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타고 날아오른 마녀 아줌마
내가 그린 그림에서 어색함과 딱딱함과 한계가 느껴진 이후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수업이 너무 많았고, 번역 첨삭이 힘에 부치기 시작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수업 두 시간만 해도 하루종일 늘어져서 꼼짝하기 힘든 상태가 지속되자 그토록 은퇴를 만류하던 엄마도 이제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 이제 그만둘 시간이 된거야.
이제 남는 건 시간 뿐. 그래도 마냥 시간을 '때우거나 죽이기"를 하고 싶지 않았고,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다. 음식과 패션 이외의 모든 것에 호기심 충만한 성격 때문인지 번역 이외에도 포토샵 - 일러스트 - 유화 - 펜화 - 블로그 글쓰기 - 책읽기 - 뚜벅이 여행 사진찍기를 해왔는데, 문제는 이런 중구난방 천방지축의 관심사를 한 줄로 꿰어줄 방법을 못찾았다는 거였다. 허술한 구슬만 떼굴떼굴 하염없이 굴러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애가 아이패드였다. 그래픽 드로잉을 위해 몇년 전 구매했지만 애플펜슬도 낯설고, 프로크리에이트 앱도 낯설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 한구석에 얌전히 처박혀 있던 녀석이다.
아, 저 비싼 걸 괜히 샀지, 제대로 사용도 못하는데 '당근'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차에, 주민센터 도서관에서 아이패드 드로잉 책을 우연히 찾아냈고, 그날부터 아이패드를 들고 혼자 꼼지락대기 시작했다. 나와 맞는 책을 제대로 고른 모양이어서 하나씩 따라하다보니 그동안 너무 낯설어 '너 누구니?' 했던 앱과 하얀 펜슬이 손끝에 찰싹 붙는 게 느껴졌다.
어라? 이 정도면 쓸만한데? 능수능란하게 쓸 만큼은 아니지만 그동안 머릿속에 뱅뱅 돌던 이미지를 대충 표현할 수 있었고, 사실 아이패드의 능력은 거의 저세상 급이였다. 그저 주인이 무능했을 뿐, 재주가 많은 녀석이었다는 거다.
이후 몇 년전에 만들었던 마녀캐릭터를 이용하여 내 일상과 감정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아이패드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아래 그림은 아침에 커피 마시거나 운동하거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그린 거다.
때가 되면 카드도 그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늘 즐거운 것만 그리는 건 아니었다. 아래 그림 중 제일 오른쪽은 화가 나거나 우울했을 때의 모습이다.
한동안 연습에 몰두했으나, 장단기 여행에 많은 시간을 쏟는 바람에 무엇을 어떻게 그릴 지에 대해 시간과 노력을 훨씬 더 투자해야한다. 더우기 디지털 기기 자체가 계속 진화하는 유기체이므로 앞으로 배우고 익힐 건 무궁무진하다. 자타공인 백수인데도 여전히 할 일은 많다.