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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Apr 11. 2022

심심풀이로 하는 토끼 사냥에 …….

안도현, '사냥'

            사냥

                            -안도현     


    토끼를 잡으러

    눈 쌓인 산에 올랐다가

    춘란(春蘭) 푸른 잎을 뜯어 먹던 토끼가

    거기에다 이빨 자국을 새겨 놓고 간 걸 보았다     


    손끝을 대어보니

    아리아리했다

    양식이 다 떨어졌다고,

    깊은 산으로 가야겠다고,     


    나는, 내려가서 화투나 치자, 했는데

    동무들은, 근방에 토끼가 있을 것 같다며

    환약 같은 토끼 똥을 주워들었다     


    토끼는 어느 먼 골짜기에다

    제 발자국을 찍으며 서럽게 뛰어갈 것이다          


  겨울입니다.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눈 쌓인 산에 토끼를 잡으러 갑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토끼가 푹푹 빠지기 때문에 뜀박질이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토끼보다 사람이 빠르다는 자만심으로 토끼 사냥에 나섭니다. 겨울이라 눈까지 내려 토끼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입에 아린 춘란잎이라도 뜯어 먹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겨울 산의 서러움보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냥감으로 여기는 것이 더 야속합니다. 먹을 것을 찾는다는 핑계로 인간의 눈을 피해 서러운 발자국을 남기며 깊은 산으로 들어갑니다. 토끼 발자국을 따라 사람들은 끝까지 토끼를 추적합니다.      

  사람이 토끼를 잡는 것은 매가 토끼를 잡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매는 사냥을 해야 생존할 수 있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수렵시대의 사냥이라면 생존 수단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토끼 사냥은 놀이의 일종일 뿐입니다. 화투를 치는 것과 토끼를 잡는 것은 동격입니다. 심심풀이로 화투를 치듯 눈오는 날 토끼를 잡는 것은 오락일 뿐입니다. 사람에게는 오락이지만 토끼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호시탐탐(虎視眈眈) 자신을 노리는 매의 눈도 피해야 하고 먹을 것도 찾아야 합니다. 이것만도 설상가상(雪上加霜)인데 사람들마저 희희낙락(喜喜樂樂) 자신의 목숨을 노립니다.     

 

  공자(孔子)가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가다가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 연유를 물었습니다. 시아버지도 지아비도 아들도 모두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공자는 ‘호랑이가 출몰하는 무서운 곳을 떠나 마을로 내려가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죠. ‘관리들이 세금을 가혹하게 징수하기 때문에 그곳이 호랑이가 출몰하는 이곳보다 무섭다’고 여인은 대답합니다. 여기에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고사가 유래되었습니다. 관리들은 그저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세금을 징수하지만, 세금을 내야 하는 백성들은 호랑이가 우글거리는 깊은 산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오죽하면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겠습니까?   

   

  2,500년 전의 가정맹어호가 현재에는 없는지 살펴보라고 이 시는 말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재미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의 돈 사냥, 땅 사냥, 집 사냥이 심심풀이로 하는 토끼 사냥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이 시는 말하는 듯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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