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아름다움을 주는 봉숭아꽃

안도현, '꽃'

by 인문학 이야기꾼

-안도현


누가 나에게 꽃이 되지 않겠느냐 묻는다면

나는 선뜻 봉숭아꽃 되겠다 말하겠다


꽃이 되려면 그러나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겠지

꽃봉오리가 맺힐 때까지

처음에는 이파리부터 하나씩

하나씩 세상 속으로 내밀어보는 거야


햇빛이 좋으면 햇빛을 끌어당기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흔들어보고


폭풍우 몰아치는 밤도 오겠지

그 밤에는 세상하고 꼭 어깨를 걸어야 해

사랑은

가슴이 시리도록 뜨거운 것이라고

내가 나에게 자꾸 말해주는 거야


그 어느 아침에 누군가

아, 봉숭아꽃 피었네 하고 기뻐하면

그이가 그리워하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내 몸뚱어리 짓이겨 불러줄 것이다


입학 선물, 졸업 선물 등 선물하면 꽃이 먼저 떠오르죠. 꽃은 남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꽃이 되어 남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꽃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겨울 석 달 동안 혹독한 추위에 맞서 꽃망울의 싹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꽃망울이 얼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추위를 막고 견뎌야 합니다. 봄이 되면 꽃이파리부터 세상 속으로 내밀어 봅니다. 햇빛과 바람과 친구가 되어 세상 탐색을 해 봅니다. 꽃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 되면 꽃이파리를 다시 숨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하고 어깨를 걸고 폭풍우를 이겨냅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배웁니다. 사랑은 내가 좋아한다고 가까이하고 싫어한다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세상과 함께 하기 위해 뜨거운 가슴을 지녀야 한다는 것도 배웁니다.

화자는 꽃 중에서도 봉숭아꽃이 되고 싶습니다. 꽃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날 자신의 몸뚱어리를 짓이겨 사람들의 열 손톱을 붉게 물들이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붉게 물든 열 손가락을, 그 천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그리워하는 이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이름을 되뇌게 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형체는 사라지더라도 자연의 색채로 남아 다른 사람의 기쁨이 되고, 그리운 이를 떠올릴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시인들이 ‘꽃’을 소재로 시를 썼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도 있고, 이육사 시인의 ‘꽃’이라는 시도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최두석 시인의 ‘성에꽃’도 있죠. 정호승 시인의 ‘꽃’도 있고, 조지훈 시인의 ‘민들레꽃’도 있습니다. 같은 ‘꽃’인데도 그 꽃을 보고 세상을 읽어내는 시인의 안목은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의 공통점은 꽃에서 아름다움을 읽었다는 겁니다. 그 아름다움의 색채와 질감은 조금씩 다르지만 따뜻한 아름다움은 시 속에 공통적으로 내포되어 있습니다. 꽃의 아름다움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대면하면 모두가 꽃이 될 수 있음을 공통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남에게 기쁨을 주고 마침내 자신의 몸을 짓이겨가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마음이 진정한 사랑임을 봉숭아꽃을 통해 알게 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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