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을섭씨

엄마를 부탁해

by 후리지아

액자 안에 그림이 망가졌다. 빨간색 꽃그림이었는데, 누군가 훌륭하게 본래 대로 잘 고쳐놨다.

다행이다.


더운 날에 잠자다가 깼는데, 꿈이었다.

희한한 꿈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가 쓰러져서 병원에 있다고 "수술"해야 한다고, 생각할 시간도 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마늘 캐서 줄로 나눠 묶으시던 중에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마침, 아버지가 가까이 계셨고, 119 타고 가시던 중간에 작은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골든 타임이 있었기에 후각만 잃으시고, 고생 끝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시게 되었다.

아직도 천둥 번개 치고 비 오던 날 밤에,

둘째 언니와 병원 보호자실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잠깐 잠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식 걱정으로 신경 쓰시다가 병이 났다.

새벽잠이 없을 때면 손가락을 꼽으며 자식을 걱정하신단다.


엄마를 을섭씨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나의 엄마, 을섭씨!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아가니 누가 이름을 불러주겠는가?

딸이라도 불러줌으로써 엄마 이름 석자는 잊히지 않기를...


을섭씨는 음식을 잘하신다. 동네 음식도 손수 다 하셨다.

보름날 오곡밥을 시루에 쪄서 놓으면 몇 날 며칠을 먹어도 맛있었다.


손두부도 몇 해 묵은 간수를 넣어서 만들면 얼마나 고소하고 맛나던지,

맷돌 돌리는 것이 힘들다고 투정 부리던 때가 엊그제 같다.


지금은 연세가 드시면서 하나하나 내려놓으신다.

어찌 세월이 야속하지 않을까?


새벽에 솥에 쌀을 넣고 불을 때서 줄줄이 도시락을 챙겨주셨다.

수많은 농사일만 해도 버거운 삶이었는데, 어찌 다 해내셨을까?

먹을거리나 충분했을까?


을섭씨는 알뜰하셔서 작은 빚 하나 없으셨다. 없으면 "안 먹지"가 철학이셨다.

자식들이 엄마를 닮아서 누구 하나 새치를 부리지 않는다. 세월 흐른 지금도.


우리 을섭씨는 자식 여덟을 다 출가시켰고, 많은 손자, 손녀의 산바라지를 다해 주셨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열여덟, 단발머리에 꽃다운 어린 소녀가 시집을 와서 살아온 삶이...


요즘 "팥빙수" 사랑에 푹 빠지신 을섭씨! 카페에 둘러앉아 자식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하신다.

유일한 쉼 있는 시간이리라.


아직도 쌀농사, 고추농사, 마늘농사를 지으신다. 힘 있는 날까지는 지으실 것 같다.

휴가철에 자식들과 배추와 무를 심으셨다.

손수 키운 갖가지 양념으로 김치를 담가 자식들에게 퍼 가게 하신다.


올해도 을섭씨는 짜장면을 먹으며, 대량에 김치를 담그는 행사를 열 것이다.

투덜거리다가도 을섭씨가 담가주는 김치 맛은 어디서도 맛볼 수가 없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 을섭씨!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날씨 좋은 날 여행 떠나요.

역시나, 자신이 아닌 자식을 위해서 불공드리는 그런 날일 테지만 말이다.


집 주변에 꽃들이 사시사철 가득하다.

달리아, 백일홍, 코스모스, 분꽃, 백합, 봉선화, 금잔화 등

딸들이 집에 오면 보라고 꽃들을 심으신다.


엄마와 꽃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사랑을 전하는 엄마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을섭씨가 딸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사랑법은, 바로 꽃이 아닐까?


사랑하는 나의 엄마 을섭씨~

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주시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