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섭씨의 첫째 딸 이야기

내 바둑이 찾아주라

by 후리지아

1960년쯤 추운 겨울에 을섭씨가 첫째 딸을 낳았다. 남편은 군대 입대하고 난 뒤라 곁에 없었다. 시어머니와 형님 아래서 딸을 낳았고, 형님은 아들을 낳았다.

할머니가 엄마 책상보 아래다가 '복숭아 다섯 알'을 몰래 사다가 놓으신 것을 먹고 입덧이 멈췄다고 하셨다.

그래서 큰언니가 엄청 예뻤나 보다. 복숭아처럼.


여름휴가를 맞아 뒤늦은 휴가를 큰언니와 함께 했다. 을섭씨랑 둘러앉아 옛날 이야기 하는 것이 나는 좋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내 바둑이 찾아주라' 갑자기 큰언니가 툭 내뱉었다.

'갑자기 웬 바둑이를 찾아 달라고 하시지, ' 생각하는 동시에 바둑이가 어디 있는데요? 물었다.


'너희가 내 바둑이 가져갔잖아' 하신다. 들어 본죽 국민학교 다닐 때 동생들이 바둑이가 그려진 국어 책 부분을 찢어 버려서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차가 없어져서 선생님이 몇 쪽 펼치라 하면 펼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지금 기억은 없지만, 어린 동생들이 많으니 책을 찢어 먹거나, 어디다 버렸을 것이란 추측뿐이다.

큰언니는 가끔 말씀하신다. '내 바둑이 찾아주라'라고.


큰언니는 나를 업고 밭에 나가신 엄마를 찾아 젖을 먹이려 다녔다고 한다. 한 날은 아기가 엄청 울더란다. 아무리 살펴봐도 이상은 없었다고 한다. 이리저리 살피던 중 아기 손에 강아지풀이 들려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아기 귓속에 강아지풀이 들어있었단다. 어떻게 꺼내고 처치했는지 지금 잘 자라 이 글을 쓰고 있다.

큰언니가 생명의 은인이신가 보다.


울 엄마 을섭씨에게 큰딸은 기둥이다. 첫 직장생활로 밭가르시라고 '소 한 마리 척 사줬던 큰딸', 큰일만 있으면 의지 하시는 큰딸이다. 큰언니 스무 살 시절, 추석 때 선물 한가득 안고 서울에서 오는 언니를 높은 고개까지 마중 가곤 했다. 서울 아가씨인 큰언니는 멋지고, 예쁘고, 까탈스럽고, 서울깍쟁이였다. 그 시절 좋기도 하면서 어려웠던 큰언니, 언제부턴가 큰언니가 편해졌다. 내 동생과 가끔 서울사람이라 그런가 역시 다르다, ' 저 유머 어쩔 거야, ' 진짜 한마디 한마디가 웃기셨다.


첫딸이라 야물 닦지고, 현명했다. 동네에서 동생들을 누가 괴롭히면 쫓아가서 혼내줬단다. 동네 꼬마 대장이었다. 동생들 돌보느라 어린 시절 큰언니 인생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원망하고 탓하지 않으신다. 그분이 바로 내 사랑하는 큰언니시다. 큰언니를 만나는 날이 기다려진다. 만나면 위로를 받고, 사랑을 받는다. 딸들이 부모님과 함께하는 놀이가 하나 있다. 규칙도 모르면서 무작정 놀아드리는 고스톱이다. 그 자리에서 규칙을 바꿔가면서 시간을 같이 한다. 그러다 장난으로 나를 휘감으면 꼼짝도 못 했다.


그러던 언니가 세월흐름에 장사 없다고, 추운 겨울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치셨다. 갱년기 여성은 특히 조심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내 사랑하는 큰언니가 빨리 건강해지셔서 같이 여행하는 날을 그려본다.

큰언니를 만나게 되면, 잃어버린 바둑이를 어찌 찾아드리나? 그 어린 시절에 몹시 난처했을 텐데, 동생들은 그것도 모르고, 항상 내리사랑이라고 받기만 한다.


을섭씨와 큰딸은 우리와는 다른 관계일 게다. 엄마와 큰딸은 어떤 관계로 엮인 인생 이야기가 되고 있을까?

항상 어딜 가든 큰 성 없는 자리를 아쉬워하신다. 내가 알 수 없는 마음 같으면서도, 다 알 것 같은 묘한 엄마의 마음이다.

큰언니를 만나면, '내 바둑이 찾아주라'하시면 또다시 웃음보가 터질 것 같다.

나는 또 깔깔깔 거리며 웃음으로 때울 것이다. 초가을날에 그 시간이 또 기다려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