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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저 혼자만 푸르러지지 않는다

안도현, '산에 대하여'

by 인문학 이야기꾼

산에 대하여

-안도현


산은 저 홀로 푸르러지지 않는다네

한 산이 그 빛깔 흐려지며 그 너머 산에게 자기를 넘기면

그 빛깔 흐려진 산이 또 빛깔 흐려지며 그 너머 산에게 자기를 넘긴다네


산은 또한 저 홀로 멀리 사라지지 않는다네

한 산이 한 산을 받아 앞에 선 산에게 짙어진 빛깔 넘기면

그 산은 또 그 앞에 선 산에게 더 짙어진 빛깔 넘기고

그 빛깔 넘겨받은 산은 그 앞에 선 산에게 더더욱 짙어진 빛깔 넘긴다네


소나무 푸른 것은

우리 동네 앞산

우리 동네 앞산은

소쩍새를 키운다네


봄이 되면 매화부터 피기 시작합니다. 새봄이 온다는 것을 매화는 온몸으로 압니다. 계산 능력이 없는 매화가 새봄이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아니 어쩌면 매화는 계산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죠. 온도를 계산하고, 겨울 석 달을 계산할 줄 아는지도 모릅니다. 매화를 피운 나무는 자기만 꽃을 피우지는 않습니다. 주위에 있는 매화나무들에게 세상에 나가도 좋을 시기가 되었다고 알립니다. 좋은 것을 자기 혼자만 독점하지 않습니다. 진달래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개나리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진달래도 개나리도 친구들에게 이제 세상에 나가도 된다고 알립니다. 온 산이 진달래로 개나리로 물듭니다. 벚꽃도 꽃이 피고 질 때가 되었다는 자신들의 정보를 자기들끼리 공유해서 일제히 개화와 낙화를 맞이합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죠. 같은 무리끼리 서로 어울려 지낸다는 말입니다. 참새는 참새끼리, 제비는 제비끼리 어울리죠. 참새가 거울을 보고 자기의 모습을 인지한 후,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무리 속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 텐데 어떻게 자기 무리를 알아보고 그 무리에 들어가 어울리는지도 궁금합니다. 들소도 코끼리도 유유상종이죠. 들소 무리가 식량을 찾아 이동할 때 무리 전체가 이동합니다. 강을 건너면 싱싱한 풀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도 궁금하지만 유유상종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산도 산끼리, 나무도 나무끼리, 꽃도 꽃끼리 유유상종입니다. 자신의 정보를 아낌없이 자기 무리에게 알려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합니다.

봄이 되면 온 산이 붉고 노란 꽃으로, 연약하지만 생명력 가득한 신록으로 발랄함을 자랑합니다. 한 나무가 싹을 틔우면, 그래서 세상 구경이 좋으면 온 나무들에게 싹을 틔울 때가 되었다고 알립니다. 정보의 전파 속도가 남쪽 산에서 북쪽 산으로 빠르게 진행됩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그래서 잎을 떨구어야 할 시기라 판단되면 이 정보 역시 끼리끼리 공유합니다. 남북으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생의 한 계절을 뒤로 하고 붉게 물들었다가 내년을 기약하며 스스로 집니다. 이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다른 나무 친구들에게 배워서 알기 때문에 약간의 망설임도 서운함도 없이 붉게 물든 잎을 떨구어 냅니다. 산은 그 풍성한 잎들과 열매들로 새들도 키우고, 다람쥐도 키우고, 땅에 떨어진 잎들로는 온갖 벌레들이 겨울나기에 충분한 이불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항상 오르는 산이지만 어울려 살아가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이치를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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