 평생 남자를 보고 웃을 줄이야. 한국에서만 잘 통하는 외모인 줄 알았는데 외국인들도 그의 얼굴을 보면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이미 전 세계를 가진 남자다. 참 부럽다. 다음생에 태어난다면 차은우로 한 번쯤 태어나보고 싶다. 제발.


우리는 이번생에서 각자 태어난 대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야 한다. 살면서 기분 좋고 행복할 때도 있다. 그러나 다툼, 논쟁, 고민, 걱정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의 미소는 훅 하고 사라진다. 미소가 없는 채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 맘 같이 잘 되지 않는다.


나는 말을 이쁘게 해서 호감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심리학 책, 인간관계 책, 공감에 대한 책을 10 권 정도 읽고 좋았던 책은 달마다 재독 했다. 난 본능적으로 타고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이정도는 노력해야했다. 그 잘생긴 분은 이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만약 읽으신다면 잘생긴 사람이 운동하는 것처럼 반칙이다. 이번에 운동도 열심히 하시던데 삑! 반칙입니다. 제가 졌습니다. 그만하셔요.


나는 살고 있던 집의 전세계약이 끝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해서 타이밍이 딱 좋았다. 계약 만료는 4달의 기간이 남아있었다. 부동산에 알아보니 계약 만기 전에 나가려면 내가 중개수수료를 내야 한다고 했다. 집주인과 나 반반 내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나 혼자 다 내야 한다고 했다. 계약 만기를 기다리기엔 이미 이사 갈 곳의 계약을 마친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중개수수료를 정말 주기 싫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집주인에게 장문의 카톡을 했다. 그리고 카톡을 쓰기 전에 거울을 보며 나 자신에게 먼저 말했다.


‘나는 누가 봐도 말이 이쁜 남자다. 내 카톡은 차은우 얼굴이다. 나는 말을 이쁘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다. 집주인에게 배운 걸 시도해 보자. 호감을 얻어서 중개비를 주지말자'


나는 아래의 내용으로 집주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예 xx 301호 임차인 xxx입니다. 요즘 날씨가 많이 더운데 건강 조심히 잘 지내고 계시죠? 다름이 아니라 전세계약기간이 끝나가서 연락드렸습니다. 집 위치도 좋고 살기에도 너무 좋아서 계속 연장하고 싶었지만, 제가 곧 결혼을 하게 되어 신혼집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전세계약 종료 전 이사를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지금 근무 중인 시간이실 것 같아서 이렇게 카톡으로 연락 남기는 점 이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통화 가능하실 때 연락 주세요.


내 카톡을 받은 집주인은 얼마 후 전화가 왔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온 듯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용?”


“답이 늦었습니다. 제가 오늘 부산 다녀오고 했네요. 먼저 결혼하신다니 축하드립니다. 조금 더 사셔도 좋은데 아무래도 두 분 이서 지내시기에는 좁으시겠죠? 제가 바빠서 관리가 부족했지만 만족하면서 사셨다니 오히려 고맙네요.”


“아 아니에요. 항상 불편한 점 있으면 먼저 챙겨주셨잖아요. 이 집에서 좋은 기운을 많이 얻었어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그럼 먼저 집을 내놔야 할 것 같은데 수고스럽지만 지난번 중개했던 부동산에 말씀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네 그럼요. 거기 포함해서 집 주변 몇 군데에 연락해두겠습니다. 최근 신혼집 알아본다고 주변 부동산에 자주 들렸는데 다른 사장님들도 선생님을 좋아하셨어요. 혹시 전세 금액은 이전하고 같은 금액으로 하실까요?"


"네 같은 금액으로 하지요."


"네 알겠습니다. 주변 전세가격이 비싸던데 같은 금액이라면 아마 위치도 좋고 깔끔해서 금방 나갈 것 같아요."


“네 그럼 다행이죠. 경사로 나가시는 거니 중개비는 제가 부담한다고 부동산에 말해주세요. 수고스럽지만 부탁드립니다. “


“네 알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결론은 집주인이 중개수수료를 내기로 했고, 그동안 변변치 못 한 집에서 살아줘서 다시 한번 고맙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말한 내용 중 중개수수료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이 정말 마음에 든다는 말부터 꺼냈다. 현재 살고 있는 집과 평소 집주인의 행동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또 아낌없이 칭찬했다. 평소 결혼 때문에 집을 알아보며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들었다고 집주인의 평판에 대해서도 칭찬했다. 그리고 몇 년더 있고 싶지만 결혼 때문에 급하게 집을 뺄 수밖에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집주인은 이때까지 어떤 임차인에게도 그런 말은 듣지 못했던 것 같았다. 전화 목소리에서도 그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새 임차인을 구해서 계약했다는 연락이 왔다. 나도 기분 좋게 이사를 나갔다. 이사 후 서로 좋은 인연으로 남기고 싶어 집주인에게 카톡을 했다.


"안녕하세요. 신경 써주신 덕분에 이사 잘 마쳤습니다. 그동안 좋은 곳에서 기운을 잘 받은 덕분에 좋은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 같아요. 어느덧 추워졌는데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일 많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잘 지내다 가신다니 좋습니다. 행복한 하루 하루 되시고 언제 울산에 내려오시면 연락 주세요. 밥 한번 사지요."


"네 들리게 된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집주인은 평소에 얼굴을 보거나 연락을 자주 하기는 힘든 사이다. 연락을 하더라도 집에 대해서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나.


실제로 최근에 전세사기도 많고 임대차 계약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얼굴 붉힐일이 꽤나 많이 있다고한다. 물론 나는 좋은 임대인을 만나서 운이 좋았다.

모든 임대차 상황에서 이렇게 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선 그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방법으로 문을 열면 아무리 딱딱하고 어려운 집주인이라도 부드러워질 수 있다. 결국 이 접근 방식으로 50만 원 정도 하는 중개수수료를 아끼고 양측 모두 기분 좋게 임대차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유명한 우화인 해와 바람의 이야기가 있다. 해와 바람은 누가 더 강한지를 놓고 논쟁을 했다. 바람이 말했다. “내가 더 세다는 걸 보여줄게. 저기 코트를 입고 있는 노인이 보이지? 너보다 더 빨리 그의 코트를 벗기는 걸로 내기를 하지” 그래서 해는 구름 뒤로 숨었다. 바람은 세차게 입김을 불어 댔다. 마치 태풍 같았다. 하지만 바람이 세게 입김을 불어 대면 댈수록 노인은 코트를 꽁꽁 동여맸다. 결국 바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내 잔잔해졌다. 그다음에는 해가 구름 뒤에서 나왔다. 해는 친근하게 노인에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 차은우처럼 밝은 미소였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코트를 벗었다. 해의 부드러움과 친절은 분노와 힘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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