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너희를 똑같이 사랑해

나는 백조였다.

by 후리지아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을섭씨의 딸, 딸, 딸 중에 넷째 딸로 태어난 일화가 있다.

'할머니는 네 번째로 태어난 손녀딸을 낳자마자 윗목에 쓱 밀어났다', 고 엄마가 아랫목으로

쓱 끌어와서 씻기고 하셨다고. 을섭씨는 딸 낳았다고 한 번도 서운해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아들을 바라셨던 할머니 덕분에 나의 이름은 집안 돌림자인 "용' 자가 들어가 있다.

다른 딸들은 "구슬옥"자로 이름이 지어져 예쁜 이름이다. 이름 덕분인지 남동생을

보았고, 다행인지 사랑도 많이 받았다고 하셨다.


사춘기 시절엔 왜 나만 "용"자냐고, 왜 나를 위한 예쁜 이름이 아니냐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딸 많은 집 넷째 딸은 이름도 나를 위한 이름이 아니었다.

엄마가 할머니한테서 분가하고 나를 낳으셨다. 마음이 편하셨는지 아주 튼튼한 딸을 낳았다.


덕분에 야리야리한 예쁜 언니들과는 별개로 미운오리 새끼인양, 예쁜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하물며 남동생은 어찌나 조각같이 잘 생겼던지...


학상시절 내내 내성적인 아이로 자랐다. 자존감은 다 어디로 갔는지, 부끄러움은 왜 그렇게

많이 달고 다녔는지, 내면에서만 나는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였다.

딸이 많다 보니 아버지의 규제가 많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노래를 하는 곳에선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했고, 춤추는 자리에선

춤도출줄 알아야 했다. 아버지의 규제로 춤출 줄 모르는 아이로 자랐다.

가끔씩 아버지는 왜 그렇게 재능을 키워주지 않았는지 궁금할때가 많았다.


스무살이 되고,서른살이 되면서 사람들에 예쁘다고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미운오리새끼 인줄 알고 살았는데, 내가 백조 였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나는 백조였구나.


내가 예쁜아이였는데, 나만 몰랐었다. 나는 예쁜 아이였다.

자존감 상승으로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내가 변한것이었다.

미운오리새끼가 아니라 백조로, 이름도 나를 위한 내 이름인 것이었다.


가끔 언니들하고 장난을 치곤했다." 옥ㅇ"이 왔어요. 나만 어찌 동떨어진 이름으로

지으셨을까? 어른이 되어서 알게된 지인들도 나같은 경우가 다수였다.

사랑하는 나의엄마 을섭씨가 아들을 낳아서 다행이다. 그 설움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새벽잠 없는 날 손가락 꼽으시며 자식걱정 하신다고, 손가락 깨물어봐 안아픈 손가락 있나?

하신다.

을섭씨는 항상 말씀하신다.

엄마는 너희를 똑같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