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마늘밭 가에서'
-안도현
비가 뚝 그치자
마늘밭에 햇볕이 내려옵니다
마늘순이 한 뼘씩 쑥쑥 자랍니다
나는 밭 가에 쪼그리고 앉아
땅 속 깊은 곳에서
마늘이 얼마나 통통하게 여물었는지 생각합니다
때가 오면
혀 끝을 알알하게 쏘고 말
삼겹살에도 쌈 싸서 먹고
장아찌도 될 마늘들이
세상을 꽉 껴안고 굵어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마늘을 심습니다. 무와 배추를 뽑아낸 자리, 상처가 난 그 자리를 말끔하게 고릅니다. 거름을 주고 검은 비닐을 씌우고 비닐에 구멍을 내고 씨마늘을 심습니다. 씨마늘이 땅 속에서 모진 겨울을 이겨낼 수 있도록 왕겨로 덮어주고 부직포도 덮어줍니다.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 혹독한 추위를 마늘은 흙의 도움을 받아, 왕겨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견뎌냅니다.
봄이 되었습니다. 만물을 생장하게 하는 봄비가 흠뻑 내렸습니다. 마늘이 물이 필요한 때를 알아 하늘이 물을 내려주었습니다. 빗물만으로는 마늘이 성장할 수 없음을 알고 바람은 햇볕을 마늘에게 데려다줍니다. 비를 맞고 햇볕을 맞아 마늘은 쑥쑥 자랍니다. 마늘의 성장에 화자도 한몫을 하고 싶습니다. 마늘밭 가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마늘이 통통하게 여물기를 기원합니다. 봄비와 햇볕과 기원의 힘으로 마늘은 버릴 것 하나 없는 마늘로 자랍니다. 마늘도 먹고, 마늘잎도 먹고, 마늘종은 장아찌로 만들어 먹습니다.
마늘은 자기 혼자만이 남보다 굵어가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꽉 껴안고 굵어가려고 합니다. 마늘은 세상의 덕을 많이 보았기에 세상을 꽉 껴안습니다. 그것이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마늘이 싹을 틔울 때 흙이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그 두꺼운 흙을 어떻게 뚫을 수 있었겠습니까? 흙이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면 마늘이 어떻게 통통하게 여물 수 있었겠습니까?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없었다면 어떻게 입 안이 얼얼할 정도의 매운맛을 간직할 수 있었겠습니까? 봄비도 햇볕도 마늘은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그래서 잎도 줄기도 뿌리도 아낌없이 다 내놓을 수 있습니다.
받은 만큼은 돌려주어야 한다는 진리를 이 시를 통해 배웁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