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나와 잠자리의 갈등 1'
-안도현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굳이 수숫대 끝에
그 아슬아슬한 곳에 내려앉는 이유가 뭐냐?
내가 이렇게 따지듯이 물으면
잠자리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잠자리가 수숫대 끝에 앉았습니다. 아무리 봐도 아슬아슬합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앉은 그 위태로움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평평하고 안전한 땅이 이렇게도 넓은데 왜 하필 그 위험한 곳에 앉아 있느냐?’고 따지듯이 한마디 합니다. 잠자리도 지지 않고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고 말대꾸를 합니다. 화자도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둘러봅니다. 평지에 서 있지만, 온통 차들이 정신없이 달려들고 혼탁한 공기와 날카로운 언어의 파편들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곳에 서 있는 겁니다.
새들의 보금자리, 토끼, 노루의 보금자리를 생각해봅니다. 그들의 보금자리가 태풍의 비바람과 혹한의 눈보라를 막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보금자리가 아슬아슬하다면 그들에게 비바람을 막고 눈보라를 피할 아파트를 숲속 곳곳에 지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파트가 없어도 그들은 인간보다 더 안전하게 그들의 생태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수숫대 끝이 위험해 보이지만 잠자리의 시각으로 볼 때 수숫대 끝이 안전합니다. 땅 위에 앉았다가 잠시 조는 사이에 누구의 발에 밟힐지 모릅니다. 잠자리의 시각으로 볼 때 인간들은 서로 밟고 밟힐 수 있는 위태로운 평지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꿈이 뭐냐?'고 묻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학생은 교사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부모와 교사는 자식의, 학생의 꿈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험난한 요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안전하고 편안한 꿈을 꾸도록 조언합니다. 부모가, 교사가 조언할 때, ‘평지보다 수숫대 끝이 더 안전하다’는 잠자리의 항변을 돌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부모와 교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부모와 교사를 넘어설 수 없지요.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외치면서 청출어람을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부모도 교사도 자신의 태도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정저지와(井底之蛙)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나 견문이 좁음을 비유하는 말이죠. 우물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우물 밖의 세상을 조금 더 보았다는 이유로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우물 밖으로 나와서 견문을 넓히라고 질타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정저지와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평생을 우물 밖으로 돌아다녀야 합니다. 아무리 돌아다닌들 세상의 이치를 다 알 수 있겠는지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우물 밖 세상을 보고싶어 한다면 기꺼이 두레박을 내리든 사다리를 내리든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물 안에서 세상을 얻은 듯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개구리를 굳이 우물 밖으로 끌어내는 것은 ‘수숫대 끝’에서 휴식을 취하는 잠자리를 평지로 끌어내리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이 시를 읽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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