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나약함은 구성원에게도 불운이지만 리더 본인에게도 비극이다.
(본 글은 드라마를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것입니다. 실제 역사와 다른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 역사물에 꽂혀 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 인물은 경외와 동경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게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차르>는 역사적 인물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삶의 슬픔을 그린 역사 다큐 드라마다.
줄거리(스포 주의)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는 독일인 알렉산드라와 연애했고 결혼식을 눈앞에 두고 있으나 갑작스레 황제인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황제 자리에 오르고 장례식과 결혼식을 동시에 진행하게 된다. 사람들은 독일인 황후가 불운을 가져올 것이라고 수군대지만, 니콜라이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즉위식 행사에서 통제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압사 등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노동자들의 시위로 니콜라이 2세는 홍역을 겪는다. 그들과 대화했어야 하지만 니콜라이 2세는 듣지 않는다. 오히려 니콜라이는 후계자가 걱정이다. 아내 알렉산드라는 연거푸 4명의 딸을 낳았다. 드디어 마지막에 후계자인 알렉세이를 낳는 데 성공하지만 알렉세이는 선천적으로 혈우병(피가 제대로 응고되지 않는 병)을 앓아 목숨이 위태로워졌다. 아들을 치료하고자 라스푸틴을 궁 안에 들이게 되고 권력욕이 강하고 지나치게 방탕했던 라스푸틴을 국민들과 대신들, 황실 가족들은 싫어하고 경계했으나 황후만큼은 자신의 아들을 치료해준다고 믿고 계속 곁에 두었고 라스푸틴은 권력을 잡는다.
1차 세계 대전 참전 후의 연이은 패배와 열악해진 국민들의 생활환경, 게다가 라스푸틴에 대한 분노는 황실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고 결국 니콜라이 2세는 황제 자리를 내놓고 퇴위한다. 외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지만 니콜라이는 그러지 않았고 결국 연금되다가 니콜라이 2세의 황실 가족은 모두 어느 지하실에서 모두 총살된다.
참 씁쓸하고 무언가 응어리진 듯한 느낌을 주게 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든 가장 강력한 느낌을 단 한마디로 하면,
"나약한 군주는 국민들에게도 불운이지만, 군주 본인에게도 비극이다"
라는 점이다. 내가 드라마에서 니콜라이 2세에게 받은 인상은 약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왜 그렇게 느꼈냐면 나랑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2세 자체의 성품이 비인간적이거나 잔인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드라마의 모습으로만 볼 때 아내를 사랑하는 좋은 남편, 어머니를 존중하는 괜찮은 아들, 딸과 아들에게 사랑을 다 한 좋은 아버지였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하다. 다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변혁의 시기, 러시아 황제라는 자리에 앉기엔 그는 너무 약한 사람이었다.
인간에겐 살면서 몇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니콜라이 2세에게도 실제로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황제로서의 책임을 다할 기회가, 황제로서 잘못을 책임지고 수습할 기회가 있었다. 즉위식 행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을 때 그들을 찾아가 위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니콜라이 2세는 외교적 관계를 우려해 대사관 행사에 참석했다. 니콜라이 2세가 국민들의 죽음에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외교적 환심을 잃을까 두려워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황제 스스로 정치적 권력을 나누고 민주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로마노프 황실의 권위를 자기 대에서 내려놓기를 두려워했고 결국 위기에 몰리고 나서야 권력을 내놓았다. 또, 국민들이 아직 차르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 차르와 대화하겠다고 행진했을 때, 자신의 권위가 무너질까 두려워, 주변 사람들에게 위엄을 잃을까 두려워 그들을 무력으로 해산했고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 잃어버렸다. 1차 대전 중 국내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니콜라이는 차르의 자존심을 세운다는 이유로 전장에 나갔고 그 사이에 아내 알렉산드라와 라스푸틴은 국민들의 황실에 대한 적개심만 키워놓았다. 결국 니콜라이 2세는 황제에서 물러났고 외국으로 탈출할 수 있던 마지막 기회마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국내에 남았다가 온 가족이 끔찍하게 목숨을 잃는 비극을 맞게 된다.
