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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상 Apr 23. 2021

Only the Good Die Young

죽음을 너무 일찍 맞이한 음악가들

“신께서 빨리 그 사람 음악을 곁에 두고 들으시려고 일찍 데려가셨나 봐요.”


요절(夭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함을 이른다. 죽음이란 것은 누구나 맞이해야 하고 거스를 수 없는 두려운 것이고,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을 느끼게 한다. 그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겠냐만은, 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 재능 있는 음악가의 너무 이른 죽음은 엄청난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1959년 2월 3일, 세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폭파되고, 파일럿을 비롯한 4명은 안타깝게도 즉사하게 된다. 그때 사망한 승객 중 한 명이 17세의 Ritchie Valens인데 그 유명한 ‘라 밤바’를 부른 가수이다. 훗날 돈 맥클린은 ‘아메리칸 파이’라는 곡에서 이 날을 “음악이 죽은 날(The Day The Music Died)”이라고 표현하기도 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너무나도 신나는 이 곡이 미래가 창창할 수 있었던 젊은 가수의 유작이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https://youtu.be/Jp6j5HJ-Cok




1987년 11월 1일에 또 한 명의 젊은 음악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어느 곡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명곡만으로 가득한 명반을 발표하고 같은 해에 안타깝게 고인이 된 작곡가이자 가수였던 당시 25세 유재하가 그 비극의 주인공이다. 1962년생이니 살아계시다면 2021년 올해 한국 나이로 60세일 테고, 아직까지도 왕성한 음악활동을 보여주고 계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타까운 영혼은 한남대교 북단 강변북로에서 슬프게도 사그라져 버린다.

그가 유일하게 남긴 음반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고급스러운 음악들로 채워져 듣는 귀가 고급스러워지는 느낌까지 드는 명반 중의 명반이다.



https://youtu.be/ttZ1Z2F9do4




슬프게도 클래식계에는 요절하는 경우가 흔했다. 우리가 익숙히 듣게 되는 이름들은 18, 19세기의 음악가들이 많은데, 아마도 당시의 의학은 지금과 같이 발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쇼팽이 39세에 사망했고, 모차르트는 35세까지밖에 살지를 못했다.


베토벤이 사망하고 1년 후인 1828년, 그를 존경하고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한 젊은 음악가가 세상을 떠난다. 그의 이름은 슈베르트, 사망 당시 그의 나이 31세였다. 생전 베토벤을 존경했던 고인을 위해 유족들은 그를 빈 중앙 묘지에 있는 베토벤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준다.


https://youtu.be/JpT1I_XMjfc



슈베르트와 베토벤은 불과 2km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슈베르트는 소심한 성격 탓에 베토벤을 찾아가지 못하다가, 단 한번 용기를 내어 베토벤의 집을 찾아갔으나 이미 너무 병이 악화되어 죽음을 목전에 둔 거장을 보고는 자괴감과 후회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뛰쳐나왔다고 한다. 이것이 그 두 명의 유일한 만남이고 베토벤의 사망 일주일 전이다.


이렇게 소심한 슈베르트였기에 생전에 연애를 한 번도 제대로 해 보지 못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곡들을 가져다가 팔 생각도 하지 못해서 친구들의 후원으로 힘들게 경제생활을 유지하다가 가난하게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가곡들과 교향곡, 피아노곡들 등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https://youtu.be/phB_iYGHTB0




또 한 명의 요절한 작곡가는 바흐의 작품들을 세상으로 끌어올렸던 멘델스존이다. 멘델스존은 1809년에 태어나서 1847년에 3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https://youtu.be/rIM5cWB2wmM



은행가로 큰 부를 축적한 아버지와 아마추어 음악인이자 문학가이기도 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멘델스존은 어려서 괴테에게 천재 음악가라고 치켜세움을 받았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괴테를 만날 수 있었던 가문인 것도 대단한데 그 유명한 괴테에게 극찬을 들을 정도라니 재능 또한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서 자식도 5명이나 두었다니 그야말로 부족한 것 없이 다 이룬 생이라고 불러도 과함이 없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로 인정을 받으면서 지휘도 잘했다고 한다. 그림도 잘 그리고 시도 썼으며 여러 언어까지 구사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그는, 준수한 외모에 사교성도 뛰어나 주변 사람들과 잘 지냈다고.... 이쯤 되면 인생은 불공평하다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인생에서 구김살이 거의 없었던 이 작곡가는 곡들에서도 그 느낌이 많이 묻어나는데, 밝은 에너지로 가득 찬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3악장을 들어보자.


https://youtu.be/81bH4bLlIIE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던 그의 삶은 길지 못했다. 가족들과 오래 함께 있어주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야만 하는 슬픔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을 것이다.


매번 새해가 밝을 때마다 아내와 마주 보고 앉아 나이를 헤아리며 이제 모차르트 넘었다, 멘델스존 넘었다, 쇼팽, 무소르그스키 등등을 거론하며 농을 나누던 기억이 난다. 길지 않은 삶에도 치열하게 음악 하며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겨준 시대의 거장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며 얇고 길게 가는 인생도 꽤 괜찮다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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