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뜨거움을 낳고

안도현, '대설(大雪)'

by 인문학 이야기꾼

대설(大雪)

-안도현


상사화 구근을 몇 얻어다가 담 밑에 묻고 난 다음날,

눈이 내린다


그리하여 내 두근거림은 더 커졌다


꽃대가 뿌리 속에 숨어서 쌔근쌔근 숨쉬는 소리

방안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누웠어도 들린다


너를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뜨거워졌다


몸살 앓는 머리맡에 눈은

겹겹으로, 내려, 쌓인다


상사화(相思花)는 2월 우수(雨水) 무렵에 잎이 자라기 시작해서 5월 소만(小滿) 무렵에 잎이 누렇게 시들어 사라집니다. 잎이 없는 상태에서 여름을 보내고 9월 백로(白露) 무렵에 땅을 뚫고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핍니다. 열흘 정도 붉은 꽃이 피었다가 꽃이 지고 나면 꽃대가 쓰러집니다. 10월 상강(霜降) 무렵에 푸른 잎이 나와 눈을 맞으며 겨울을 보냅니다. 이듬해 이른 봄에 잎이 다시 자랍니다. 상사화는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합니다. 잎과 꽃은 서로 그리워할 뿐 만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별할 수도 없는 숙명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워하는데도 만나지 못해 생긴 병을 상사병(相思病)이라고 하죠. 그래서 이 꽃을 상사화라고 하는지 모릅니다.


화자는 그 상사화(相思花) 뿌리를 담 밑에 심습니다. 12월 대설(大雪) 무렵입니다. 어쩌자고 그렇게 추운 대설(大雪) 무렵에 심었는지……. 눈이 내립니다. 상사화 구근이 무사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그 걱정이 화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듭니다. 상사화 구근을 심었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가슴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을 심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랑을 심은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자신의 가슴에 심은 사랑이 무사히 싹을 틔울 수 있을지에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립니다. 담 밑에 심어 둔 상사화 구근의 숨쉬는 소리가 방안까지 들립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있는 화자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도 담장 밑 흙 속까지 전달됩니다. 뿌리 속에 숨은 상사화 꽃대와 이불 속에 숨은 화자의 심장은 그리움이라는 숨소리로 하나가 됩니다.


그리움이라는 숨소리는 ‘나’를 뜨겁게 합니다. ‘나’를 살아있게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리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움의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소중한 가치일 수도 있고, 한 편의 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꿈과 이상이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소망하는 것을 이룬다면 그것은 더 이상 꿈과 이상이 될 수 없고, 그리움이 될 수 없습니다. 결핍에서 그리움이 생기지만, 그 그리움을 마음으로 한 번씩 꺼내 보고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우리를 뜨겁게 만들고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해 봅니다.

[사진출처] Pixabay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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