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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변화

마녀 아줌마의 세상살기

by Stella

"가만히 있다가 멀리 뛴다"


그동안 비행기를 탈 때도 제주도를 제외하곤 거의 열 시간 이상 가는 거리만 탄 거 같다. 미국 동부와 서부, 호주, 서유럽, 동유럽, 발칸반도에는 가봤는데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는 안가봤다. 경영학과 졸업후 뜬금없이 번역을 한다던지, 웹디자인을 하다가, 3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공부한답시고 유학을 가버렸다. 만약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나 역시 "걔 혹시 약간 획까닥(?) 한 인간 아냐?"라고 반응하겠지.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한푼이라도 더 벌기는 커녕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는 그냥저냥 할 수 있었던 강사일을 스스로 놓아버렸을 때도 막상 그만두자 3개월 쯤 지나면 후회할거라는 걱정어린 시선이 쏟아졌고, 이번 이사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모두 살고 싶다는 강남(?)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삼년 정도 입버릇처럼 말할 때, 가족이나 지인들도 처음에는 그저 배부른 투정으로 여기면서 내가 노래만 부르다가 귀찮아서 주저앉을 거라고 예상한 건지, 지금까지 살던 곳과 완전 딴판인 곳에서 처음 본 집을 덜컥 계약했을 때 우려섞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에는 지역을 고르는 데에 상당히 오랜 시간들여 발품을 팔았고, 생활패턴과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며 새로운 서식지를 찾을 수 있었다.


계약을 해버린 후, U턴이나 STOP 없는 직진 차선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 초보운전자처럼, 철없는 아줌마 앞으로 그냥 쭈욱 가야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게다가 한달 후 이사라서 모든 걸 후다닥 준비했다. 이삿짐 센터와 입주청소 정하고 오피스텔에는 빌트인으로 있던 것이지만 구축 아파트에 없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구매하고, 그 외에도 자잘자잘 할 일은 많았다. 혼자 처리하면 의견조율을 할 필요가 없어서 편한 면도 있지만 그 모든 걸 혼자 해야하니 나름 바쁘더라고.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번개에 콩 볶아 먹기 식 이사를 끝낸 후, 이제 다이소를 내집 드나들 듯 들락거리면서 정리 모드로 돌입한 지 2주 정도 경과해서 어느 정도 윤곽과 방향은 잡혔다. 지금까지는 대략적인 정리를 했던 반면, 이제부터는 그래도 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포근함을 만들기 위해 꾸미기에 돌입해야 한다. 실수투성이겠지만 뭐든 하다보면 좀 나아지겠지.


새로운 서식지는 7호선타고 한참 올라오는 강북의 어느 구축 소형아파트이다.

장점

구축이지만 올수리 이후 첫 입주라서 주방과 욕실이 엄청 깨끗하다. 당연하지 새거니까. 사실 집을 보러 왔을 때는 다 뜯어놓은 상태여서 뭐가 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완전 수리에 첫 입주라는 말을 듣고 난생처음 부동산에 들어가서 본 첫번째 집을 덜커덕 계약했다.

방 두 개 중 작은 방이 북쪽이고 외부에 면해있어 추울 거라고 예상하고 옷방 겸 창고방으로 하려다가 이번 수리할 때 두꺼운 단열재를 써서 그런지 생각보다 남향의 큰방보다도 아늑해서 옷장과 침대 넣고 침실로 사용 중.

방에서 세탁기와 주방 수전 안봐도 되서 속이 느무느무 시원하다. 개인적으로 대면형 주방도 극혐일 정도이므로, 주방 수전 이런 거는 가능한 안보고 싶다.

빨래를 말릴 베란다가 있다니, 감격스럽다. 더 이상 방안에서 빨래 안말려도 된다네!

지하철이 겁나 가깝다. 정말이지 돌아가도 3분이고, 나름 지름길로 가면 1분 컷 가능하다. 뚜벅이 아줌마에게 정말 중요한 조건이다.

주변에 나무가 많고 공원도 많다.

도보 10분 이내에 **시립미술관이 있다.

헬스장 + 다이소 + 마트 가 도보 3분 내 한 건물 안에 모두 있다.

도보 10분 이내에 롯데마트, 홈플러스, 아울렛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근처 롯데슈퍼에서 구입한다.

헬스장 기구 자체는 좋은 편이고 연중무휴란다.

파리바게트 빵이 다른 지역보다 저렴하다. 체인점이라서 빵 가격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특히 지점에서 직접 만드는 제품은 점주가 일정 범위 내에서 가격을 자율로 조절한다고 한다.

나름 붕세권이다. 붕어빵 3개 1천원, 5개 2천원에 맛도 있고 퀄리티도 좋은 편이다. 으쨌든 사람들이 줄 서서 사간다. 나는 다섯개 사서 얼려놓고 조금씩 먹는다.


물론 단점도 있다.

구축아파트이므로 냄새 관리를 잘 해야할 듯. 아직은 괜찮지만 여름이 되면 좀 심하것지. 이건 어쩔 수 없으므로 청소+환기+탈취제 가 필수! 그나마 다행인 건 녹물 안나온다.

7호선 라인은 출퇴근 시간에 피해서 다녀야 한다. 새벽 첫 지하철도 만원이더라.

헬스장 기구는 강남보다 다양하고 좋은 편인데 반해 샤워시설+파우더룸은 지금까지 다녀본 곳 가운데 최악이다. 샤워기가 5대 라니, 이게 실화냐? 그래도 나름 터득한 노하우 - 6시 운동시작, 7시 15분쯤 샤워하러 들어가면 그나마 한가하다. 6시 50-7시 10분은 피할 것.

분리수거날이 정해져 있다. 아파트 동마다 현관 앞에 잠깐 설치했다가 사라진다. 매일 분리수거 가능한 곳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건 좀 불편하다.

음쓰는 음쓰통에 카드대고 열고 다시 닫는 형태다. 그냥 음쓰비닐 사서 던지는 게 더 편한데! 많이 배출되는 편이 아니지만 정 귀찮으면 건조분쇄기 처리기 하나 구매해서 써야것다.

은행 ATM 기기는 많지만 지점은 정말 드물다. 물론 드물게 가는 거지만 일단 가려면 마음먹고 가야할 듯.


새로운 서식지에서 뭘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뭔가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인 건 맞지만 어느 유명 배우님의 말처럼 나이가 들어도 매일 새로운 날이 펼쳐지는 거니까. 대단한 건 아닐지언정 그 속에서 뭔가 찾아내는 것, 어쩌면 그게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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