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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섭 Jul 10. 2024

도를 아십니까?

타인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이기적 유전자’


안녕하세요. 혹시 칠공주 떡볶이가 어딨는지 아세요?


오늘은 쉬는 날이다. 카페를 가기 위해 집에서 나왔다. 날씨가 엄청 뜨거웠다. 6월인데 벌써 30도를 넘어섰다. 나는 10분 전에 뜨거운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고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온몸은 더 뜨거워졌다.

'에이 머리 손질 이쁘게 하고 나왔는데 땀이 주르륵 흐르네'

얼른 카페에 가서 시원한 카페라떼 한 잔 먹고 싶었다.

나는 흐르는 땀을 검지 손가락으로 닦으면서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열심히 걷다 보니 땀은 어느덧 목 아래까지 흘렀다.

그때 처음 보는 여자 두 명이 갑자기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칠공주 떡볶이가 어딨는지 아세요? “

'아 뭐야 더운데 그냥 모른다고 하고 지나쳐야겠다. 그런데 어디라고 했지? 칠공주? 어 거기 맛있는 곳인데? 얼른 가르쳐주고 가야겠네'

나는 귓속으로 들어오는 근처의 맛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무리 더워도 이건 알려줘야 했다.

”아 칠공주 떡볶이요? 여기서 거리가 조금 있기는 한데 여기로 쭉 걸어서 가시다가 왼쪽으로 꺾어서 가시면 돼요. 음 어디서 꺾어야 하냐면 (네이버 지도 앱을 켜서 보여줬다) 여기 지도처럼 쭉 가시다가 여기 시장 안에 사거리 같이 넓은 곳 나오거든요. 거기서 조금 더 가서 왼쪽으로 쭉 걸어가시면 돼요 “

“아네 여기로 쭉 가다가 왼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죠? 가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렵네요”

“네 생각보다 멀어요. 그래도 7분이면 걸어간다고 나오네요. 잘 모르시겠으면 시장 안으로 쭉 걸어간 후에 아까 말했던 시장 안 사거리에서 다시 한번 다른 분에게 물어보세요 “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카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이 정도면 길 잘 알려줬겠지? 착한 일 한 것 같아서 집에서 나오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아 저기 근데 잠시만요”

'뭐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건가?'

“다른 게 아니라 제가 방금 이야기하면서 그쪽 얼굴을 자세히 보다 보니 요즘 안 좋은 일이 많으신가 봐요. 길 알려주신 것도 감사하고 해서 혹시 근심, 걱정 있으시면 덜어낼 수 있는 방법 좀 알려드릴까요? “

말이 끝나자마자 순간 두 여자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혹시 티비에서만 보던 도를 아십니까? 내가 맞다고 대답하면 당장 나를 끌고 다른 곳으로 끌고 갈 것 같은 그 눈빛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처음에 하려던 것처럼 행동했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안녕히 가세요 “


당연히 내 얼굴은 지금 안 좋았다. 길을 열심히 알려주는 동안 머리와 목에서 나던 땀이 턱 밑으로 뚝 떨어지고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길 알려줬는데 도를 아십니까였다. 이제는 방법도 새로워졌다. 맛집 이름 통해서 사람을 잡아두다니. 분하다.


카페로 걸어가면서도 혹시나 두 여자가 따리 올까 봐 뒤를 한 번씩 돌아봤다. 좋은 마음으로 도움을 줄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도움을 악용하다니 정말 너무했다. 오히려 그 두 사람 때문에 하나도 없던 근심, 걱정이 생겨났다.


“여기 학생. 학생 나 좀 도와줘요”


다음날 나는 칠공주 떡볶이가 있는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녁 6시 벌써 주위가 어두워졌다.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더니 비가 추적추적 왔다. 우산도 없이 나왔기에 집까지 얼른 뛰어서 들어갔다.


아파트 후문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 한 분이 무인슈퍼 난간에 앉아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 학생. 학생 나 좀 도와줘요”

'뭐지? 어제랑 똑같은 도를 아십니까인가? 비 오는데 얼른 들어가야지'

나는 어제 당한 것도 있어서 할아버지를 경계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분명 학생이라고 하셨다. 학생 오랜만에 듣는 이 말이 너무 좋았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내 쪽으로 손을 흔드셨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어디 몸이 안 좋으세요? 비 곧 쏟아질 것 같은데 왜 여기에 앉아계세요? “

“아 아픈 건 아니고. 내가 집에 가야 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택시 좀 잡아줘요 “

“여기서 집 가는 방법을 모르시겠어요? 혹시 어디 아프신 거는 아니세요? 119 불러드릴까요? “

“아니야. 아픈 건 아니고 내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여기 시장이 좋다고 해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 혹시 택시만 좀 잡아줄 수 있을까 학생? “

할아버지의 안색을 보았지만 다행히 아픈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 치매로 길을 잃으신 걸까? 아니면 정말 처음 오는 길이라 모르시는 걸까. 치매가 있으셔서 길을 못 찾는 거면 직접 댁에 모셔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그럼 할아버지 집 주소는 아세요?”

