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문학 이야기꾼 Jan 14. 2022

먼 불빛이 주는 따뜻함

안도현, '먼 불빛'

            먼 불빛 

                            -안도현     


    들녘 끝으로 불빛들이

    일렬횡대로 줄지어 서 있는 만경평야

    이 세상 개울물을 잠방잠방 맨처음 건너는

    아이들 같구나

    너희도 저녁밥 먹으러 가느냐

    날 추운데 쉬운 일이 아니다 결코

    저 스스로 몸에다 불을 켠다는 것

    그리하여 남에게 먼 불빛이 된다는 것은

    나는 오늘 하루 밥값을 했는가

    못했는가 생각할수록 어두워지는구나          


  저 멀리 불빛들이 보입니다. 만경평야 끝자락에 불빛들이 일렬횡대로 서 있습니다. 그 불빛을 바라보는 나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어릴 적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가 저녁이 되면, 저녁 등불이 하나둘 밝혀지게 되면 밥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들판과 동심과 저녁밥이 불빛을 고리로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몸에다 불을 켠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고 불을 켜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가 켠 불은 나를 위해 쓰이지 않습니다. 불에서 나오는 빛과 온기는 오롯이 남에게 주어야 합니다. 자신을 태워 남에게 아낌없이 주는 불빛은 모든 이에게 ‘밥값’을 넉넉히 하고도 남습니다. 내가 오늘 한 일을 돌아봅니다. 내가 남을 위해 무엇 하나 준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없습니다. 오늘 하루 나는 ‘밥값’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을 위해 불빛 한 점 내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나희덕 시인의 ‘산속에서’라는 시(詩)가 있습니다. 산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을 봅니다. 그 불빛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함’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또 누군가에게 ‘불빛’은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하는 힘을 주기도 합니다.


  너른 들판을 보면서, 들판의 곡식들을 보면서, 모두에게 희망이 되는 불빛을 보면서 나는 남에게 불빛이 되었는지를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 밥값은 하고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사진출처 Unsplash 무료이미지     

작가의 이전글 울타리를 길로 바꾸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