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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상 Apr 13. 2021

얌전한 악기 피아노

불타는 피아노

목소리 좋고 수려하게 생긴 가수가 노래하며 피아노를 연주하다 말고 피아노 위에 올라앉거나 아예 올라섰다가 폴짝 뛰어내리는 등 일반적 사용법과는 다르게 악기를 다루기 시작한다. 그의 오랜 음악적 동료로 알려진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공연에 함께하기 위해 등장해서는 날름 피아노 위에 걸터앉는다.


도대체 저 남자는 왜 피아노 위에 올라서는 악기가 상할 수도 있는 과격한 행동을 공연 중에 하는 것일까. 그 가수는 피아노 연주 실력으로 잘 알려진 빌리 조엘(Billy Joel)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의 가장 널리 사랑받는 곡 중 하나는 ‘Piano Man’이다. 여기서는 그 곡이 아닌 그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다른 곡을 들어보겠다.


https://youtu.be/iM4LzEcaTK0



여담이지만, 이 영상이 너무 멋져서 담배를 피아노 앞에서 꼭 한 번은 피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담배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피아노. 1701년에 이탈리아 사람 크리스토포리(Cristofori)가 발명한 악기이다. 이후 볼륨과 울림, 페달 등 모든 부분에서 많은 발전을 거치며 현재 가장 많이 연주되는 악기 중 하나가 되어있다. 다루기 쉽지는 않으나 누구나 음악을 해보고 싶어 지면 한 번쯤은 배워보게 되는 이 악기를 필자도 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피아노라는 악기는 혼자서도 훌륭한 음악을 많이 만들 수 있는 독립적인 악기이지만, 여타 악기들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은 것 같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피아노가 함께 하는 피아노 콰르텟(Piano Quartet) 공연을 보면은 피아노는 무대 가장 뒤쪽에 앉아 가장 많은 일을 하며 고생하지만 정작 주목은 잘 받지 못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중음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시대를 호령했던 수많은 록 그룹들을 생각해 보면 보컬과 기타리스트가 인기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드러머와 베이시스트도 적당히 마니아층이 형성되나 건반주자가 그룹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거나 가장 큰 인기를 끄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피아니스트에게는 심오한, 자기 절제적이고 연습벌레인, 매우 감성적이고 섬세한, 과 같은 이미지들이 많이 덧씌워진다. 나는 여기에 빌리 조엘이 피아노 위에서 뛰어다니는 이유가 있지 않나 추측한다. 피아노를 치는 가수. 얌전하고 섬세하겠지 라는 잘못된 기대를 쇼킹한 퍼포먼스로 완전히 부숴버리고 나면 선입견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가슴속에 가득 차 있는 불꽃같은 노래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https://youtu.be/eFTLKWw542g




여기 또 한 명의 ‘이미지’에 갇혀 있는 음악가가 있다. 그의 이미지란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별명에서 나오는데, 모두들 그의 음악을 감미롭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음악이 듣고 싶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른다.


프레데릭 쇼팽.


평생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바이올린만을 작곡한 파가니니의 공연을 보고 나의 길은 피아노뿐이라고 생각했던 이 열정 가득한 음악가는 어찌하여 갑자기 피아노의 시인이 되었을까.


필자는 미국에서 약 11년간 머물며 음악공부와 연주활동을 병행하며 미국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들이 흥미 있어하는 주제 중 하나는 콩글리쉬였다. 즉,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영어 및 표현들에 대해 물어보면 의외로 그들은 전혀 모르는 표현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전자제품 등의 구입 후 수리 등을 보장해 주는 애프터 서비스라는 말, 남녀 간의 살갗이 닿는 행위인 스킨십 등은 미국 사람들이 아예 모른다.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지만 케네디 대통령이 야구에서 점수가 8:7이 나왔을 때 가장 재미있다고 했기 때문에 저 점수를 케네디 스코어라고 부른다는 것은 내가 만나본 그 어떤 미국인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또 하나,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표현 또한 위의 예들처럼 전무에 가깝지는 않지만,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알더라도 쓰기 싫어하는 표현 중 하나였다. 클래식 애호가들이, 쇼팽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저 애칭을 피할까.


쇼팽의 음악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의 불꽃, 그의 에너지를 저 두 단어들은 전혀 나타내 주고 있지 않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https://youtu.be/QIyW-EU8M2Y



쇼팽의 훌륭한 작품들 중에 녹턴이나 왈츠, 마주르카 등은 감미롭고 그리 무겁지 않은 곡들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에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의 작품세계 중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며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다른 음악들이 쓰여졌는지 알게 된다.


쇼팽은 잘 생긴 미남에 멋쟁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남아있는 그의 초상화들도 다 그런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이 초상화를 좋아한다.


Eugene Delacroix(1798~1863) Portrait of Frederic Chopin

분명 미남형이지만 어딘지 모를 분노, 짜증, 거기에 더해서 어두움까지 묻어있는 이 초상화가 그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https://youtu.be/LhZGYs1z2mQ



Good Morning Vietnam이라는 영화에서 보면 전쟁의 참혹한 참상들을 배경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은 Louis Armstrong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흐른다.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전쟁의 잔혹함은 더 슬프게 다가온다. 쇼팽의 감미로운 음악들도 어느 정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고단했던 인생에, 콜레라로 파리가 난리가 나고, 고향의 정치적 상황이나 본인의 건강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야망이 있고 열정이 있던 젊은 작곡가의 분노와 천재성이 모두 어우러져 상처 난 나무에서 진액이 나와 스스로를 보호하듯 쇼팽은 감미로운 음악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 때문인지 쇼팽의 감미로움이 나에게는 처절하게 슬픈 음악들로 다가온다.



https://youtu.be/7Nscw9XZhAU



우리나라의 피아노 오디션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과제곡이 쇼팽의 ‘연습곡’이다. 쇼팽 이전의 연습곡들은 기술의 습득이라는 목표에만 집중하여 쉽게 말해 ‘지겨움을 참고 오랜 시간 돌려야 하는’ 곡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명석한 작곡가는 연습곡에 음악을 담아 버린다. 그의 연습곡 작품번호 10과 24에 있는 총 24곡을 듣고 있노라면 주어진 테크닉의 지향점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아름답다. 이런 이유로 다른 많은 작곡가들도 연습곡들을 남겼지만 쇼팽의 연습곡이 현재까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연습곡이 좀 많다 싶고 그의 피아니즘의 집약체를 짧은 시간 안에 느끼고 싶다면 그의 피아노 소나타 2번과 3번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이 곡들을 제대로 감상하고 나면, 유약한 작곡가라는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리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쇼팽을 이렇게 정의한다. ‘피아노 소리를 가장 잘 이해한 작곡가’


그가 고맙게도 피아노라는 도구의 무한한 가능성의 여러 면을 세상에 남겨 주었으니, 감사히 그의 다양한 음악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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