고종과 각별하게 편지도 주고받았다는데 그런 점에서 둘은 닮은 점이 많다. 저물어 가는 왕조의 마지막 끈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마지막 왕들.(고종은 마지막은 아니지만) 둘 다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기 두려워했던 왕들이었다.
참으로 상황 판단도 못 하고 책임도 못 질 상황을 만든 무능한 군주가 아닐 수 없다. 매번 하는 선택이 악수가 되었다. 자신이 가진 권위라는 허상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가족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특히 니콜라이는 강력했던 선왕(알렉산드르 3세, 키 190의 힘센 거구에다 강한 전제주의 황제였다.) 보다 약한 군주가 될 것 같은 두려움에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무능한 군주고 비판받아야 할 군주임에도 인간적으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황후 알렉산드라도 비슷하다. 드라마를 보면 황후 알렉산드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기가 어렵다. 라스푸틴에게 현혹되어 황제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황실의 권위를 내세워 황제를 감정적으로 동요시키기 때문이다. 보는 내내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핵심 인물 중에 한 명이다. 황후로선 최악이었지만, 인간적으로 돌아보았을 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느 어머니가 치료하지 못하는 자기 자식(혈우병은 지금도 완치가 불가능하다.)을 살릴 수 있는 희망을 포기하겠는가. 설령 그 희망을 악마가 준 것일지언정 그 악마와 손을 잡지 않겠다고 할 어머니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자식이 황태자였고 그 어머니가 황후였다는 사실이 러시아 국민에게나, 자기 자신에게나 불운한 일이었을 뿐이다. 적어도 살아있던 시절에는 풍족했을 테니, 국민들보단 덜 불운했을지 모르지만.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아까 말했듯이 나도 비슷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기는 참 어렵지만 나를 돌아보건대 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누군가한테 미움받기 두려워해서 거절도 잘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의 신망을 잃기가 두렵다. 양쪽의 신망을 걸고 한 가지의 선택을 해야 할 때 나는 둘 다 잃기 싫어 망설일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조금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난 러시아 황제로 태어나지 않게 해 준 운명에 감사를 느낀다. 마지막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가 가족들끼리 단체로 총살당하는 장면에서 총을 맞는 니콜라이의 표정,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그의 딸들, 할 말을 잃어버린 아들 알렉세이의 모습은 황제로 태어나 한 가족에 들이닥친 불운과 비극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그 장면에선 보는 사람도, 죽을 걸 알고 보는 나조차도 굳어서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만약 니콜라이가 지금 시대에 나와 같은 환경에 태어났다면, 지금 시대에 알렉산드라를 만났다면 그들은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겠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자기 일을 찾아가기도 하고, 가족을 꾸리기도 하는 모습을 노년에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때론 가족들과 투닥거리기도 하면서, 같이 여행도 가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설령 니콜라이가 자기 가족만 생각하더라도 비록 주변에서 욕을 조금 들어먹을지언정 가족을 파멸로 이끌게 될 선택은 하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아니 적어도 가족들끼리 지하실에서 집단 총살당하는 일을 겪진 않았을 거다.
아직도 수많은 리더들은 니콜라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대통령들이 한 수많은 선택들이 국민들을 혹은 대통령 본인을 비극으로 이끌었다. 대통령의 대부분이 제 명을 못 살거나, 국외로 추방되거나, 감옥에 갔고 전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대통령만 그러겠나. 수많은 기업의 리더들이, 집단의 리더들이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환경에서 고민하며 누군가를 버리고 누군가를 택하는 선택을 해오면서 미움을 받았을 거다. 그러기에 리더는 참 고독한 자리다. 그 자리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서의 공과를 떠나 한 인간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동경을 느낀다. 그리고 나를 황제에 앉히지 않은 운명에게 다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