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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Oct 11. 2022

내 삶을 흔드는 것은 ……

신경림, '갈대'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이 시는 갈대의 생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갈대의 울음과 갈대의 흔들림이란 우리 삶에서 파생되는 울음이고 흔들림입니다. 우리는 기쁠 때도 울고 슬플 때도 울고 감격했을 때도 울죠. 그러나 아무래도 울음은 슬픔을 함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가면서 슬픔과 삶의 우여곡절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일이 말은 하지 않지만 누구나 가슴에 돌덩이 하나쯤은 지니고 삽니다. 그 돌덩이가 우리를 속으로 울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울음이 사람을 마구 흔들어대기도 합니다. 그 흔들림이 때로는 우리를 주저앉게도 만들고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도 만듭니다. 흔들림의 원인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울음이고, 울음을 만든 것은 가슴을 짓누르는 돌덩이라는 것이 시인의 인식입니다.

      

  ‘김남조’ 시인은 ‘설일’이라는 시에서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고 했습니다. 삶은 항상 돌층계의 어디쯤이라는 겁니다. 돌층계를 오르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끝이 보이면 끝을 보며 용기를 내고 힘을 내어 올라가겠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돌층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죠. 그러나 힘든 돌층계를 오르는 일이 삶의 길이고, 이런 삶의 길이 주어진 것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길이니, 이것이 ‘은총’이라는 것이 김남조 시인의 인식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다고 했습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오면 비에 젖으며 꽃을 피웠다고 했습니다. 우리네 삶도 비바람에 젖지 않고 가는 삶은 없다고 했습니다. 

  돌층계가, 비바람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젖게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흔들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흔드는 것은 삶의 돌층계나 삶의 비바람이 아니라 돌층계와 비바람을 슬픔의 눈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식입니다. 삶의 돌층계를 눈물의 돌덩이로 받아들이느냐 은총의 돌층계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흔들림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말입니다. 더럽고 깨끗함은 외부 세계의 존재가 갖는 속성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흔드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 삶의 어떤 돌층계나 삶의 어떤 비바람도 웃음으로 넘겨버릴 수 있지 않겠는지요.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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