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가을입니다. 화자는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있습니다. 나뭇잎은 봄부터 한여름의 무성함을 지나 지금까지 하늘 가까운 높은 곳에서 나무 밑을 오가는 사람들과 산짐승들과 풀벌레들을 굽어보고 있었습니다. 가을입니다. 나뭇잎은 높은 자리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가을 나뭇잎은 이제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 잎 두 잎 더 내려갈 곳 없는 곳으로 내려앉습니다. 낮은 곳에 있는 존재들에게 자신의 온몸을 나누어줍니다. 나뭇잎은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벌레들에게 푹신한 이불이 되어주기도 하고, 밤톨과 도토리를 자신의 몸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다람쥐에게 겨울 양식으로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이준관 시인은 ‘가을 떡갈나무 숲’이라는 시에서 가을 떡갈나무는 ‘너구리나 오소리의 따뜻한 털’이 되기도 하고, ‘쐐기 집’이 되기도 하며, ‘지난 여름 풀 아래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벌레들의 알의 집’이 되기도 하고, ‘풍뎅이들의 혼례’의 공간이 된다고도 했습니다. 가을이면 늘 보는 낙엽에서 이와 같은 다양한 삶의 이치를 발견해내는 시인의 안목이 그저 경이로울 뿐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나뭇잎을 보면서 화자도 ‘그대’에서 무엇을 좀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지신이 가진 것이 보잘것없더라도 낮은 곳으로 내려앉는 나뭇잎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낮은 곳에 있는 존재들에게 베풀며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라 여기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싶습니다. 모든 존재들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재물이 부족한 사람도 있고, 영혼이 공허한 사람도 있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 용기가 부족한 사람, 겸손이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겠는지요.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습니다.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뜻이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만물을 이롭게 합니다. 물은 자신이 없으면 모든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알지만, 뽐내지 않고 더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존재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죠. 베푼 것보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현재보다 좀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내 것을 내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더 베풀 곳이 없는지를 찾는 마음, 현재보다 더 낮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이 시를 통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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