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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Feb 09. 2022

따뜻한 겨울 편지

안도현, '겨울 편지'

        겨울 편지

                        -안도현     


    당신, 

    저 강을 건너가야 한다면

    나, 얼음장이 되어 엎드리지요     


    얼음장 속에 물고기의 길이 뜨겁게 흐르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는 당신이 출렁이고 있으니까요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이별의 순간에도 화자는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떠나는 길이 편안하게 강을 건너는 길이 되도록 기꺼이 얼음장이 되려고 합니다. 얼음장이 되어 엎드릴 테니 얼음장을 밟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강을 건너가라는 겁니다. 꽁꽁 언 얼음장은 얼음장 위만 안전하고 평탄한 것이 아닙니다. 얼음장 속은 어떤가요? 얼음장 밖의 온도가 영하 30℃로 떨어지더라도 얼음장 속은 영상의 따뜻함을 보입니다. 그 따뜻함 속에서 물고기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한겨울을 나듯이, 화자는 얼음장이 되어 자신의 마음속에 출렁이고 있는 ‘당신’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길을 만들어 주고자 하는 겁니다.

     

  ‘김소월’ 시인이 쓴 국민 애송시 ‘진달래꽃’이라는 시가 있죠. 이 시에서 화자는 ‘나 보기가 역겨워’ 그대가 나를 떠나간다면 ‘진달래꽃’을 한아름 따다가 그대 떠나는 길에 뿌릴 테니 그 꽃을 밟고 가라고 노래합니다. 화자의 마음은 진심일까요? 어쩌면 진심일 수 있습니다. 그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니까 떠나는 그대를 축복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라면 ‘당신이 떠나면 나는 진달래꽃과 같은 붉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릴 텐데 그래도 나를 밟게 가겠느냐? 나를 떠나지 말아라’고 하겠죠. ‘진달래꽃’의 화자 역시 당신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반어적으로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테니 편안하게 떠나가십시오.’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이 시의 화자 역시 겉으로는 ‘얼음장’이 되어 당신을 보호해 줄 테니 편안하게 당신의 길을 찾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내 마음속에 당신이 출렁이고 있는데, 뜨겁게 출렁이고 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짓밟고 갈 수 있겠느냐? 제발 떠나지 말아라’고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 속마음을 숨기고 얼음장이 될 테니 얼음장을 밟고 가라고 하죠. 이런 마음으로 보아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면서도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애이불비(哀而不悲)라는 말이 있습니다.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슬픈 마음을 상대가 눈치챘을 때, 상대가 슬퍼할 마음까지를 생각해 슬프지 않은 체하는 그 마음이 사랑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쓴 편지는 아무리 추운 겨울에 쓴 편지라도 따뜻할 수밖에 없겠지요.     

    [사진출처] Pixabay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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