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모든 것 시리즈 A: 「알쓸설탕」(알아두면 쓸모 있는 설탕 지식)
설탕의 모든 것 시리즈 알쓸설탕 A-9
1589년 새해, 엘리자베스 1세에게 특별한 선물이 도착했다. 설탕으로 만든 조각상이었다. 영국의 수호성인 세인트 조지를 본뜬 이 설탕 조각은,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 직후의 영국 왕실에 바치는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했다(CEMS KCL Blog, 2022).
이런 설탕 조각을 '서틀티(subtlety)'라고 불렀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왕실 연회에서 코스 사이에 등장하는 먹을 수 있는 예술 작품이었다. 동물, 성, 범선, 영웅상 — 형태는 끝도 없었다. 정제된 설탕에 아몬드와 물을 섞어 찰흙처럼 반죽한 뒤 성형하고 구워 만들었다.
서틀티의 기원은 11세기 중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랍의 설탕 조각 장인을 '쉬케르 나카살리(sukker nakkasarli)'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술탄과 칼리프의 연회를 위해 정교한 식용 장식물을 만들었다. 이 기술이 13세기 프랑스 궁정에 전해졌고, 이어 영국, 이탈리아, 독일로 퍼져 나갔다(Elizabeth Abbott, Sugar: A Bittersweet History).
서틀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권력의 상징이었다. 설탕이 금보다 비싼 시대에, 그 귀한 물질을 예술 작품으로 빚어 먹어치운다는 것 자체가 부와 권력의 과시였다. 헨리 6세의 대관식 연회에서는 새 왕의 권위를 확인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설탕 조각이 등장했고, 1526년 헨리 8세는 그리니치 궁에서 일곱 명의 요리사를 동원해 성, 감옥, 백조가 있는 장원, 체스판까지 설탕으로 재현했다. 1503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새 부총장이 대학의 여덟 탑을 모두 설탕으로 만들도록 주문하기도 했다(Renaissance English History Podcast, Episode 126).
그런데 이 화려함에는 대가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1세 본인이 그 증거다. 설탕을 지나치게 사랑한 여왕의 치아는 검게 썩어갔다. 1598년 영국을 방문한 독일인 파울 헨츠너는 여왕의 인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얼굴은 길고 희며 주름이 있고, 눈은 작으나 검고 쾌활하며, 코는 약간 매부리이고, 이가 검다. 영국인들이 설탕을 과다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점이다."(Historic UK, "Tudor Dentistry"). 이 시대 영국에서는 검은 이가 부의 상징이 되어, 일부러 치아를 검게 만드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2014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현대미술가 카라 워커는 옛 도미노 설탕 공장에 높이 10미터짜리 설탕 스핑크스를 설치했다. 워커는 인터뷰에서 시드니 민츠의 Sweetness and Power를 읽다가 중세 연회의 서틀티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NPR, 2015). 워커의 스핑크스는 설탕이 만든 아름다움과 그 이면의 노예 노동을 동시에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중세의 서틀티에서 현대의 설탕 스핑크스까지. 설탕은 단지 먹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권력을 과시하고, 메시지를 전하고, 때로는 역사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게 만드는 매체. 달콤함에도 정치가 있었다.
CEMS KCL Blog, "Subtlety," 2022 (엘리자베스 1세 1589년 설탕 선물)
Elizabeth Abbott, Sugar: A Bittersweet History (서틀티의 중동 기원)
Renaissance English History Podcast, Episode 126: "Sugar in Tudor England" (헨리 8세, 옥스퍼드 사례)
Historic UK, "Tudor Dentistry," 2025 (파울 헨츠너의 엘리자베스 1세 묘사)
NPR, "Let Them Eat Sugar Sculpture," 2015 (카라 워커 인터뷰)
다음 편 ― 「나폴레옹이 설탕 전쟁을 벌인 이유」: 대륙봉쇄령이 만들어낸 뜻밖의 발명, 사탕무 설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