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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Apr 15. 2024

퍽퍽하고 삭막해...

마녀아줌마의 세상살기

'퍽퍽해 보여...'

얼마 전 만났던 후배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맞다, 퍽퍽하다못해 삭막하다. 언제 어디서 일이 들어올지 몰라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다음 주 수업준비를 하려면 매주 수십장의 번역문을 체크해야하며, 쥐꼬리만큼 밖에 벌어본 적이 없는 번역쟁이에 더 쥐꼬리만큼 버는 시간강사 생활이 이어지고, 원래 소심한 성격과 저질체력을 극복하기 위해 새벽운동을 다니고, 소화력이 약한데다 담석증이 겹쳐서 먹는 것도 항상 조심스러운 생활이 겹겹이 쌓인 결과였다. 


이제 그런 생활에서 벗어난지 일년이나 지났지만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뚜벅이로 여행을 가도 언제나 동선이나 버스 시간에 신경쓰게 되고, 당일이든 숙박이든 여행사 투어를 따라가도 여행상품 특성상 가능한 여러 곳을 찍듯이 방문하므로 시간이 촉박한데다 혹시라도 내가 늦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우려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먹는 걸 보면 더 퍽퍽해 보일 수도 있다.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은 대부분 뭔가가 잔뜩 첨가된 게 많아서 내 위장이 소화시키기에 너무 버겁다. 아프거나 피곤할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못시켜서 더 힘들므로 가능한 가볍게 먹는 게 훨씬 나은 데 이걸 이해해줄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히 퍽퍽해 보일 수 밖에! 설명하고 다니기도 힘들고 설명할수록 이상한 사람으로 찍혀서 먹는 자리는 가능한 피한다. 


공간이 주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까지 상당히 괜찮은 환경에서 살아왔으므로 배부른 소리라는 타박을 들을 수 있지만, 그래도 정말 원하는 공간에서 살아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 들어가서 내 방이 생겼지만 작은 창문에 박힌 창살이 답답했고, 이후에 옮겨간 큰 방 창문에도 엄청난 쇠창살이 달려 있었다. 진짜 답답했다. 호주 유학시절의 셰어했던 방도 좁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래 살아온 오피스텔은 더 작고 답답하다. 현재 내 마음은 당장 이사가!!!지만 내가 원하는 사항을 말하면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하며 저러다가 지치면 주저앉겠지라는 표정으로 팔짱만 낀 채 바라본다. 남들 보기엔 쉽고 편안한 삶도 들여다보면 퍽퍽하고 힘들 수 있다. 하. 하. 하. 


자, 이제부터 해결책을 찾아야지!

일단 여행은 조정이 가능하다. 여행사 투어 상품은 나 역시 가능한 여러 장소에 가보는 게 목적이므로 지금으로서는 그냥 따라가면 되고, 당일이든 숙박이든 혼자 갈 때는 동선을 짧게 잡고 좀 더 느긋하게 다니려고 하면 된다. 몇 년정도 지나서 노하우가 쌓이면 천천히 자유여행을 다닐 거 같다. 해결 가능! 


먹는 건 아직 해결 불가능이다. 위장의 움직임은 타고난 거고 자율신경계가 지배하는 거라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데다 신경쓰면 되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냅두는 게 상책이다. 솔직히 안먹는 거에 대해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없으니, 좀 더 많이 먹어 보려다가 나중에 끙끙 힘들어하지 말고 다른 이들과 함께 먹는 자리는 피해다녀야 해. 타고나길, 소화력도 식탐도 없다구욧! 


가장 곤란한 건 공간이 주는 퍽퍽함이다. 현재는 교퉁이나 편의시설은 편하고 단열도 잘 된 곳이지만 구조가 내게 맞지 않고 좁아서 마음이 쉬기 힘들며 그 넘의 채광과 공기가 너무 나빠서 숨쉬기가 힘들다. 이사가면 해결될 수도 있지만, 모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해야 하는 부담감이 짓누른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를 가려면 위치를 정하고 양쪽 부동산 비용을 포함한 이사 비용과 월세를 감안하여 발품을 팔아야하고, 그에 따른 수고를 온전히 나홀로 감당해야 한다. 이사를 가지 않으려면 가능한 아침에 사라졌다가 오후에 돌아와야 하는데, 만약 돌아다니면서 스케치라도 할 수 있으면 그나마 희망이 있는 셈이지만, 아직 그럴 능력이 없는데다 매일 할 수 없는 거라 임시방편이다. 


위에 적은 세 가지 내용에 대해서 더 이상의 생각은 괜한 에너지 소모이므로 여기까지만 하자. 하던지 말던지 스스로 결정해야할 문제일 뿐이다. 혹은 거기에만 너무 꽂혀있는 건 아닌지, 또 다른 방법으로 남은 인생을 정신적으로 좀 더 여유롭게, 느긋하게 살아갈 방법이 있는 것인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건 아닐지. 이제는 몸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느긋해지면 좋겠네! 


혼자 먹고, 혼자 돌아댕기고,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심지어 먼 나라에서 혼자 아파도 외롭지 않았고, 그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결정하기 힘들 때 의논할 상대가 없다는 건 쫌 외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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