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함께 하는 만찬(晩餐)

안도현, '마당밥'

by 인문학 이야기꾼

마당밥

-안도현


일찍 나온 초저녁 별이

지붕 끝에서 울기에


평상에 내려와서

밥 먹고 울어라, 했더니


그날 식구들 밥그릇 속에는

별도 참 많이 뜨더라


찬 없이 보리밥 물 말아 먹는 저녁

옆에, 아버지 계시지 않더라


시골 어느 가정에서 저녁을 먹는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마당에서 저녁을 먹는 것으로 보아 여름이나 초가을 정도 되는 모양입니다. 마당가에서는 풀벌레들이 하루의 아쉬움을 달래면서 울어대고, 지붕 끝에는 별들의 울음이 반짝이며 걸려 있습니다. 마당 가운데 있는 평상에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습니다. 반찬도 없이 보리밥을 물에 말아 먹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습니다. 출타 중인지 돌아가셨는지는 모릅니다. 보리밥 물 말아 먹는 저녁은 낭만으로 읽히기보다 가난으로 읽힙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가난으로 이어집니다.

지붕 끝에 걸려 있는 별은 배가 고파 우는 듯합니다. 화자도 배가 고파 운 적이 있기에 초저녁 별도 배가 고프게 보입니다. 풀벌레 울음소리도 배가 고파 우는 소리로 들립니다. 별도 풀벌레도 만찬에 초대합니다. 반찬이 없기에 보리밥을 물에 말았습니다. 물에 말았기 때문에 밥그릇에 푸른 하늘도 비치고 반짝이는 별도 비칩니다. 별과 함께 풀벌레 울음소리도 물 위에 떠 있습니다. 낯선 길손이 지나가다가 한 끼 청하면 보리밥일망정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넉넉한 인심입니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롭습니다.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조선 후기 방랑 시인 김병연도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마음을 주고받는 따뜻한 한시를 남겼습니다.


四脚松盤粥一器(사각송반죽일기)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排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主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吾愛靑山倒水來(오애청산도수래)

물 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김삿갓이 방랑 중에 어느 농가에 들어가 밥 한 끼를 청합니다. 대접할 먹거리가 없는 가난한 주인은 나그네의 청을 뿌리칠 수 없어서 멀건 죽 한 그릇을 대접합니다. 멀건 죽밖에 대접할 수 없는 주인은 주인대로 면목이 없고, 가난한 농가에 와서 폐를 끼치는 나그네는 나그네대로 미안합니다. 멀건 죽이기에 죽 그릇에 청산도 비치고 하늘도 비치고 하늘의 구름도 비칩니다. 멀건 죽은 배고픔도 달래주지만, 멀건 죽에 담긴 청산과 같은 주인의 넉넉한 마음은 나그네의 고달픔도 치유해 줍니다.


현실의 어려움은 그것을 직접 개선해서 극복하는 방법이 있고, 현실의 어려움을 정서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문학(文學)은 현실에서 오는 상처와 아픔을 정서적으로 치유하고 극복하는 좋은 수단이 됩니다. 가난하지만, 그래서 반찬도 없이 보리밥을 물에 말아 마당에서 저녁을 먹지만, 초저녁 별들과 풀벌레들의 하모니를 반찬으로 만찬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문학의 소중한 소명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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