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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Sep 11. 2023

허공을 버팀목으로 삼아

이덕규, <허공>

            허공

                        -이덕규     


    자라면서 기댈 곳이

    허공밖에 없는 나무들은

    믿는 구석이 오직 허공뿐인 나무들은

    어느 한쪽으로 가만히 기운 나무들은

    끝내 기운 쪽으로

    쿵, 쓰러지고야 마는 나무들은

    기억한다 일생

    기대 살던 당신의 그 든든한 어깨를

    당신이 떠날까봐,

    조바심으로 오그라들던 그 뭉툭한 발가락을          


  나무가 마음 놓고 자랄 수 있는 것은 허공을 허공으로 생각하지 않고 허공을 자신을 지탱하게 해 주는 버팀목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허공을 텅빈 공간으로 생각했다면 수십 미터 높이까지 자랄 수 없었겠지요. 나무가 허공을 허공으로 생각하는 순간 나무는 기댈 곳이 없다는 조바심으로 뿌리들이 오그라들어 마침내 쿵 쓰러지고 맙니다.

  허공을 버팀목으로 인식하는 그 믿음이, 세찬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그 믿음이 나무를 허공에도 기댈 수 있는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연약한 풀잎도, 키만 멀쑥한 갈대도 허공에 기대고 살고 있습니다. 한밤에도 나무의 곁에서 나무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새들도 별들도 둥근 달도 허공이라는 든든한 어깨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구도 허공을 버팀목으로 삼아 비스듬히, 편안하게 허공에 기대어 있습니다. 항상 보는 것이지만 새로운 발견은 늘 시인의 몫입니다.  

   

  내가 여기에 서 있기까지는 허공이라는 견고한 어깨에 기댈 수 있게 해준 수많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생각해 봅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 직장 동료들, 동호회 활동을 하는 동호인들,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리저리 얽혀 있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모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면서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쿵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허공에 견고한 버팀목을 만들어준 수많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나는 또 누구의 허공 속 어깨가 되었는지를 돌아보고 누구의 허공 속 어깨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이 좋은 시를 읽고서……. [사진출처 Unsplash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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