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광양회(韜光養晦), 난득호도(難得糊塗)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을 보겠습니다.
여포(呂布)와의 싸움에서 밀린 유비(劉備)는 조조(曹操)를 찾아가 몸을 의탁합니다. 천하의 영웅들을 모으고 있는 조조는 유비를 황제에게 소개합니다. 황제와 족보를 따져보니 유비가 황제의 아저씨뻘 됩니다. 그래서 유비는 유황숙(劉皇叔)으로도 불립니다. 조조의 참모인 정욱(程昱)은 유비의 야망을 간파하고 유비를 죽여야 한다고 조조에게 말합니다. 이때 유비는 채소 농사에 짓는 것으로 야심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유비의 야심(野心)을 알아보기 위해 유비에게 천하의 영웅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유비는 원술, 원소, 유표, 손책 등의 이름을 댑니다. 조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금 천하의 영웅은 두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한 명은 조조 자신, 또 한 명은 그대 유비라고 말하죠.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 유비는 깜짝 놀랍니다. 이 순간 하늘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터집니다. 유비는 자연스럽게 천둥소리에 놀란 것으로 가장해 위기를 넘깁니다. 조조는 천둥소리에 놀라는 유비를 영웅의 반열에서 완전히 제외하기 위해 한 번 더 테스트를 합니다.
조조는 유비에게 초청장을 보내 연회 자리에 부릅니다. 초청장을 받은 유비는 유명 인사가 된 기분으로 으스대며 졸장부가 대장부인 양 행세합니다. 이때 조조의 정보원이 유비와 동문수학한 공손찬(公孫瓚)이 원소(袁紹)에 패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유비는 서럽게 울면서 공손찬의 복수가 자신의 삶의 목표인 양 연기를 하며, 조조에게 5만의 군사를 빌립니다. 공손찬 정도의 복수를 위해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을 보고 조조는 유비의 작은 그릇을 간파합니다. 조조는 5만의 군사를 내어줍니다. 5만의 군사와 함께 유비는 도망치듯 조조로부터 멀어집니다. 새장에 갇혔던 독수리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일선 부대 시찰을 마치고 돌아오던 정욱이 달아나듯 이동하는 유비를 보고 조조에게 유비를 돌아오게 합니다. 그러나 새장을 나온 새가 다시 새장에 들어갈 리는 없었습니다.
졸장부 행세로 조조를 속인 유비의 계략에서 ‘도광양회(韜光養晦)’가 비롯되었습니다.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입니다. ‘도광(韜光)’은 빛을 감추는 것, 재능이나 학식을 남에게 알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양회(養晦)’는 그믐밤 같은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난득호도(難得糊塗)’도 ‘도광양회(韜光養晦)’와 비슷한 의미로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말입니다. ‘난득호도(難得糊塗)’는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건달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면서까지 속내를 숨기며 목숨을 부지했던 왕족 출신의 한신(韓信)은 한나라 대장군에 이어 왕의 지위에까지 올랐지만 황제가 된 유방에게는 속내를 숨기지 못하고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어쩌고저쩌고 잘난체하다가 명을 재촉하게 되었습니다. 난세일수록 ‘득호도(得糊塗)’의 실천 여부가 자신의 생명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존재이기에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득호도(得糊塗)’를 실천하지 못해 아깝게 목숨을 잃은 경우가 또 있습니다.
27세 나이에 병조판서를 지낸 ‘남이(南怡) 장군’은 주위의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았던 인물입니다. 세조의 총애를 받던 남이 장군은 세조가 죽자 세조의 공신이었던 한명회, 신숙주 등의 견제를 받게 됩니다. 이들은 남이가 병조판서 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비판합니다. 예종은 남이를 병조판서에서 해임합니다. 평소 남이에게 시기심을 느끼고 있던 유자광이 병조에서 밀려난 남이를 역모로 모함하게 되고 결국 27세의 젊은 나이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남이 장군의 기개가 담긴 이런 한시를 남겼습니다.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닳게 하고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도다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사나이 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컫겠는가
남이가 진짜 역모를 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라는 한시 구절이 역모의 근거가 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나라를 평정한다는 의미를 역모의 근거로 본 것이죠. 그러나 이것이 역모의 근거라면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인 『대학(大學)』의 핵심 내용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거론하는 사람 모두 역모로 다스려야 될 일이 아니겠는지요.
