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이 약이었던 시절

설탕의 모든 것 시리즈 A: 「알쓸설탕」(알아두면 쓸모 있는 설탕 지식)

by 조종주

설탕이 약이었던 시절


지금 우리는 설탕을 "줄여야 할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불과 수백 년 전만 해도 설탕은 "먹어야 할 것", 그것도 의사가 처방하는 약이었다.


이야기는 고대 인도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병사들이 인도 원정 중에 낯선 광경을 목격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거기서 소금 같이 생긴 달콤한 분말을 만들어내는 인도인들. 병사들은 이 신기한 물질을 "벌 없이도 꿀을 만드는 식물"에서 나온 것이라고 기록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설탕」 항목). 이 분말이 그리스로 건너가면서 'sakcharon'이라 불렸고, 처음에는 향신료나 약재로 취급되었다.

로마인과 그리스인은 인도에서 설탕을 약재로 수입했다. 이 시기 설탕은 식품이 아니라 의약품이었다. 소화를 돕고, 기침을 가라앉히며, 다른 약의 쓴맛을 가려주는 교미제(矯味劑)로 쓰였다.


설탕의 약재 지위가 본격적으로 확립된 것은 이슬람 세계에서였다. 7세기 이후 아랍 상인들이 사탕수수 재배와 제당 기술을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시키면서, 설탕은 아랍 의학의 핵심 재료가 되었다. 학술지 Speculum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아랍 의학서들은 설탕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약제(sugar-based potions)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지식은 비잔틴 제국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설탕으로 만든 과자는 모든 병을 낫게 하는 약"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유럽이 설탕을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11세기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다. 십자군 병사들은 성지에서 "달콤한 소금"을 운반하던 대상(隊商)과 만났고, 전쟁이 끝난 뒤 이 물건을 유럽으로 가져왔다. 12세기 후반에 쓰인 《십자군 연대기》의 저자 티레의 윌리엄은 설탕을 "인류의 사용과 건강에 매우 필수적인 가장 귀중한 생산품"이라고 기록했다(위키백과, 「설탕의 역사」).


중세 유럽에서 설탕은 약국에서 팔렸다. 한약의 감초처럼 약의 맛을 좋게 하는 교미제로, 그리고 그 자체로 소화제·진정제·강장제로 처방되었다. 당시 유럽 의학의 기반이었던 4체액설에 따르면, 설탕은 "따뜻하고 습한" 성질을 가져 체액의 균형을 잡아준다고 믿어졌다. 아예 향신료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실제로 중세 유럽의 가격표를 보면, 설탕은 후추·계피·정향과 나란히 "고급 향신료" 항목에 올라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설탕과 꿀을 상처 소독용으로도 사용했다.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가 없던 시대에, 설탕의 높은 삼투압이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일부 전통 의학에서 꿀을 상처 치료에 활용하는 것은 이 원리에 기반한다.


"이전에는 약으로나 쓰던 것이 이제는 음식이 됐다." 16세기 유럽에서 나온 이 말은 설탕의 지위가 약에서 식품으로 전환되는 역사적 순간을 포착한 표현이다. 설탕이 싸지고 대중화되면서 약국이 아닌 식탁 위로 옮겨간 것이다.


지금은 설탕을 줄이라고 하지만,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설탕은 "귀하고, 건강에 좋고, 비싼 약"이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떠먹는 것이,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왕과 귀족만 누릴 수 있는 치료제였다는 사실. 설탕의 역사를 알면, 오늘 커피에 넣는 설탕 한 스푼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참고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설탕」 항목 (한국학중앙연구원)

위키백과, 「설탕의 역사」 (티레의 윌리엄 인용 부분)

Petros Bouras-Vallianatos, "Cross-cultural Transfer of Medical Knowledge in the Medieval Mediterranean: The Introduction and Dissemination of Sugar-based Potions from the Islamic World to Byzantium," Speculum, Vol.96, No.4, 2021


다음 편 ― 「잼은 어떻게 겨울을 견디게 했나」: 설탕이 식품을 오래 보존하는 비밀, 알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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