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기다리는 이에게'
-안도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불 꺼진 간이역에 서 있지 말라
기다림이 아름다운 세월은 갔다
길고 찬 밤을 건너가려면
그대 가슴에 먼저 불을 지피고
오지 않는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비로소 싸움이 아름다운 때가 왔다
구비구비 험한 산이 가로막아 선다면
비껴 돌아가는 길을 살피지 말라
산이 무너지게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
함성이 기적으로 울 때까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그대가 바로 기관차임을 느낄 때까지
예전에 ‘비둘기호’라는 열차가 있었죠. 비둘기호는 철길이 있고 간이역이 있으면 정차하는 낭만의 열차입니다. 간이역에 코스모스라도 피면, 코스모스 사이로 기차가 도착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간이역에 내리면 그 만남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간이역에 불이 꺼져 있습니다. 올 기차도 없고, 올 사람도 없습니다. 불 꺼진 간이역에서 밤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 아닙니다. 밤새 기다리지 말고 소중한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찾아가는 길이 어렵고 험난하다면 함성이라도 지르고, 기관차가 되어서라도 찾아가야 아름다운 만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한비자(韓非子)』 ‘오두편(五蠹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송(宋)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토끼 한 마리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받고 죽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후로 농부는 토끼가 그루터기에 머리를 받고 죽기만을 기다리다가 여러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토끼를 잡고자 하면 토끼가 머리를 들이받기를 무작정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함정이든 그물이든 토끼를 잡을 준비를 해서 토끼가 다니는 길로 토끼를 찾아 나서는 것이 토끼를 잡을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죠.
여기 내가 사랑하는 가치(價値)가 있습니다. 공정(公正)과 정의(正義)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나 자유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치는 내가 소망한다고, 내가 토끼를 기다리듯이 기다린다고 나에게 오지 않습니다.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소중한 가치들은 누군가가 기관차가 되어 함성을 지르며 이끌고 온 것입니다. 함성을 지르면서 소중한 가치를 찾아 나서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삶의 전부를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삶의 전부를 걸고 소중한 가치들을 여기까지 가져왔습니다. 이제 누군가의 실천을 기다리지 말고, 내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피고, 내가 기관차가 되어, 내가 소망하는 가치를 향해 달려가라고 이 시는 말하는 듯합니다.
소중한 가치를 얻기 위해 삶의 전부를 건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많은 소중한 것들을 누리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