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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by 인문학 이야기꾼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1980년대 연탄은 서민들의 생활필수품이었습니다. 한겨울의 추위도 연탄으로 견뎌내고, 밥을 짓는 일도 국을 끓이는 일도 연탄불에 의지했습니다. 난방과 취사에 필수품이었던 연탄도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나면 처치 곤란의 쓰레기가 됩니다. 남은 에너지가 제로이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연탄재는 덩치도 크고 무겁기도 하여 쓰레기로 버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생활필수품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연탄재를 사람들은 함부로 발로 찹니다. 자기보다 못한 존재에 대한 갑질인 셈이죠.


갑질은 돈의 우위를 무기로, 권력의 우위를 무기로, 조직 내 서열의 우위를 무기로 평등해야 할 인간관계를 주종관계로 인식하고,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불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부를 좀 잘한다고 공부 좀 못하는 사람에게 갑질을 하고, 운동을 좀 잘한다고 운동을 좀 못하는 사람에게 갑질을 하기도 합니다. 연탄은 ‘갑’의 위치에 있었지만 연탄재는 ‘을’의 위치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누구나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며 갑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면에 선한 에너지든 악한 에너지든 에너지로 꽉 찬 사람들은 에너지가 제로인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에게 베푼 에너지의 양으로 보면 연탄재가 ‘갑’이 됩니다. 연탄재는 ‘갑’의 위치에 있을 때도 잘난체하지 않았습니다. 꽉 찬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뽐내지 않았습니다.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도(糊塗)’는 ‘어리석다’는 뜻으로 쓰이고, ‘난득(難得)’은 ‘얻기 어렵다’는 뜻이니, 이 말은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며 살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남들에게 자신의 잘난 상황을 뽐내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속뜻이 있죠. 똑똑하다면 똑똑함을 드러내지 말고, 돈이 많다면 돈이 많은 것을 드러내지 말고, 공부를 잘하면 공부 잘하는 티를 내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삶의 이치가 이 말에 담겨 있습니다. 난득호도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우리 속담과 의미가 통하는 말입니다. 연탄이야말로 ‘난득호도’의 의미를 실천한 존재가 아니겠는지요?


이 짧은 시를 읽으면서 천덕꾸러기인 연탄재에서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는 삶의 가치를 이끌어낸 시인의 안목에 감탄하게 됩니다. 연탄재라는 하찮은 사물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이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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