“주소를 잘 모르겠어. 여기서 그렇게 멀지는 않은데”

“아 그럼 혹시 신분증 가지고 계세요? “

다행히 할아버지는 신분증을 갖고 계셨다. 신분증 뒷부분 주소란에 새로운 주소가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셨나 보다

“할아버지 제가 여기 적혀있는 주소로 택시 불러드릴게요”

카카오택시에 주소를 입력하고 택시를 불렀다. 예상 거리를 보니 시장에서 차 타고 7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걸어서는 20분 정도 되니 생각보다 멀리 걸어오셨다. 이 정도 거리라면 길을 잃을만하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택시 잡혔어요. 5분 정도 뒤에 온다고 하네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응 고마워 학생. 이제 들어가 봐. 비도 오는데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앉아있던 나를 밖으로 미셨다. 비 오는데 집으로 먼저 들어가라는 거다. 비가 좀 더 세차게 왔다. 할아버지도 나도 우산은 없었다.

“할아버지 비가 더 와요. 저기 천막 있는데 가서 택시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요”

“아니야 나는 여기에 있을게. 얼른 먼저 들어가요. 학생 고마워”

할아버지는 택시 번호도 모르면서 비 온다고 자꾸 나를 보내려고 하셨다.

“할아버지 택시 번호가 뭔지도 모르시잖아요. 곧 택시 올 것 같으니까 옆에서 같이 기다릴게요. 저는 비 맞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운동하고 오는 길이라 집 가서 바로 씻으면 돼요”

그렇게 우리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무인가게 앞 난간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처음에 그냥 지나치려다가 학생이라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져서 뒤돌아본 게 생각났다. 할아버지에게 내심 미안해졌다. 죄송한 마음을 담아 택시가 올 때까지 말동무를 해드렸다.

“할아버지 여기 시장에서 많이 사셨어요? 뭐 사셨어요? 듣던 대로 와보니까 좋으셨어요?”

“응 그래”

“여기 싸고 좋은 물건도 많아요. 저는 여기서 조개랑 새우 만 원어치 샀는데 이거 보세요. 이렇게 양이 많아요”

“응”

할아버지는 힘이 드셔서 그런지 이제 집에 간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셔서 그런지 더 이상의 말은 안 하셨다. 그래서 나도 조용히 기다렸다.


몇 분 후 택시가 도착했고 뒷문을 열어드렸다.

“할아버지 타세요. 주소는 제가 기사님에게 미리 말씀드려 뒀어요. 조심히 가세요”

“응 그래 학생 너무 고마워. 얼른 들어가”


할아버지는 나에게 마지막까지 학생이라고 불러주셨다.

이제는 비가 쏟아붓기 시작했다. 나는 후문을 통해 얼른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에 오자마자 젖은 옷들을 벗고 짐을 바닥에 뒀다. 핸드폰을 켜서 카카오택시 어플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내가 찍어둔 주소로 잘 이동하고 있었다.

시장에서 사 온 짐들을 정리하다 보니 ‘지잉’ 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는 알람이었다. 차가 막히는 시간이었는데 기사님이 생각보다 빨리 운전해 주셨다. 기사님 별점 5점을 드리고, 비 오는데 할아버지 조심히 잘 바래다주셔서 감사하다고 글도 남겼다. 나도 이제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서 생각했다.

'비를 맞았지만 엄청 뿌듯하고 기분 좋은 하루였어'


‘이거 내 파뿌리야!'


부탁과 도움이라는 좋은 행동을 다르게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소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파뿌리 이야기다.

살면서 선행을 베푼 적 없는 인색한 노파가 지옥에 갔다. 지옥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수호천사가 그 노인을 가엽게 보고 하나님께 간청을 했다.

'생전에 저 노파가 거지에게 파 한 뿌리를 준 적이 있으니 선처해 주세요 ‘

하나님은 그 노파가 파 한 뿌리를 붙잡고 천국으로 오는 것을 허락했다.

'알겠다. 평생을 인색했지만 그래도 파 한 뿌리의 작은 선행이라도 했으니 허락하노라'

노파가 신이 나서 파뿌리를 붙잡고 지옥불을 빠져나오려는데, 그걸 본 다른 놈들도 살려달라고 그 파뿌리에 우르르 아귀처럼 달라붙었다.

노파는 달라붙는 손길을 밀쳐내며 소리쳤다.

‘이거 내 파뿌리야!'

그 순간, 후드득 파뿌리는 끊어지고 모두 지옥불에 떨어졌다.


부탁하고 도움 주는 건 파뿌리 같은 아무리 작은 행동이라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서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다르게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를 아십니까?'처럼 도움을 나쁜 방식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모두가 뿌듯하고 좋은 경험을 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남의 부탁을 받으면 쉽게 거절 못 해. 돕는 게 생존에 유리하거든. 살아남으려는 ‘이기적 유전가’가 이타성으로 프로그래밍이 돼 있어. 타인의 부탁을 거절 못 하는 게 딱 그 얘기야. 사람들이 다 자기만 아는 것 같잖아? 실제로는 안 그래. 길 가는 데 어린애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잖아? 그러면 백이면 백, 다 뛰어들어서 그 어린애부터 꺼내. 버스가 진흙탕에 빠져 헛바퀴 돌리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차에서 내려서 함께 민다고. 그러니 우리는 사소하더라도 남을 돕게 되어있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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