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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Feb 28. 2022

리더의 자질보다 중요한 삶의 태도

리더가 되기 위하여

  군대 초급 장교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군대부터 갔다 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학군사관후보생(ROTC) 모집 공고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소 내성적이고 남들 앞에 나서기가 두려웠던 성격을 고쳐보고 싶은 생각에 학군사관후보생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지원을 했고 합격했습니다.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기 전 2월 중순, 가입단 훈련이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요즘과 달리 그 당시에는 가입단 훈련을 학교별로 진행했습니다. 저는 2학년 겨울방학을 온전히 고향 시골에서 보냈기 때문에 가입단 훈련에 필요한 복장과 준비물에 관한 내용을 편지로 받았습니다. 하루 전에 학교내 이발소에서 머리 깎고,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가입단 훈련 첫날을 맞았습니다. 


  복장 규정대로 속 옷 하나에 교련복을 입고 쌀쌀한 공기를 맞으며 집합 장소로 갔습니다. 훈련 시작과 함께 1년 선배들의 고함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발사되었습니다. 검은 양말에 검은 운동화부터 복장 검사가 시작되었죠. 저는 검은색 양말이 없어 밤색 양말을 신고 있었습니다. 검은 양말 신지 않은 후보생은 앞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저는 밤색이나 검은색이나 그게 훈련에 무슨 상관있냐며 나가지 않았습니다. 한 명 한 명 검사를 하는 겁니다. 동료들은 어떻게 정보를 알고 준비를 했는지 밤색 양말을 신은 후보생은 저 혼자였습니다. 저는 앞으로 불려 나갔습니다. ‘너 색맹이냐? 색맹이 어떻게 장교를 할 수 있어?’라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 개인 특별 얼차려를 받았습니다. 

  흰 손수건도 준비물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흰 손수건 없는 후보생 앞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손수건은 흰색 바탕에 푸른 실선이 가늘게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흰 손수건이라고 생각하고 또 나가지 않고 버티었습니다. 손수건을 다 꺼내 보라는 겁니다. 또 적발되었습니다. 색맹 소리를 또 들으며 앉았다 일어서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했습니다. 가방 색깔도 적발되었습니다. 방학 중에 시골에 머물면서 가입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지 않은 저를 자책했습니다.

  하루종일 달리고 뛰고 뒹굴었습니다. 대답 소리가 작으면 작다고 선착순을 시키고, 선착순에 일등을 하면 동료애가 없다고 얼차려를 주고, 꼴찌를 하면 장교가 될 놈들이 꼴찌한다고 얼차려를 받으며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20여 년의 운동량을 다 합친 것보다 하루의 운동량이 더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대학 정문 앞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2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아 엉금엉금 기다시피 계단을 올랐습니다. 땀과 흙에 범벅이 된 교련복을 손으로 세탁했습니다. 내일 다시 입어야 되니 1층 주인집 탈수기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계단을 기어서 오르내렸죠. 옆 방에서 자취하는 같은 학과 친구가 방학인데도 와서 밥을 해주고 도시락까지 싸 주었습니다.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이불 밑에 넣고 말린 교련복을 입고 다음날 또 훈련이 계속되었습니다. 계단을 오를 수 없었던 다리는 선착순에도 적응이 되고 쪼그려 뛰기에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정신력이 그렇게 중요한지 그때 알았습니다. 일주일의 훈련이 끝났습니다. 2월 하순 다시 시골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가입단 훈련에 대해 복기를 해 보았습니다.     


  가입단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가입단 훈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미리 알고 대처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장교로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필요한 정보는 미리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죠.

  정확성이 부족했습니다. 처음에는 ‘색깔이 장교가 되는 데 무슨 필요가 있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검은색 양말과 밤색 양말이 기능의 차이는 없지만, 지시 사항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정확히 지켜야 한다는 것은 한참 복기를 하고 난 후에 얻은 교훈이었습니다. 

  동료에 대한 배려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운동장 한 바퀴 선착순을 하면 잘해도 얼차려 못해도 얼차려입니다. 잘하면 ‘너 혼자 살고 동료는 죽어도 좋단 말이냐?’하며 얼차려를 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일주일의 혹독한 훈련이 체력에 대한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때의 훈련으로 얻은 체력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초급 장교라는 리더가 되기 위해 받은 교육 훈련은 리더로서의 자질보다는 준비성, 정확성, 배려, 체력 등 삶의 태도를 더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배운다고 다 실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훈련이 저의 삶에 자양분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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