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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상 Apr 13. 2021

클래식 계의 역주행 스타

1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역주행의 주인공

역주행.


진주에서 순천으로 향하던 고속도로에서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열심히 흔들며 역주행하던 차량을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그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리 반가운 단어는 아닐 수밖에 없는데.


저 말이 더없이 반갑게도 다가오는 사람은 아마도 야심하게 발표한 앨범이 원하는 만큼 성공적이지만 못하고 있거나 그랬었던 가요계 종사자들 일 것이다. 잊힐 줄 알았던 나의 작품이 갑자기 인기를 등에 업고 돌아온다면..이라는 상상 만으로도 벅차오를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요계에서 처음으로 역주행이라는 신기한 현상을 목격한 것은 EXID의 ‘위, 아래’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앨범을 발매한 지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반응이 미미했었는데, 어느 날 그룹의 멤버인 하니 양의 직캠(직접 찍은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면서 그 곡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영상 하나가 퍼진 이후에, 각종 차트를 섭렵하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물론이며 많은 방송들에 출연하는 것을 보며 SNS 및 온라인 활동이 많아진 현대시대에만 있을 수 있는 새로운 문화현상을 접한다는 신기함에 흥분했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의 직캠은 다음과 같다.



https://youtu.be/cmKuGxb23z0

 



이후에도 여러 잊혀졌던, 혹은 예전에 발표되었지만 그리 많은 인기를 얻지 못했던 곡들이 종종 역주행을 하는 모습이 목격되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4월 현재 역주행이란 말을 다시 대유행시키며 저당시의 EXID 못지않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Rollin의 ‘브레이브 걸스’이다. 그들 덕에 역주행이라는 말은 다시금 이슈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https://youtu.be/3cZrxpK2EAQ



단순히 생각해서 잊혀질 뻔했던 보석 같은 노래를 찾아낸 기쁨, 혹은 흥미로운 배경을 가진 매력적인 가수를 찾아내었다는 즐거움에 생긴 사회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번 미끄러지면 부활전은 없다는 부담감에 내몰려서 사는 대한민국의 사람들에게 상황을 뒤집고 일어선 이들의 행보가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비슷한 역주행 사례를 찾아보자.  SNS는 물론, 인터넷도 컴퓨터도 없던 1800년대의 유럽에도 거센 역주행 바람이 불었고 이는 아직도 매우 강력하게 음악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로 J. S. Bach의 음악이 그러하다.


복원된 바흐의 실제 얼굴


이 사진에 보이는 모습이 Caroline Wilkinson 이라는 예술가가 그의 초상화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가발을 쓰지 않은 현실적인 바흐의 3D 이미지이다. 직접 본다면 좀 무서울 것 같은 이 거구의 남자가 그렇게 아름다운 곡들을 많이 남긴 유명한 바흐이다.


180cm의 키에 맥주를 좋아하던 다혈질 독일남자 바흐.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훌륭한 오르가니스트로 알려져 있고 24명의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프랑스 조곡, 영국 조곡, 이탈리안 콘체르토 등을 작곡한 바흐는 사실 독일을 떠나 여행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살아생전에 아주 큰 유명세를 얻지도 못한 성실한 교회 음악가였을 뿐이었고 죽음과 동시에 일반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기 시작했다. 바흐가 죽음 직전까지 27년이나 근무한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음악감독) 자리는 텔레만(Telemann), 그라우프너(Graupner) 등 당시 바흐보다 유명했던 음악가들이 직을 고사한 덕에 3순위였던 바흐에게 주어진 음악감독 자리였다. 오늘날은 그의 명성이 엄청나지만 살아생전에는 그렇지 못했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에 가보지 못한 바흐가 작곡한 프랑스 조곡을 한번 들어보자. 프랑스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겠지만, 소위 오리엔탈 음악이라고 불리는 곡들이 동양의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진짜 동양인인 우리 귀에는 전혀 우리 것과는 다른 오묘한 음악으로 들리듯이 프랑스 현지인들에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엄청나게 감미로운 명곡임에는 변함이 없다.


https://youtu.be/Q4t1TVxL9sg



성실하고 가족적이었던 유태인 교회음악가 바흐는 1750년 7월 28일 사망하게 된다. 바흐의 가문은 이미 독일에서 유명한 음악인 가문이었고 그의 아들들 중 4명이나 성공한 음악가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바흐라는 이름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음악은 얼마 되지 않는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나 알려져 있었고 그렇게 세상에 다시 나올 일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역주행의 기운은 예상치 못하게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었고 분위기는 독일의 음악학자 포르켈에 의해 바뀌게 된다. 바흐 음악의 엄청난 추종자였던 포르켈은 바흐 사후 50여 년이 지난 후인 1802년에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이라는 연구서를 발표함으로 바흐의 음악에 대한 유럽 음악인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성공했다.


음악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귀에 들리고 마음에 꽂혀야 진정한 재평가와 역주행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을 해낸 사람은 한여름밤의 꿈, 무언가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인 펠릭스 멘델스존이었다.


역시 유태인이고 부유한 은행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요즘으로 말하자면 금수저였던 멘델스존이 바흐의 음악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주변 모든 상황들이 완벽히 맞아떨어져 펼쳐졌다.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Harpsichord)를 사랑해 바흐의 첫째 아들*에게 레슨을 받으며 둘째 아들**에게 곡을 의뢰하던 이모할머니, 그 이모할머니가 속해있던 합창단 지휘자의 부탁을 받고 바흐의 악보 원본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구입해 모으던 아버지, 그리고 그 유명한 마태 수난곡 원본을 손자에게 선물로 준 외할머니 등. 이 엄청난 선물은 10대의 멘델스존의 음악적 상상력을 엄청나게 자극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인생과 함께 후대의 음악 지형은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연주시간이 3시간에 이르는 대곡인 마태 수난곡은 바흐가 1729년에 초연한 곡으로 정확히 100년 후인 1829년에 멘델스존에 의해서 다시 연주되고 이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바흐 음악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게 된다.


마태 수난곡은 굉장히 아름다운 곡이지만 또한 엄청나게 긴 곡이므로 오늘 바흐의 음악은 또 다른 바흐의 명곡으로 대신하기로 하겠다. 바흐 바이올린 파르티타 모음곡 중 마지막 곡인 샤콘느인데, 이 곡은 부조니의 피아노 편곡 작품으로도 많이 알려진 곡이다. 브람스도 왼손을 위한 피아노 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https://youtu.be/ngjEVKxQCWs




이렇게 바흐는 100년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역주행에 성공을 했고 (비록 사후에 일어난 일이라 금전적 이득은 없었을 것이지만) 이제와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리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주행 아니겠는가.







* Wilhelm Friedemann Bach, 바흐의 큰아들이자 당시 유명한 오르가니스트

* Carp Philipp Emanuel Bach, 바흐의 둘째 아들이자 유명한 작곡가 겸 쳄발로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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