27세에 병조판서가 되기까지 남이 장군이 자신의 재능을 뽐내지 않고 조금만 더 숨기고 생활했다면 자신과 국가에 어떤 역할을 더 했을지 모릅니다.
김관호 시인은 산에 사는 것이 좋다는 뜻의 ‘거산호2’라는 시에서 산을 ‘보옥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이라고 규정합니다. 시인은 산이야말로 ‘난득호도(難得糊塗)’을 알고 득호도(得糊塗)를 실천하는 존재임을 진작에 알아보았나 봅니다. 최승호 시인의 ‘앙상함’이라는 시도 ‘난득호도(難得糊塗)’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1
겨울나무들이 동안거(冬安居)를 한다.
열매들을 다 놓아버린
알몸에 서리 내린다.
2
앙상한 사람들 중에서도
참하게 앙상한 사람은
암자가 불타버린
스님.
3
재 한 점,
재 한 점으로 지평선에 서 있는 사람,
자코메티 씨에게 인사시키고 싶은데
자코메티 씨는 앙상한 조각들을 남기고
벌써 입적했다.
4
앙상함도 존재의 한 방식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보석,
알몸,
앙상함의 극치에서 태어나는
보석
알몸
성자
-최승호, ‘앙상함’
화자는 겨울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나뭇잎도 없고 열매도 없이 앙상합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서리까지 내려앉았습니다. 이 겨울나무에서 불타버린 암자에서 동안거를 하는 스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동안거(冬安居)는 겨울에 승려들이 바깥 출입을 삼가고 수행에 힘쓰는 일을 말합니다. 겨울나무의 모습이 마치 수행에 힘쓰는 승려의 모습을 닮았다고 본 겁니다. 앙상한 겨울나무는 동안거를 하는 스님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스위스 조각가인 자코메티의 조각품을 연상케도 합니다. 조각품의 외형은 앙상하지만 내면에는 무엇으로 꽉 차 있습니다. 겨울나무도 겉은 앙상하지만 속은 무엇으로 꽉 차 있습니다.
내면에 성자(聖者)라는 보석을 숨긴 채 수행을 거듭하는 승려와, 내면에 새봄의 생명체라는 보석을 숨긴 채 앙상함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와, 내면에 자신의 내적 가치라는 보석을 숨긴 채 앙상한 조각품으로 서 있는 자코메티 씨는 동격입니다. 이들은 ‘난득호도(難得糊塗)’를 알고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하는 존재들이지요.
1980년대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 속에서 내실을 다집니다. 2000년대에 와서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폐기하고 ‘대국굴기(大國堀起)’의 기치를 내 걸었습니다. ‘굴기(堀起)’란 ‘우뚝 일어선다’는 의미입니다.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중국은 덩치가 커진 내면의 모습을 숨길 수도 없거니와 숨길 필요도 없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 자신감이 대국굴기(大國堀起)라는 슬로건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슬로건은 미국의 견제를 다방면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기 PR의 시대입니다.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낼 것인지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사람은 남의 어리숙함을 보기를 좋아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느 장학사가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참관했습니다. 교실 뒤편에 놓여 있는 지구의(地球儀)가 조금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고, 학생에게 ‘지구의가 왜 삐딱하냐’고 묻습니다. 학생은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장학사가 담임 교사에게 묻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처음 사올 때부터 그랬다’고 대답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교장선생님이 ‘요즈음 중국산 제대로 된 게 있나요?’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남의 무지를 즐기기 위해 만든 에피소드가 아닌가 합니다.
다른 사람의 무지를 좋아하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을진대 다른 사람 앞에서 총명함을 대놓고 뽐낸다면 남들의 시기 질투심을 유발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항상 이기는 것보다 질 때 질 줄 아는 것도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남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총명함은 칼집 속에 잠시나마 넣어두고, 질 때 질 줄 아는 지혜와 사과할 때 사과할 줄 아는 겸손함을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도 삶의 한 방법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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